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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성] 온전히 주님과 함께 걸었던 길
첨부 작성일 2018-04-30 조회 645

온전히 주님과 함께 걸었던 길

카미노 데 산티에고(Camino de Santiago)

최동준 보나벤뚜라 (한국평협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캡처.JPG

▲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마을 생 장 피데 포르

(Saint Jean Pied de Port). 카미노(순례길)를 시작하는

마을이다. 출발 직전 필자의 모습.

 

 

‘카미노 데 산티에고!’(Camino de Santiago!)

 

너무나 행복했던 2000리 길이었습니다. 걸으면서 행복했고 지금도 그 ‘성령’의 여운에 행복합니다. 카미노는 ‘길’이라는 스페인어이고, 티에고는 야고보 성인의 스페인어 표기입니다. 즉 ‘카미노데 산티에고’는 야고보 성인이 스페인 선교를 위해 걸었던 길이라는 뜻입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이 길의 순례를 감행했습니다. 64세라는 나이에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먼저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순례를 떠날 결심을 하고부터 나의 ‘카미노’는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11Kg 정도의 배낭을 짊어져야 하는지라 부실한 무릎을 강화하기 위해 물리치료도 받고, 3개월에 걸쳐 65Kg이던 몸무게를 운동과 절제로 60Kg으로 줄였습니다.

 

순례는 2010년 5월 18일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마을 생 장 피데 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시작해, 2010년 6월 18일까지 32일 동안 걸어서 스페인 산티에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한치의 땅도 건너뛰지 않고 걸었던, ‘카미노 데 프란세스’(Camino de Frances)라고 부르는 가장 많은 순례객들이 선택하는 여정이었습니다.


해발 1200~1500m 정도의 4개 언덕을 넘고, 일주일 정도의 메세타 지역(주로 땡볕이 내려쬐는 그늘이 적은 길)을 통과하고, 광활한 밀밭과 포도밭의 지평선을 지나는 800여 km의 도보 순례길이었습니다.

 

▲ 카미노의 첫 숙박지 오리손 알베르게의 방명록에 나의 커리커처 스템프와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을 위한 지향으로 이 길을 걷고 있음을 적었다.

 

 

첫날이 지나고, 둘째날부터 종아리에 쥐가 나서 발걸음을 내디디기가 힘들고, 뒤꿈치에는 물집이 잡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쓰리고, 배낭은 무겁고, 말은 안 통하고. 대체 840km라는 거리가 걸어서 얼마를 어떻게 가야 하는 건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기대에 부풀어 시작한 순례길이 긴장과 불안, 두려움과 걱정이 뒤엉켜 상심만 커져 갔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주님과 함께’ 하는 순례길이 되기를 성령께 의탁하는 것, 내 체력과 능력이 아니라 간절한 기도로 당신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길을 걷다 보니 숨 쉬며 걸을 수 있는 것도, 한 조각의 빵과 커피 한 잔을 구할 수 있는 것도, 마을마다 줄줄 흐르고 있는 흔한 물 한 모금도, 한 방에서 몇십 명, 아니 어떤 곳은 백여 명이 함께 코골이와 잠꼬대로 어수선한 잠자리에 대해서도 어느새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순례를 시작한 지 며칠 만에 도보의 고단함을 잊어버리고“I am happy now!”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많은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었지만, 저 스스로가 엄청난 은총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산티에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 몸무게는 55Kg로 줄어들었지만, 처음에 그렇게 무겁던 11Kg의 배낭은 평화와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차 어느새 빈 배낭처럼 가볍게 느껴져 배낭을 벗어 확인하는 소동(?)까지 벌였습니다. 무릎과 종아리의 통증, 짓무른 물집마저도 이 길에서 얻은 ‘은총의 선물’이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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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세타는 부르고스에서 레온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걸어도 걸어도 그늘 한 점 만날 수 없는 광야의 길이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내 그림자를 친구 삼아 걷는 이 길은

영적으로 심화되는 시간이다. 어느 날은 이런 길을 17km나 걸었다.

 

 

순례에 나선 지 20여 일째,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덕’을 지향하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마침내 550여 km 지점의 폰세바돈(해발 1439m)에 도착했습니다. 언덕의 정상에 세워진 ‘철 십자가’ (La Cruz de Ferro)를 향해, 제 안의 교만과 미움과 악습을 그 십자가 돌무덤에 묻어버리고 싶다고 주님께 호소하고 성모님께 전구를 구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줄줄 흘려내렸습니다. 세례성사 때의 그 청순함과 순결한 영혼의 환희 같은 것이 절절히 느껴졌습니다.


프랑스 생 장 피데 포르 순례자협회에서 순례 신고를 한 후 피레네 산맥을 넘어 800여 km의 거리와 32일간의 긴 여정을 체험하며 스페인 산티에고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12시 순례자 미사의 영성체로 주님을 내 안에 모시기까지. 도보 성지 순례는 각별한 은총의 체험이었습니다. 마치 세례성사로 신앙인의 삶으로 새로 태어나서, 온갖 유혹과 생사고락을 성사생활로 은총 속의 삶을 살다가, 지복지관(至福直觀하느님을 직접 뵙는 영복에 이르는)의 인생 여정과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 길에서 우리는 인생에서 만나는 고난에 적응하고, 그 모든 여정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지혜를 얻으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여러 과정을 마친 후, 마침내 얻은 가장 큰 기쁨인 성령의 열매로 사는 삶을 체험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기도 속에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의 선물에 기쁨을 만끽하며, 나 자신의 절제와 인내로 온유함을 잃지 않는 순례자 정신을 맛볼 수 있었음은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순례 내내 나와 함께해 주셨기 때문임을 확신합니다.


온전히 주님과 함께 걸었던 840km 산티에고 도보 순례길은 내 인생 최고 축복이자 깨달음의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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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세바돈(FONCE BADON) 크루스 데 페로

(Cruz de Ferro) 철십자가 앞에서 나는 믿음의 걸림돌로

돌보다 더 단단하여 늘 나를 괴롭히는 내 안의 교만, 미움,

악습을 내 마음에서 비어내고 싶다고 주님께 호소했다.

 

캡처2.JPG

▲ 산티에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12시 순례자를 위한

미사는 모든 순례자들의 공통된 목표다. 32일의 대순례를

마치고 이 미사 말미의 영성체는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날

감히 지복직관의 영광을 맛보았음을 고백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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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에서 90km 떨어져있는 땅 끝 피네스테레
(Finisterre). 순례자들이 자기가 신고 온 신발을 태우기도

한다. 나는 양말 한 짝을 기념으로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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