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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평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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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특집]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면 좋겠습니다
첨부 작성일 2018-04-27 조회 547

옥현진 주교 인터뷰

삶과 신앙, 그리고 선물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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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처럼 주어진 신앙의 해가 오는 11월 24일로 끝난다. 주교가 되고 나서 다섯 배는 바빠졌다는 광주대교구 옥현 진 시몬 보좌주교(46)를, 서울에 왔다가 광주로 돌아가려고 용산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만나 삶과 신앙, 선물에 얽 힌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9월 12일 오후 3시, 한국 최연소 잘생긴‘훈남’주교님과 함께한 30분간의 짧은 동 행은, 현재(present)가 바로 선물(present)임을 느끼게 해준 따뜻한 시간이었다. / 대담·정리: 배봉한 편집위원

 

 

가장 큰 선물, 부모님을 통해 받은 신앙

저는 모태신앙이라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성당을 다녔습니다. 어릴 때 놀이터가 성당이었고, 복사를 하고 또 중고등부 학생회장도 하고, 그러다가 신학교를 가서 사제가 되고, 지금은 주교가 되어 직무를 수행하고 있지요. 모태신앙이 없었다면 현재의 이런 모습으로 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부모님을 통해 주신 신앙, 부르심 그 자체가 저에게는 선물인거죠. 현재의 제 존재 자 체에서 신앙이라는 선물을 빼놓고는 표현할수도, 말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교 후보자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가 주교가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교황대사관에서 면담이 있다고 하기에 그것이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하나의 절차인 줄 알았어 요. 저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다만 후보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교황대사님이 서명을 하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예’라고 답을 하면 그걸로 완성된다고 해서, 시간을 좀 달라고 하고 경당에 가서 묵상을 하는데, 교황대사님이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묵상을 하는데 그동안의 하느님의 이끄심, 섭리가 스쳐가는 것이었어요. 저도 인간적인 약점도 많고, 모든 사람한테 호감을 주는 스타일도 아니고, 제 나름의 철두철미함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넉넉하고 여유로운 인품의 소유자도 아닌데, 하느님께서 왜 나를 불러주셨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선물처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제가 신학교 갈 때도 그랬고, 신학교 가서도 그렇고요.

 

저는 공부를 특출하게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1학년 때부터 부제반 때까지 성적이 꾸준하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성실하다고 교수 신부님들과 윤공희 대주교님이 추천하셔서 로마로 유학을 보내주셨어요. 유학을 가서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버스에서 예기치 않게 만나 제 논문 교정을 도와주신 주세페 할아버지를 비롯해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많이 소진되고 갈증을 느낄 때 서울대 교구 김평만 신부님 소개로 루이스 마누엘 프라도 영성지도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분을 통해서 영적으로 한 단계 진일보하는 계기를 만났습니다. 유학생활을 통해 학위를 얻은 데 영광과 큰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학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을 제대로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기쁨이고 영광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제가 주교 후보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그 순간에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안배하시고 준비해 두셨구나. 나를 고쳐 쓰시려고, 내가 부족하고 합당하지 않은데도 당신께서 고쳐서 쓰시고자 하셨구나.’하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노(No)’라고 대답하면 이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데, 그러면 교구에서 얼마나 힘이 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내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는 능력은 없는데, 광주대교구를 위해서, 나아가 한국교회를 위해서 무언가 내가 할만한 일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불러주셨을 거라고 믿고, 제게 맞는 그런 역할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예’라고 대 답했습니다.

 

 

가난하게,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주교가 되면서 화두처럼 다가왔던 것이 가난한 이들이었어요. 제가 왜관 수도원에서 피정을 하려는데, 로마에서 친하게 지냈던 청주교구 홍성의 신부님이 제가 주교가 된 걸 알고 저하고 같이 피정 을 하고 싶다고 왜관으로 오셨어요. 홍 신부님은 과테말라에서 가난한 원주민들을 위한 사목을 하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주교님, 가난한 이들은 주교님을 찾아가기 어렵습니다. 주교님이 가 난한 이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 말씀이 굉장히 가슴에 와닿아서 화두로 잡고 피정 내내 묵상하며, 그 마음 잃지 않고 살겠다고 답을 드렸어요. 그런데 그런 많은 선물들, 사람을 통해 하느님 말씀 을 듣고 이미 받은 것을, 하느님께서는 이제 나누고 실천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더 크게는 거룩함을 생각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되는데, 육을 지니고 있고 두 발을 땅에 딛고 살기에 신학생 때나 부제나 사제, 주교가 되어서도 세상의 유혹이 끊이지 않습니다.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무시당하거나 하면 서운해 하는 것 같은 기본적인 명예욕부터 시작해서 안락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욕구까지. 하느님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지키면서 산다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유혹들을 떨쳐버리고, 하느님께 받은 선물을 사람들에게 모범으로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새 신부님들과 렉시오 디비나를 하면서, 나중에 죽을 때 내 통장에 돈이 하나도 없었으면 좋 겠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다 쓰고, 생기는 것들이 있으면 그때그때 다 나누고 그렇게 살 수 있으 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1년마다 자기 통장을 정리한다는 사제가 있었어요. 받은 생활비를 12월 30일이 되면 전부‘0’으로 만들어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새 신부님들한테 그랬어요. 청년들한테 삼겹살이나 술을 사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필요할 때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먹고 나면 거의 잊어버리지 않느냐. 차라리 형편이 어렵고 공 부하고자 하는데 힘겨워하는 청년에게 봉투에 5만원이나 10만원이라도 담아 건네며, “힘내, 신부님 이 기도해 줄게!” 하는 것이 그 젊은이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선물이 되고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사제는 정말 돈도 잘 써야 합니다. 자기 취미생활을 하는 데 펑펑 쓰는 게 아니라 적재적소에 잘 쓰는 게 정말 잘 쓰는 거죠.

 

가난한 이들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찾아가야 한다는 것, 거룩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이 제가 하느님이 주신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억 하나 : 공산주의자 티시오 씨

방학이 되면 용돈도 벌 겸 이탈리아 본당에 나갑니다. 본당신부님을 대신해서 미사도 드리고 성사도 주고 하면서 두 달쯤 지내게 되는데, 이탈리아 북쪽 비엘라 교구의 발레모소라는 본당이 있어요. 그 교구에 마돈나 네라라는 성지가 있습니다. 한번은 그 성지를 순례하러 갔는데 제가 몸담고 있는 이탈리아 본당의 신자 두 자매를 만난 거예요. 한 자매가 얼굴이 너무 어두워요. 무슨 슬픈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옆에 있던 자매가 말하기를, 아들이 작년 성탄 바로 전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대답해요.

 

집에 한번 놀러가겠다고 약속하고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아주 가난한 가정이었어요. 딸 하나가 있는데 뇌성마비였어요. 그 남편은 티시오 씨라는 공산주의자였는데 아들 장례미사만 갔지 성당에 안 나가요. 제가 외국인으로서 별로 할 것은 없지만 먹을 게 생기면 싸가지고 가서 이야기도 나누면서 그 가족하고 굉장히 가까워졌어요. 그런데 제가 자주 찾아가니까 공산주의자 티시오 씨의 마음이 열렸어요. 처음으로 한 농담이 제가 발레모소 본당신부로 오면 성당에 나가겠다는 거였어요.

 

신앙이라는 건 감동, 사랑 그런 거 같아요. 말뿐인 사랑이 아니라 정말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사랑, 사람을 통해서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이런 고통 속에서도 위로가 있구나 하고 느끼면 절대 하느님을 떠나지 않는다는 거죠.

 

 

추억 둘 : 다니노 아마토 신부님

로마에서 프라도 신부님한테 영성지도를 받으면서 이냐시오 피정을 한 달 하고는, 매주 한 번씩 고해성사를 하고 영성지도를 받고 한 달에 한 번 하루 피정을 하다가 방학을 맞이했어요. 그래서 파르마 교구의 한 본당에 가서 도와주게 되었는데 고해성사를 보고 싶은 거예요. 본당신부님한테 보기는 쑥스럽고, 영적지도를 해주실 수 있는 분이 있느냐고 하자 아주 유능한 분이 있다며 사베리아니 수도원의 다니노 아마토라는 할아버지 신부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한 달간의 방학을 끝내고 오는데 그분이 선물을 주시는 거예요. 그 선물을 잊을 수가 없는데 당신이 쓰신 영성 책자였어요. 왜 잊을 수 없는 선물인가 하면, 절판되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책이라 당신이 가진 유일한 책이기 때문이에요. 복사본이 하나 있었는데 당연히 복사본을 저에게 주실 줄 알았는데, 책을 주시는 거예요. 나는 이제 나이도 먹었고 네가 젊은 사제로서 이것을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준다면 더 잘 활용할 것 같다면서 이 책을 가져가라고 주셔서 크게 감동을 받았어요. 그 신부님은 지금은 아마 세상을 떠나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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