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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숫자 1(하느님의 수)
첨부 작성일 2018-04-29 조회 510

가톨릭 특강

숫자 1(하느님의 수)

명백훈 프란치스코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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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와 함께하는 하나,

하나의 하나,

하나 안의 하나,

하나 안에서 하나가

영원히,

아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곡식이 익어 노랗게 된 너른 들판에 있는 죽 산성지의 저녁은 황혼이 아름답습니다. 비록 많은 논에는 벼들이 이미 베어져, 수확 뒤의 처량한 모습들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아름답습니다. 옥잠화와 구절초의 가냘픈 꽃받침들과 샛노란 소국과 씀바귀 꽃, 가지각색의 빛깔을 지닌 코스모스, 보랏빛 쑥부쟁이, 붉은빛의 백일홍과 맨드라미와 나팔꽃, 그리고 예전에는 태양을 닮아 화려했겠지만 지금은 까맣게 익은 씨만 남아 무겁게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들, 그 밖에 별처럼 생기거나 새부리나 포도송이처럼 생긴 갖가지 다른 꽃들이 노랗게 익어 수확을 기다리는 호박들 사이에서 벼들과 함께 죽어갑니다. 이미 꽃잎들에 내리어 마지막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이슬은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이 반짝입니다. 여러 빛깔의 머플러로 체온을 감싼 순례자들은 잔디밭에 머리를 내미는 하얀 메밀꽃, 분홍색 분꽃, 샐비어, 보랏빛 비비추꽃 같아 보입니다. 이제는 불타는 듯한 해넘이의 마지막 붉은 빛에 이어 황혼의 보랏빛 감도는 어두움만이 세상을 채웁니다. 장엄한 광경은 참으로 영원합니다. 그리고 그 장엄함의 음표 사이에 잠시 쉼표를 찍고 사라지는 우리의 삶은 덧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순교 성인들처럼 칼 아래 스러지는 일은 없어도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생을 마치면, 푸르게 빛나는 순결로 꾸며진 완전한 아름다움으로 들어 올려져 예수님의 영원한 승리 속에 많은 의인들과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신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바로 이 한 생에 모든 것을 집중해 야만 할 의무가 있으며, 이것은 모든 인간 존재의 일회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숫자 1이 곧잘 똑바로 서있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 것처럼 말입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하 느님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바로 숫자 1이며, 인간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듯이, 숫자1, 즉 오직 한 번은 실제로는 무엇이라고 표현될 수 없는 하나의 신비입니다. 숫자 1을 바라보는 것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거울은 원형(圓形)입니다. 1이 원으로 표현되는 원리를 그리스어로 모나드(Monad)라고 하는데, 이는 안전함, 통일성, 그리고 모든 모양의 원천인 자궁을 뜻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모나드는 숨을 쉬면서 그다음에 이어지는 모든 수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경향잡지 2006년 1월호 참조)

 

111111111 x 111111111 = 12345678987654321

 

모나드는 하느님의 수이며 우주의 공통분모입니 다. 어떤 수에 1을 곱하거나 나누어도 항상 그 자신의 수가 되듯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는 무차원의 중심으로부터 무한히 많은 원주 위의 점들로 팽창해 가는 원은 무(無)에서 만물이 생겨난 신비로운 창조를 의미합니다. 즉, 원은 기하학적 으로 숫자1을 뜻하며,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않든 항상 모든 것 속에 존재하는 완전성과 신성한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원의 반지름과 원둘레의 길이는 결코 비슷한 단위로 측정 될 수 없습니다. 서로의 관계가 π=3.1415926…의 초월값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원은 유한과 무한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중세의 학자들은 원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은유적으로 나타낸다고 믿었습니다. 원을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오. 원은 만들어지기를 간청하는 모양입니다. 채 완성되지 않은 원을 보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부담스러워 완성시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합 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의 중심, 즉 점을 자신도 모 르게 응시하게 됩니다. 점은 전체 중의 전체의 근 원입니다. 이해의 경지를 넘어서는 알 수 없는 대 상이며,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향해 접혀있습니다. 그러나 점은 마치 씨앗처럼 팽창하여 원으로 자신을 완성합니다. 이 점이 우리 자신의 무게중심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이 단어를 잘 이해하고 있는 장소인 순수한 영혼에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데이비드 소로가 “육체는 영혼의 첫 번째 제자”라고 말하듯, 성령께서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참을성으로 영혼을 타이르시고 격려하시는 그곳은 영혼이 육체를 올바르게 이끌어 비로소 육체의 참다운 스승이 되는 곳입니다.

 

박해와 순교에 직면한 선조들의 아직은 인간적인 한계가 있는 영혼과 정신과 육체에 초자연적인 도움을 주시는 주님. 비난과 모욕의 고통, 고문의 고통, 혈육과 헤어지는 고통, 생명과 그 밖의 모든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순교자들의 마음이 벌써 가있는 곳, 즉 하늘로 가기 위하여 기꺼이 목과 사지를 고문에 내맡기게 하는 주님의 인자(仁 慈)는 무한하십니다. 이 무한한 인자에 힘입은 사 랑은 공로이며, 희생도 공로이며, 영웅적인 신앙고백도 공로이기에 순교자들은 세 겹으로 깨끗합니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불평등한 고통과 슬픔, 비루함과 실망으로 더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음은 하늘을 바라보며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가르치며 꾸준히 하느님의 뜻을 행하며 살기에, 우리 또한 하늘나라에서 순교자로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인생은 숨 한 번 쉬는 순간이고, 영원은 영원한 현재임을 상기하며 기쁨과 바람의 노래를 읊어 봅니다. 샬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에페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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