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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성] 신앙 선조들의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첨부 작성일 2018-05-01 조회 564

신앙 선조들의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천원주 대건안드레아 (한국언론진흥재단 교우회장)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폴란드 작가 샌케비치의 소설 ‘쿼바디스’를 읽다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애타게 갈구하는 이 대목에서 한동안 멍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네로 황제의 갖은 박해, 원형 경기장에서 굶주린 사자들의 먹잇감이 되는 그리스도인들, 처형되기 전 감옥 전체로 울려 퍼지는 찬송가 소리. 이런 모진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꿋꿋이 지켜 나가는 신앙인들의 모습이 어린 소년의 마음에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소년은 영화 `쿼바디스’를 상영하는 극장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숨죽인 채 스크린에 빠지게 된다. 화면에 가득 찼던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스런 모습과 신음, 끝없는 인내, 그런 가운데도 신을 찬양하며 읊조리던 찬송가 소리에서 느꼈던 안타까움과 슬픔은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5년 전, 나를 성당으로 이끈 것은 주변 환경이었다. 평소 존경하고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이 차례로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아닌가. 개신교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팔순의 노모가 갑자기 영세를 받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노모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조용히 묵상을 하면 외로움이 걷히고, 마음이 평안해진다며 그 순간의 신비를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암 수술 후 방사선치료 중이시던 장모님은 어느 날 나에게 “영세를 받게 됐으니 축하해 달라”고 해 더더욱 놀랐다. 장모님은 평소 종교에 대한 불신이 컸고, 인간은 죽으면 끝이라는 말을 자주 해오던 터였다.

 

그런 데다 경남 산청에서 유기농 쌀을 재배해 ‘성공한 귀향인’으로 유명세를 타던 외숙부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나의 아내 또한 성당에서 교리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주님을 따라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님은 나에게 이렇게 역사하고 계셨다.


교리공부 시간에 수녀님으로부터 이 땅에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가톨릭이 전래되고, 신유박해 때 우리의 선조 신앙인들이 겪었던 순교의 역사를 들으면서 30년 전 소설과 영화로 접했던 ‘쿼바디스’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 났다.


무엇보다 순교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생애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형장에서 목을 잘리기 직전 손을 크게 벌려 십자 성호를 크게 긋고는 조용히 다시 형장에 엎드렸다’는 아우구스티노의 용기를 들을 때는 감정이 울컥해졌다.


그 조카사위 황사영. 그는 27세라는 젊디젊은 나이에 신유박해의 전말을 베이징 주교에게 알리기 위해 백서를 작성했다가 붙잡혔다. 과거에 급제해 출세가 보장된 길을 버리고, 갖은 배교의 유혹을 거부하다 끝내 온 몸이 찢기는 능지처참를 당한다. 순교 후 가족도 모두 오지와 섬으로 뿔뿔이 흩어졌으니 얼마나 가혹한 가족사인가.


그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도대체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당히 천주교 신자라고 고백하며 목숨을 바친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흔히들 하느님의 크신 사랑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육체가 받는 고통은 잠시일 뿐, 그들은 곧 하느님을 만난다는 기쁨에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믿음에 자신이 없는 나 같은 예비신자에게 그것은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해 주는 답이 되지는 못했다. 약간만 마음을 바꾸었더라면 멸문지화를 면하고 자신의 안위가 유지되었을 텐데.


주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아무리 큰 죄악이라도 용서해 주시는 넓은 아량을 베풀지 않으셨던가. 하물며 한없이 나약하고 불쌍한 어린 양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잠시 다른 길을 밟는 죄쯤이야.

 

영세를 받던 날, 나는 주님을 향한 지금의 마음이 변치 않고 영원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귀한 신앙생활을 누리도록 해 주신 신앙의 선조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묵상에 담았다. 순교자들이 보여주신 그 큰 용기를 이 어린 양이 이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님이 나에게 보여주시는 사랑은 진행 중이다. 신부님을 통해, 대부님을 통해, 가톨릭신문출판인협회를 통해, 신앙학교를 통해, 교우회를 통해 부족한 나를 신앙인으로 성장시키시는 중이다. 때로는 시련과 고통을 주시며, 때로는 기쁨과 은혜로움으로 단련하고 계신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주에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 옆에 위치한 구산 성지를 찾았다. 김성우 성인과 여덟 분의 순교자가 신앙의 숨결을 지니고 묻히신 거룩한 성지다.


미사를 드리고 나서는 데 성모마리아상 옆 돌기둥에 걸린 현수막의 글귀가 내 눈에 들어왔다.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마지막 신앙고백이었다. 내 눈은 한참 동안 그곳에 고정됐다. 글귀는 점점 커져갔다.


“나는 천주교인이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고자 할 따름이오.”


주님은 부족한 나에게 이렇게 은총을 내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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