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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평화] 밀양, 이웃과 평범한 악
첨부 작성일 2018-04-28 조회 550

밀양, 이웃과 평범한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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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사회학자)

 

 

“아니, 후쿠시마 방사능이 걱정돼 해물도 안 먹는 사람들이 왜 밀양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거지?” 식당에서 일을 하는 선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평소에는 불티나게 팔리는 해물순두부찌개가 도통 안 나간다고 한다. 다들 방사능 오염을 걱정해서 다른 메뉴를 주문하는 것인데 그 모습이 너무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핵이 불안하고 걱정이 되는 사람들이 밀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관심이 없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 몸의 안전이 걱정돼 그동안 잘 먹던 생선도 먹지 않는다. 세슘이니 뭐니 수치들을 줄줄 주워 섬기며 이런 것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이웃 나라를 타박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안 전을 잘 관리하는 나라라고 하더니 그것이 다 허상이었다며 고소해하기까지 하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그 나라보다 안전관리가 더 허술한 자기 국가에 원자력발전소가 눈만 뜨면 하나씩 들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또한 그 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전기를 자기 집으로 끌어오기 위해 남의 살림터에 송전탑을 세우는 것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한다. 언론에서는 이 일에 반대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밀양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외부세력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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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에 따르면 외부세력은 내부의 문제를 해결 하는 것보다는 그 문제를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이 목적이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없고 제 잇속에 대한 계산만 빠른 존재들이 외부세력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 그들의 논리에 따르더라도 지금 밀양을 망치고 있는 외부세력은 바로 한전과 보수언론이라고 하겠다. 밀양 주민들이 우리 말 좀 들어보라고 통사정을 해도 외면하고 ‘국가의 이 익’과 ‘불가피한 희생’이라는 상투적인 말만 무한정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이들이 마치 나치의 관료들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들을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긴 것처럼 지금 밀양의 주민들을 국가의 이익과 도시의 편리를 위해 ‘불가피하게’처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이처럼 “상부의 명령에 충실했 다”는 말만 재판 내내 반복한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에게서 ‘평범한 악’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아렌트에게 그 말은 아이히만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한 번도 자기 생각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고백이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이 불가피하다고만 말할 뿐 자기가 ‘최종 처리’하고 있는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한 번도 사태를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 바로 아이히만의 죄였다. 이처럼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타인의 희생을 불가피하다고 정당화할 때 우리 모두는 아이히만처럼 끔찍한 악이 될 수 있다. 악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한전과 정 부, 그리고 보수언론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말에 동의하고 침묵할 때 우리는 제 이웃을 뜯어먹으며 외면하는 악귀가 된다.

 

반대로 지금 밀양에 내려가 있는 탈핵버스를 탄 이들은 외부세력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이웃’ 이다. 이들은 자기 잇속에 대한 계산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기 꺼이 시간을 쪼개서 내려갔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시간과 돈, 그리고 정성을 밀양에 내어주고 있다. 자기 이익만 계산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밀양 주민들의 처지에 서보고 노력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웃’이라 부르며 널리 권장했다. 예수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너도 가서 그렇게 해라”고 권면한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서로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외부세력이 이웃에게 외부세력 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마침 지리산에서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는 한 후배가 밀양에 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답답해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뭐라도 하자.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 무엇이라도 하자. 절이라도 하자.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걷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기도하고, 현장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함께하고, 교사들은 학생들과 공부해보고,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일하자. 밀양을 생각하면서.”무 엇을 하든 하는 동안에 그들을 ‘생각’하는 것, 이 것이 서로에게 악귀가 될 것을 강요하는 시대에 이웃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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