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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평신도
  • 2013년 여름 / 계간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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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특집] 쉼, 비움의 또 다른 얼굴
첨부 작성일 2018-04-30 조회 561

쉼, 비움의 또 다른 얼굴

조경자 오틸리아 (천주섭리수녀회 수녀)

 

 

연중 피정으로 일상과 사도직 현장을 떠나 강원도 인제군 남면에 있는 피정집에서 열흘간 머물다가 왔다. 그곳은 밤이면 반짝이는 별을 머리에 이고 노루가 가끔씩 마을로 내려오는 곳이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앞산 자락으로 비안개 둘러쳐지면서 산신령이라도 나타날 것같이 신비스런 곳이다.


모처럼 쉬고 기도하며 하느님을 찾는 가운데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해 준 풀, 꽃, 나무, 새, 맑은 물소리와 같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들은 침묵과 기도 중에 있는 나에게 거룩한 고독과 자비와 연민과 여림의 미학을 가르치는 스승이며 상한 내 영혼과 심령을 치유해 주는 의사이기도 했다. 자연 안에서 나는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나를 낮추고 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종용하지도 않은데 산책길에서 만난 이름 없는 풀과 꽃, 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 햇볕을 주시고 생명을 돌보는 하느님의 나직한 음성도 듣는다.

 

소임을 수행하는 번잡한 생활 속에서는 잘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잠시나마 있던 곳을 떠나 어떤 형태의 것이든 내려놓고 비워내는 자리에 ‘자연’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하느님은 그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신다. 그것을 얻기 위해 나는 피정을 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얻겠다는 마음조차 없을 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열리는 역설을 체험하는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쉼은, 앞만 보고 달리는 마라톤 같은 우리네 삶의 여정에서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세상 만물을 향해 사랑과 평화로 날아오르기 위한 겸손과 자비와 연민의 마음으로 잠시 멈추어 선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산책길에선 뻐꾸기 울음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온다. 그 소리는 모든 자연이 다 그렇듯 꾸밈 없기에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자장가를 듣는 아이처럼 가만히 그 소리를 듣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붉은 햇덩이가 산 뒤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둠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빛깔로 세상을 물들일지. 그 어둠 속에서 서로 기대어 평안히 잠들 피정집의 강아지 두 마리를 보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전혜린 작가가 쓴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 옮겨 본다.


“돌아갈 곳을 가진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따뜻한 아궁이로, 엄마의 품속으로. 어느 곳이든 그를 위한 사랑과 기도가 있는 곳이면 그것은 인간에게 평안을 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계절, 이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의 생명 또한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소나무 가지 사이를 넘나드는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과 어둠 속에서도 무더기로 피어 더욱 밝은 빛을 내는 개망초꽃들에게서 나를 잊지 않고 품어 주시는 하느님의 넉넉한 사랑을 느낀다.


돌아갈 수 있는 곳을 가진다는 것은 이토록 좋은 것이다. 나를 위한 진정한 사랑이 있는 곳, 항상 두 팔을 뻗어 따뜻하게 안아주려 기다리고 있는 그분,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며 희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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