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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한 마음, 한 목소리
첨부 작성일 2018-05-01 조회 617

한 마음, 한 목소리

양인용 아가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원 박사과정)

 

 

 

캡처.JPG
▲ 피렌체 르네상스 양식을 개척한 조각가 루카 델라 로비아가
성당 기둥과 벽면에 조각한 ‘음악연습’의 한 장면


얼마 전 신문지상에서 매우 뜨거운 설전이 오갔습니다. 5·18 민주화 기념식에서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合唱)으로 부를 것이냐, 제창(齊唱)으로 부를 것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입니다. 거기에는 정치적으로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었습니다. 합창단이 있어서 합창으로 부르면 참석한 사람들은 구경만 해도 되고, 제창을 하면 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불러야 하므로, 합창인지 제창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치 행사에서 느닷없이 불거진 합창-제창 논란에 혀를 끌끌 차다가 제 생각은 엉뚱하게도 본당 성가대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합창-제창 문제로 갑자기 건너뛰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합창과 제창의 차이를 짚어봅시다. 합창이냐, 제창이냐는 합창단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별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성부로 나뉘어 화성을 이루며 부르느냐, 아니면 모든 사람이 함께 동일한 멜로디를 부르느냐에 따라 전자를 합창, 후자를 제창이라고 하죠. 즉 화음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문젠데요. 남녀 혼성 4부로 구성된 본당 성가대에게 성가를 화음 없이 제창, 그러니까 유니즌으로’(in unison) 불러 달라고 요청을 하면, 그 순간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성가대원으로서 강한 자부심이 있는 분들은 ‘아니, 어떻게 성가대가 일반 신자와 똑같이 멜로디를 부를 수 있어?’, ‘ 음악이 단조로워질 텐데’하는 눈빛으로 쏘아보십니다. 평소 자신의 노래 실력이 좀 부족하다 생각했던 분들은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하는 불안한 표정이시고요. 소프라노가 아닌 다른 파트를 맡고 계신 분들은 ‘사실 소프라노 멜로디는 잘 모르는데…’ 하며 걱정하다가, 무의식적으로 늘 하던 자신의 파트 곡조로 부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휘자가 4부 합창이 아닌 유니즌으로 성가를 부르기로 결정했을 때는 그럴 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연습이 충분히 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가대가 충분히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성당의 공간이나 음향 상태, 성가대의 전체적이 음량을 고려해 단성부 제창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본당 성가대는 전례 안에서 신자 전체를 결합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가대는 성가대의 노래 실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가 마음을 다해 성가를 부를 수 있도록 이끌고 도와주는 데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맞지 않는 화음으로, 충분히 들리지 않는 음량으로 굳이 4부 합창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전례를 품위 있고 아름답게 만들지도 못하고 신자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으니까요.

단성부로 부른다고 해서 성가대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도 아닙니다. 단성부 제창은 그만의 고유한 힘과 무게가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단선율만으로 충분한 훌륭한 음악 전통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바로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라는 천년 역사의 음악 유산이지요. 접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레고리오 성가는 선율 하나에 음역도 넓지 않아 단순해 보일지 몰라도, 여러 사람이 함께 아름답게 부르기는 쉽지 않은 노래입니다.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지 않으면 어긋나기가 쉬운 노래인 것이죠.

그레고리오 성가와는 또 다르지만, 4부 성가를 단성부로 제창하는 것 역시 마냥 쉽고 편한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각양각색의 개성을 지닌 신자들의 노래를 이끌어 가기 위해선 성가대가 중심을 잃지 않고 가장 모범적인 정확한 선율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가대 전원이 흐트러지지 않고 한 목소리로 노래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4부 합창 못지않은 충분한 연습과 무엇보다도 부르는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야 가능합니다.

결국 합창이냐, 제창이냐, 노래를 잘 부르느냐 못 부르느냐의 문제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마음을 다해 그 노래 안에서 기도를 하느냐가 아닌가 싶습니다. 12세기의 여성 음악가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하느님 숨결 위의 깃털’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나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성가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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