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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목 '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 독후감 공모 우수상작(송동현 바오로)
첨부 작성일 2018-11-08 조회 225

우수상 : 송동현 바오로-청소년(대구대교구, 도원성당)

 

술잔에 담긴 그리스도의 참 행복

 

 얼큰하게 취해서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볼 때면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밖에서 술을 드실 만큼 드시고 들어온 아버지께서는 늘 집에서도 가족과 한 잔을 더하고 싶으신 모양이다. 오늘은 또 어떤 술주정을 시작하실까.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온통 내 귀에는 신세한탄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빨리 자러갈 궁리만 하며 비몽사몽 가만히 듣고만 있던 중에 아버지께서 소주 한 잔을 따라주시며 물었다.

 네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이냐?”

고등학생인 나는 술잔을 받은 채로 말똥말똥 아버지 얼굴만 쳐다보았다. 참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 행복이 뭘까?’

속으로 계속 되 내어 보아도 대답을 하긴 어려웠다. 나는 왜 그리 우물쭈물했을까.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이었을까. 아님 행복하지 않아서였을까.

  며칠 뒤 성체조배 실에서 기도 중에 예수님과 대판 싸워버렸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묵묵히 들어주셨고 내가 제 분에 못 이겨 투정을 부렸다고나 할까.

 “예수님, 왜 저에게 이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주셨습니까?”

아마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행복이란 돈에 파묻힐 정도의 많은 부를 가지고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누리며 나를 좋아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내 모습을 생각하며 행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생에게는 명문대학 입학이 곧 행복인양 마치 하나의 공식을 외우듯 단순하고 명료하게 설명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으며. 나 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수님께 열변을 토하고 나니 시원하기는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찜찜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사셨는데……. 이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내가 말한 행복과는 정 반대였다. 가난하게 겸손 되게 독신으로 평생을 사시며 결국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감히 나는 그분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일까. 고작 이런 마음가짐으로 그분을 닮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서 답하지 못했나 보다. 예수님께서는, 적어도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그런 대답을 듣고자 질문하신 것이 아니었다. 또 그런 삶은 나의 행복이 아니었다.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을 전하고 정의와 진리를 실천하는 길은 없었다. 내 자아를 실현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포부는 더욱 없었다.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느껴졌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셨던 행복의 모습은 멀리 있지도, 누군가와 비교 당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마음속 고요함 속에서 잠시 머물렀다 가시는 그 순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신다. 예수님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을 헛되게 살아온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아는 척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았다. 사방이 온통 행복인 이 세상을 너무도 어렵게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책에서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도 말한다. 신부님의 강론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라고 말이다.

 ‘사방이 온통 행복인데책을 읽으며모든 일은 내 마음속에서 시작된다.’는 우리 반의 급훈이 떠올랐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과 일들이 있는데 그 속에는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을 것이다. 대신에 행복을 보는 마음의 눈을 활짝 열면 행복이 자꾸만 보인다. 행복은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담임선생님께서도 예수님께서도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씀인 것 같다. 우리는 너무 큰 것만을 바라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셔서 눈에 보이는 기적이라도 떡하니 행해 주시면 더 굳게 믿을 것만 같고 행복이라 하면 왠지 멋지고 거창해야할 것만 같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세 배 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그런 행복이 대부분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지만 행복하지 않다면 내가 문제이거나 행복이 문제일 텐데, 아무리 나를 둘러보아도 열심히 살고 있는데 불행하다고 느껴진다면 당신이 말하는 행복은 나의 행복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행복, 보이기 위한 행복, 인정받기 위한 행복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그리스도인에게 행복의 의미는 또 다를 듯하다. 작은 일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을 때, 고요함 속에서 그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느끼는 특별한 행복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편안하고 따뜻한 깊은 감동이다. 더군다나 그리스도인은 매 주일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성체성사를 거행한다. 그러나 세상의 짧은 잣대를 들이대며 남의 허황된 행복을 좇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육신은 배부르고 영혼이 가난해지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신앙인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누구의 몫이란 말인가. 이 사회에서 신앙이 지니는 의미와 종교가 줄 수 있는 심리적 위안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현대인의 삶과는 괴리감이 느껴지고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지속적인 선교활동과 쉬는 냉담 교우를 회두하기 위한 절실한 노력들을 쏟아 부어 모두가 행복의 길로 접어들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그리스도인은 평화의 도구다. 세계평화를 이루어 내기 위한 소중한 존재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도 불린다. 사람들이 성당에 나왔을 때 세상의 순리와는 차별화된 모습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평신도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사랑의 말과 행동을 실천했으면 좋겠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하는 데 그와 마찬가지로 행복에도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지향해나가야 할 행복의 모습은 찾을 수 있다. 바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고통까지 감수해가며 죽음을 맞이한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셨을까? 나의 낮은 내공으로는 주님이 하신 일이 행복보다는 고통에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의 길을 따라 걷기 위해 매일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예수님은 행복하셨다. 사랑을 실천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말이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은 조금이라도 그 분을 더 닮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는 삶을 살 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1C를 살아가고 앞으로의 후대들을 책임 질 의무를 가진 한 청년으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남들이 정해준 기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했을 때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며 도전할 수 있는 일들을 꿈꾸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듯,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부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구 반대편에는 기아와 빈곤, 전쟁 속에 파묻혀 힘겨운 삶을 버티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똑같이 소중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권리를 가짐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 뜻을 전하며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아버지께서 던져주신 행복의 실타래를 거의 다 풀었을 무렵 나는 사제성소의 길을 결심하고 있었다.

 질문에 대한 고민을 마무리 하던 중 아버지 삶을 떠올려보았다. 20년 된 아파트에 살면서도 이사 가자 하지 않으시고 15년 된 중고차를 끌고 다니 시면서도 아버지께서는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행복은 집의 크기나 차의 연식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과 그 안에서 나누는 사랑이라는 것을, 말로써만 전해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몸소 살아가시며 나에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려고 한 아버지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평신도 희년을 맞아 행복의 책을 한 권 읽고 내 삶을 기쁘게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생각해보니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나 자신이 깨지고 당신의 모습에 걸맞게 깎아내고 도려내는 모습을 바라셨으리라 생각된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알고 느꼈으니 실천하며 살길 다짐한다. 만약 아버지께서 나에게 다시 한 잔의 소주를 따라주신다면 행복을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나에게 행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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