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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 독후감 공모 최우수상작(김태홍 대건안드레아)
첨부 작성일 2018-11-08 조회 214

최우수상 : 김태홍 대건 안드레아(광주대교구, 남동성당)

 

약 속 ( 부제: ‘불꽃이 향기 되어를 읽고 )

 

주일미사가 끝나고 들린 골목은 여전히 한적했다. 무겁게 발길을 옮겨 가까이 다가가 첫 번째 집 대문이 보이자 곁에 있던 딸애한테 묻는다.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알겠니?"

", 그때 그 할머니 댁이잖아."

별로 생각해보는 기색도 없이 답하는 걸 보니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곧바로 생각지도 못한 물음을 내게 던진다.

아빠, 오늘 할머니 보러 가?”

아이의 질문은 고요하지만 거센 소용돌이가 되어 날 몇 해 전 이 골목으로 빨아들였다.

 

로사 할머니와의 첫 만남은 4년 전 봄이었다. 당시 내가 소속된 단체에서는 본당 내 빈첸시오회와 연계하여 근방의 독거 어르신들을 일대일로 방문하여 말벗도 해드리고 이것저것 필요한 일을 도와드리는 봉사가 추진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전담하여 봉사해드리게 된 분이 로사 할머니셨다. 성당과 꽤 떨어진 골목길에 위치한 댁으로 찾아가 뵈니 이미 여든 다섯을 훌쩍 넘긴 고령이신데다 관절염으로 미사참례도 어려운 편이셨다.

"내가 욱고녀(旭高女) 출신이여. 욱고녀!"

두 세평 남짓한 방에 들어와 인사를 드리자마자 카랑카랑한 첫마디로 당신이 살아온 날을 풀어내시기 시작하셨다. 반세기가 넘도록 안으로 삭이고 쟁여놓았던 세월들이 긴 호흡의 이야기로 되살아난다.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지방군수의 딸로 태어나 신식교육을 받으며 유복하게 자랐다고 한다. 평탄한 청춘의 끄트머리에 음악가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부족함 없이 지내신 것까지가 삶의 달콤한 초입이라면 몇 해 전 할아버지를 떠나보내신 뒤 홀로 지내시는 단칸방은 애달픈 뒤안길이었다.

그날 할머니의 사연과 쓸쓸한 골목길의 풍경이 못내 애처롭게 각인되었던 걸까. 한 달에 두 번씩 정해진 횟수대로 착실히 찾아가 파스며 로션을 발라드렸고 간단한 안마도 해드렸다.

어느 주일에는 종일 적적해하실 할머니를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는데 그 무렵 유치원생이던 딸애의 재롱에 아껴놓은 간식을 내주시며 즐거워하셨다. 처음 뵌 이래 가장 밝게 웃으시던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내 안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그때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빠지지 않고 봉사를 다니던 여름이 지나 산과 들이 서늘해지자 여행이며 각종 행사가 늘어난다. 고민 끝에 이번 주는 못갈 것 같다는 전화를 드리자 아무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란 할머니의 말씀에 편하게 한주를 건너뛴다. 대부분 이런 변명은 한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쉬운 법이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이랑 놀러가기로 했는데 어쩌지? 할머니는 그냥 다음 주에 찾아뵈어야겠다.’

그러나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약속들이 기다리기 마련이었으니 처음에 조그맣던 핑계가 미세한 균열이 되어 마음의 둑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때마침 할머니께서도 많이 바쁘면 그리 자주 안와도 된다고 하셨으니 제법 그럴듯한 변명거리도 생긴 셈이었다. 그렇게 방문하던 횟수가 적어지는 만큼 가슴속의 열기도 점점 식어 간다. 그러던 언젠가부터는 한 달에 두 번 방문해야 할 소임을 잘 지내시냐는 안부전화 한 통으로 갈음하고 그 얼마 뒤에는 주일마다 드리던 전화마저 뜸해지게 되었다.

그런 채로 연말이 지나고 이듬해 정월이 되었다. 새해 인사도 드릴 겸 할머니 댁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던 차에 빈첸시오 봉사자에게서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게 되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미 아득해져버린 마지막 만남 때 외국에 있다는 손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워하시던 모습만이 눈앞에 오래도록 잔상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며 할머니의 죽음에 단단히 엉겨 붙었던 우울감은 점차 물긋해져 갔다. 연락이 닿은 유족에게 할머니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보내드린 것으로 내 할 바는 다 했으며 여든을 훨씬 넘겨 돌아가셨으니 그래도 호상(好喪)이라는 생각으로 비어있던 마음을 서둘러 메워버렸다. 그럼에도 가슴 속 어딘가에 딱딱한 느낌이 남긴 했지만 그런대로 눅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뒤 두어 번 꽃이 피었다 지고 세월은 사붓이 흘렀다. 나른한 일상에 할머니의 본명도 서서히 잊어 갈 무렵 애들 책을 빌리던 도서관에서 <불꽃이 향기 되어>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평신도 다섯 명의 일대기를 주석과 사진을 곁들여 기술한 서적으로 첫 장을 펴자마자 그 자리에서 한번 읽고 다시 대출을 받아 읽어볼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했다.

사실 처음 읽을 때는 그들의 영성보다는 인간적인 행적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가령 김익진 선생이 베이징 대학에 다니던 시절 모택동과의 친교로 홍군(紅軍)에 입대한 일이며 빈농의 자제로 태어난 김홍섭 판사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지 일 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일들이 그렇다. 서상돈 선생의 경우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신자의 자손이었지만 빼어난 인품과 상재(商材)로 조정의 조세시찰관으로 등용되었으니 웬만한 대하드라마의 소재로도 손색이 없다. 제주도 초대교육감을 지낸 최정숙 여사와 제 2공화국의 수상을 지낸 장면 총리 또한 고난을 이겨내고 시대의 표상으로 우뚝 섰으니 더 말할 게 없으리라.

하지만 두세 번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 들었던 생각은 빗나가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양은 각각 달랐지만 그들 삶의 안쪽에는 똑같은 고갱이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익진 프란시스코는 도쿄의 간다(神田)거리 고서점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를 처음 접했을 때 결심했던 것처럼 훗날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바치는 데 한시도 주저하지 않았고 김홍섭 바오로 역시 병마의 고통 속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죄수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길 멈추지 않았다.

최정숙 베아트릭스는 어찌 하였던가. 일찍이 수녀가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항일 전력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평생 독신으로써 온 삶을 민족의 개명(開明)에 바쳤으니 주님 보시기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종이 또 있을까.

서상돈 아우구스티노와 장면 요한은 각각 나라를 움직이는 거상과 재상이 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경술국치와 516 군사정변이란 장벽 앞에 자신이 세웠던 지고한 뜻이 꺾이는 고난을 맛봐야 했다. 그럼에도 겸손히 순명하여 남은 생을 오로지 주님을 섬기며 생을 마쳤다.

이처럼 다섯 명 중 어느 한 사람의 생애도 쉽고 녹록한 면이 없다. 구한말부터 분단에 걸친 혼란의 시대 속에서 가질 만큼 가졌고 배울 만큼 배웠으니 한 순간만 편히 맘먹으면 그렇게까지 어렵게 지내지 않아도 될 이들 아니었던가. 그런 이들을 한 곳으로 이끈 힘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세속에서 채워질 수 없는 복락(福樂)이었으니 모두 하느님께 기대어 자신의 작은 안락을 버린 채 주위의 수많은 이들에게 아낌없이 손을 내밀었다. 지쳐 쓰러진 이웃을 안아 일으키던 그들의 손길들이 믿음의 불꽃으로 타올랐을 때 세상은 주님의 맑고 깨끗한 향으로 가득 채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는 백년의 시간을 넘어 약속이란 단어로써 날 기나긴 묵상의 길로 이끌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오르고 사라졌지만 길의 끝에는 주님, 그리고 로사 할머니가 계셨다. 그 때 난 도대체 뭘 했던 걸까. 해선 안 될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부끄럽던 지난날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난 분명히 가톨릭 신자다. 주일이면 미사를 참례하고 누구 하나 해코지 한 적 없이 나름 선량하게 살아왔으니 타인의 눈에는 깨나 독실한 신자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은 그런 내 신앙이 군내를 겨우 면한 냇내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믿음이란 불꽃을 태우더라도 그 안에는 나태와 위선이라는 불순물이 섞여있으니 어찌 곱고 청아한 향을 낼 수 있을까.

누가 뭐라 해도 이웃과의 약속 하나 끝까지 지키지 못했으며 마치 옛 로마시대의 기억말살형이라도 내리듯 잊으려고만 했다. 실제로 로사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한 번도 댁이 있던 골목을 찾지 않았고 심지어 갈 일이 있다면 멀리 돌아가곤 했으니 이미 난 불씨하나 없이 어둡고 차가워진 내 양심과 대면하기 싫었던 게 아닐까.

헤아려보건대 신앙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약속일지니 일어나 올리는 아침기도는 그에 대한 다짐이며 잠자리에서 드리는 기도는 오늘 하루 자신에게 주어졌던 약속에 대한 성찰이다. 그러니 평신도로 산다는 것은 곧 세상의 일원으로서 그 약속들을 하나 둘 충실히 지켜간다는 의미일 게다. 그래서인지 딸아이의 물음이 마음 한구석에 쓰리게 파고든다. 이제는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게 된 약속이 더없이 아프게 꿈틀거리는 것이다.

 

실로 오랜 시간을 돌아 로사 할머니 댁을 찾아왔다. 4년 전 처음 왔을 때처럼 내 안에 하느님의 불꽃을 오롯이 간직한 채 살 수 있을까. 대문 앞에 서니 죄송한 마음과 함께 다시는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할까 싶은 두려움에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가장 딱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복음 말씀 하나가 메마르고 차가운 가슴 한 가운데에서 떠오른다. 그리고 조금씩 따뜻하게 스며든다. 오래 전 사랑을 알지 못하고 헤매던 날 주님께서 이끌어 주신 것처럼 부디 내게 남은 시간동안 주님의 품으로 이웃들을 보듬어 줄 수 있기를.

할머니를 위해 떨리는 손으로 성호경을 긋는다. 발길을 옮기려던 찰나 중천에 뜬 태양이 구름을 걷어내고 골목을 구석까지 환히 비춘다. 그 사이로 바람이 시원한 입김을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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