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보기서울평협 바로가기
> 계간 평신도 > 웹진
계간 평신도
  • 2013년 겨울 / 계간 42호
    형제애(兄弟愛)와 가정 기도
    PDF 다운로드
제목 [영성] 신앙을 위해 피흘린 선조들을 생각하며
첨부 작성일 2018-04-26 조회 573

신앙을 위해 피흘린 선조들을 생각하며


방관석 비오 (금호동 선교본당)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는 우리 형제들에게‘성실하고 근면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살아가거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매일의 만과, 매괴신공 때나 명절 등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면, 빠지지 않고 조상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저의 고조할아버지가 병인박해 때 순교하셔서, 더 이상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던 고조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그 때문에 일곱 살 다섯 살 두 아들을 데리고 유랑 걸식하던 고조할머니가 아들 하나를 잃어버리는 아픔마저 겪어야했던 이야기, 스물여섯 살의 지아비를 해미순교지에서 자리개질로 잃고, 홀로 어린 자식을을 돌보고박해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고조할머니의 고통을 아버지의 말씀으로 어린 나이에 듣고 있었지요.

 

어릴 때 병인년 박해에 대한 이야기는 천주교 수난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밖에는 없었던 때, 그 누구도 말 해줄 수 없는, 아버지만이 말씀해주시던 역사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역사였고, 귀로 듣고 익혀야 했던 가족사였습니다.

 

이제 저는 고조할아버지가 순교하시던 나이의 두 배를 넘어 살았습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당시의 그분과 부인과 자식들을 생각해봅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어려움이 그분들에 비해 얼마나 약한가를 생각하며 힘든 일상을 버티어냅니다.

 

“성실 근면 정직”이것이 내가 정한 집안의 가훈이다고 하시던 아버지께‘뭔 가훈이 교훈 같아’라고 했던 내게“우리 집안은 전통으로 내려오는 가훈을 잃어버린 집안이란다”고 하시면서 다시 들려주던 이야기들.

 

마을과 문중에서 쫓겨나 살아남기 위해 견뎌야 했던 시간들에서 예전의 어떤 것인들 남아있겠어요. 그리고 가난 속에서도 8남매를 성실하고 근면, 정직으로 키워내신 아버지. 당신의 아들 둘이 대전교구의 신부가 되었을 때, 순교자이신 당신의 선조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었겠지요. 그리고 내게 당부하시던 말씀이 하나있었습니다. “모든 신부님은 형님이나 동생처럼 생각하고 도와 드려라.”

 

아마도 당신의 아들 신부들과 그 동료들이 똑같이 모두 귀하고 사랑스러우셨나 봅니다. 지금도 아버지의 그 뜻을 열심히 지키고 살려고 합니다.

 

나의 두 아이들은 순교자의 자손답게 성당에서 활동을 잘하는 아이들로 살고 있습니다. 고조 할아버지께서는 아마도 5대손 자식들이 기쁜 마음으로 활동하는 것을 흡족한 웃음으로 지켜보시겠지요. 당신의 시대에는 꿈도 못 꾸던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요.

 

순교자 방영창 안토니오님! 저의 고조할아버지! 우리 아이들의 5대조 할아버지! 당신의 모든 것을 잊지 않고 삶 속에서 기억합니다, 당신의 뜻에 맞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당신의 뜻을 후손에게 영원히 기억시키며, 뜻을 따라 살게 가르치겠습니다.

 

 

이젠 돌아가신 아버지, 지난해,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난 형님신부님(난 작은형이라고 많이불렀습니다. 나만이 쓸 수 있는 단어이니까요), 모두들 살아계신 듯한 이런 마음은 아버지가 어린 시절 자주 말씀해 주시던 순교자와 선조들에 대한 말씀들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항상 삶 속에서의 대화였으니까요.

 

“나의 아들 딸아! 너희들은 순교자의 후손이며 하느님의 축복받은 자녀란다.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와 너의엄마가 너희를 하느님 사랑으로 키웠단다.”

 

이젠 너희들이 이어갈 때가 되었다. 그때가 되면 또 너의 자식들에게 자랑스런 조상님들 이야기를 해주렴. 항상 하느님 앞에서 성실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바로 너희의 선조들이라는 이야기를.

 

올해가 저물기 전에 다시 한 번 아이들과 함께 해미성지로 고조할아버지를 뵈러 가야겠습니다. 고조할아버지는 저희들이 자주 오는 것을 좋아하시거든요.

 

 

*방영창 안토니오
온양 방씨로 부인과 일곱 살, 다섯 살 난 두 아들과 내포지방 양촌(현 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서 농사를 짓던 중 병인박해가 일어나 1866년 11월 체포돼 해미성 서문 밖 하수구 돌다리 위에서 자리개질로 순교했다.


자리개질은 군인 네 명이 죄수의 팔다리를 각각 하나씩 잡고‘어영차’하는 구호 소리에 맞춰 높이 들었다가 세차게 돌다리 위에 매쳐 단 번에 머리를 박살내는 잔인한 사형 방법이다. 이렇게 순교한 해미순교자들은 성 밖에 아무렇게나 쌓였다가 개천에 버려졌다.


당시 자리개질 현장의 하수구 돌다리는 지금 서산본당 정문 앞에 순교돌로 세워져 있으며 아직도 순교자들의 피가 돌 속에 배어 있어 붉은 흔적이 남아 있다.

 

 

이전글 땅과 밥상, 사람과 세상, 자연 생태계를 살리는 우리농 운동
다음글 성탄의 의미
      


TOP 위로가기
Copyright ©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All Rights Reserved.

04537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80 (명동2가 1) 가톨릭회관 510호
전화 : 02) 777-2013 / 팩스 : 02) 778-7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