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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목 '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 독후감 공모 우수상작(박선영 에텔지타)
첨부 작성일 2018-11-08 조회 203

우수상 : 박선영 에텔지타(서울대교구, 가양동)

 

씨앗이 자라는 소리를 읽고

(사랑과 희망이라는 씨앗을 틔운 위대한 실패)

 

'15년간 특수학교 못 지은 게 가양동 주민 탓이냐

특수학교 있는 강서구 공진초 이적지는 또 특수학교 짓는구나

강서구 반대하니 정치꾼들 언론들 한풀이에 지역주민 죽인다

서울시 8개구 특구학교 없다 강서구엔 이미 있다. 특수학교는 지역별로 균등하게 설립하라!’

저희 동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수학교 설립이라는 문제를 두고 언론과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곳입니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건 현수막에는 단어와 단어마다 적의와 불신을 담아낸 나머지 그 곁을 지나는 사람들에게조차 날이 서 보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미안함에 저절로 고개를 떨구게 됐습니다.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장애 학생들의 부모를 보고도 사람이 사람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밀어내는 모습에서는 서글픈 마음조차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무엇을 하였던가요. 그저 속으로 반대 주민들을 비난하고 얼른 사태가 원만하게 마무리되기만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아파트에 걸린 현수막 문구도 아주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지역구에는 이미 특수학교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학교의 규모가 작아서 집에서 가까이에 특수학교가 없는 다른 지역의 다른 학생들까지 통학을 하고 있어 같은 지역의 학생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왕복 2~3시간씩 다른 구에 있는 특수학교에 다녀야 했습니다. 누가 봐도 새로운 특수 학교의 설립이 절실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상처받는 현실에 분개하면서 한편으로는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방관해 왔습니다. 그저 특수 학교 반대 주민들에게 분노하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스스로 만족해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매매 여성들, 집 없는 이들과 함께 했던 가톨릭 평신도인 에드위나 게이틀리는 어린아이들이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이러한 현실을 모른 척할 때 우리는 억압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이에게 필요한 것을 움켜쥐고 내어놓지 않는다면 그것을 또 다른 방식의 강탈과 다름이 없다고 말입니다. 나이, 성별, 국적, 인종, 출신 지역을 비롯해 장애 유무를 떠나 어머니 하느님께는 누구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녀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장애 학생들 또한 우리의 형제 자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비단 장애 학생들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자와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가난한 자와 못 배운 사람, 이방인과 종까지도 그렇지 않는 사람들과 구분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간음하여 사람들에게 둘려싸여 있는 여자에게도 죄를 묻지 않으셨던 분이십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먼저 사람들 속에서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필요를 들으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자체만으로 존귀하며 가진 자나 그렇지 않는 자나 모두 동등한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다릅니다. 자기도 모르게 외모나 능력, 사회적 지위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편을 가르곤 합니다. 인간을 위해 하느님이 예수님을 대속제물로 희생시켰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공존과 평화 대신 차별과 갈등에 익숙합니다. 평신도로서 나는 서로 사랑하라는 복음을 너무나 익숙하게 자주 접합니다. 차별과 편견이 부당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익숙한 현실에 빠져 차별하고 구분하는 분위기에 끌려가곤 합니다. 그렇다고 아주 희망이 없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복음을 접하면서도 복음대로 살지 못하는 연약한 삶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 형태 중 나 자신에게 주어진 사도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겠습니다. 물론 과연 평범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을 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합니다. 크고 작은 일에 좌절하고 절망해도 결국은 우연히 마주친 한 사람의 친절과 호의가, 소중한 가족과 지인들의 응원과 지지가 미래를 알 수 없는 현실을 헤쳐갈 용기를 주었습니다. 작은 가능성을 찾아내준 학창 시절 선생님 덕분에 여태 몰랐던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음의 힘을 깨닫게 된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따라서 삶 속에서 복음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이전과는 다른 일상을 꾸리며 세상 어디에나 복음이 들려지도록 작은 돌을 놓아야겠습니다.

 며칠 전 전철에서 지체 장애를 앓고 있는 소년을 만났습니다.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고 움직임이 컸던 소년이 다가오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슬그머니 일어나 다른 칸으로 사라졌습니다. 빈 자리를 발견한 소년은 긴 의자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몸을 돌려가며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봤습니다. 반대로 소년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 눈에는 저마다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이 묻어났습니다. 그때 어떠한 힘이 나를 이끌었던 모양입니다. 출입구 쪽에 서서 그간의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벽에 기대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남편의 손을 이끌어 소년의 옆자리로 앉았습니다. 순간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소년과 저희들에게 향했습니다. 이제껏 주변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했던 남편은 무슨 일이냐는 듯 잠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크게 눈을 꿈뻑거리자 남편은 다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스마트폰으로 눈을 옮겼습니다. 우연인지 우리 부부가 자리에 앉자마자 소년도 두리번거리던 움직임을 멈추고 차분하고 예의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목적지까지 닿기를 기다렸다. 평소와 다른 공기가 머무르던 공간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자리가 없어 서서가던 사람들도 소년이 앉은 의자에서 남은 자리를 채우며 앉았습니다. 소년이 내리기까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걱정했을 것이 분명한 난감하고 위험한 상황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장소에 언제나처럼 위대하신 분이 함께 하셨다고 믿습니다. 분명 마음 졸이며 우리를 지켜보던 그분은 슬며시 미소 짓고 계시지 않았을까요?

일상의 작은 용기로 뿌듯하기만 한 나에게 에드위나와 같은 용기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에드위나는 일상을 떠나 오두막에 머물면서 몇 달에 걸쳐 망설이고 자신의 사명을 식별하고자 고민했습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을 이끌어주시는 작은 목소리를 따라 특별한 계획이나 자금도 없이 성매매 여성들과 동행하고자 시카고 거리로 나갈 결심을 합니다. 심지어 거리 사도직에 필요한 훈련을 받지 못했고 자신이 돕고자 하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상태였는데도 말입니다. 그저 하느님이 당신 자녀와 함께 고통받으시고 자녀들의 응답을 기다리면서 밤새 걱정하듯이 그녀 역시 세상으로부터 소외 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않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느님도 에드위나도 누군가의 삶을 은총이라는 이유로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과 사랑을 쏟아부었지만 에드위나가 그토록 사랑하고 보호하려 했던 돌로레스는 결국 죽음의 힘에 굴복하여 쪽방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돌로레스와 에드위나는 실패한 것입니다. 돌로레스의 죽음을 두고 희망과 기대를 찾아보기 어려워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실패인 동시에 위대한 성공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돌로레스는 생명의 길로 가지 못했지만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투쟁하는 동안 소소한 승리를 겪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삶은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좌절 끝에 오는 단단한 승리를 목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물론 현재를 버리고 예전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로 들어가 봉사하는 일에는 어떠한 보상도 기대할 수 없고 끊임없는 실패와 좌절이 기다릴 테지만만 사실 살패하더라도 완전한 실패도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입니다.

브로드웨이에 피어난 장미는 결국 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돌로레스를 떠나보내는 장례식에는 그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습니다. 가방을 쓰레기로 채운 노숙자를 비롯해 거리의 사람들, 창조의 집에 머물렀던 여자들, 거리 선교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브로드웨이의 장미가 죽어서도 그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돌로레스에게 지난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겠지만 그녀는 충분히 아름다웠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돌로레스는 그녀가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죽었고, 그것을 또한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돌로레스는 죽었지만 죽지 않았고, 실패했지만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두가 하느님의 기적이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돌로레스를 비롯한 노숙자와 성매매 여성들, 거리를 떠도는 많은 영혼들이 에드위나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주기도 했지만, 인간 영혼에 잠재한 희망과 생명력을 통해 새로운 꿈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다. 에드위나는 여전히 세상에 버림받고 소외된 영혼에 뿌리가 내리고 꽃이 피어나는 기적을 만나는 은총을 만납니다. 치유와 꿈꾸기는 영혼이라는 밭에 아름다운 꽃과 가지가 울창한 나무를 피울 씨앗들을 뿌립니다. 비록 씨앗은 싹을 틔우기 위해서 땅밑에서 썩어가지만 끝내 씨앗은 폭풍우를 견디고 척박한 대지를 딛고 서 꺾이지 않는 나무로 자랄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영에 귀 기울이면서 충실히 각자의 길을 가며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자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동안 우리가 또한 누군가의 꿈이고 희망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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