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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평신도
  • 2013년 겨울 / 계간 42호
    형제애(兄弟愛)와 가정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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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금] 나눔의 경제로 희망을 전파하는 경제전문가
첨부 작성일 2018-04-28 조회 547

평신도가 만난 평신도

나눔의 경제로 희망을 전파하는 경제전문가



곽수종(제미노 53). 그의 이름 뒤에는 항상‘경제 전문가’라는 직함이 붙는다. 연세대 경제학과, 미 캔사스 주립대 경제학 박사, 캔사스 주정부 경제정책실 책임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수석연구원, TV와 라디오의 경제프로그램 진행자.

 

나라 안팎의 경제 흐름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요즘 ‘경제 전문가’라는 수식어는 안경을 낀 깐깐한 인상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그는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은 소탈한 옆집 삼촌 같았다. 세상의 흐름에 모르는 것이 거의 없을 것 같은 그에게도 기대고 싶은, 매달려야 할 ‘신앙’, 종교가 필요할까? 그런 거 없어도 큰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살 것 같은데 ….


하지만 달랐다. 그는 자신이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것이 ‘하느님 뜻’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고, 그러한 깨달음이 없었다면, 한 인간으로서나, 신앙인으로서 진정한 의미에서 ‘성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곽수종 박사와 나눈 일문일답. 박진주 안젤라 편집위원

 

 

 

하느님을 만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제게 종교는 할머니와 함께 다녔던 절이 전부였습니다. 저의 손을 잡고 할머니는 산을 올라 절에 가시곤 하셨습니다. 산이 주는 푸른 기운과 고즈넉한 절 풍경, 멀리서 들려오던 목탁소리가 제가 경험할 수 있었던종교의 모습이었지요. 그러던 제가 하느님을 만나게 된 계기는 어찌 보면 매우 엉뚱합니다. 대구가 고향인 제가서울에 있는 연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연희동에서 하숙을 했는데, 하숙집 주인 아저씨는 당시 연희동 성당에서왕성하게 활동하시던 독실한 천주교인이셨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과 함께 가톨릭 소식지도 만드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 지금의 아내와 한창 연애를 하던 대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밤 10시가 하숙집의 통금시간이었는데, 놀다보니 시간이 늦어 대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무모하게 담을 넘었는데, 주인 아저씨에게 딱 걸리고 말았습니다.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 “이제부터 성당에 나갈 테니 용서해 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성당에 나가게 되었고, 바로 예비자 교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일은 세례식 때 일어났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신부님이 성수를 뿌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데, 제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어떤 슬픈 기억이 떠올랐던 것도 아니었고, 어떤 장면을 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제 생애에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이 없습니다. 성수가 뿌려지는 순간, 내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씻겨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젊은 시절, 전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다는 느낌도 들었고, 무언가 이전과는 다른 기분이 들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제 대부님이 저를 성당으로 인도하셨던 하숙집 주인 아저씨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1년 후에는 견진성사도 받았습니다. 견진 대부님역시 하숙집 주인 아저씨였고요.


세례와 견진 두 개의 성사를 받고, 또 특별한 인연의 대부님 덕택에 제가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 고집 세고, 잘난 줄만 알았던 제가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배를 하게 됐다고 할까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주님의 뜻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보니까, 성숙한다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더라고요. 특히 ‘종교적으로 성숙한다’는 것은 ‘순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더군요.


지금까지 50년 조금 넘게 살아오면서 제 뜻대로 된 일은 정말이지 하나도 없더군요. 젊은 시절, 미국에 유학을 갔던 것,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던 것,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것, 외환위기가 왔을 때 미국으로 가서 아이들과 아내를 돌봤던 것, 2005년에 삼성경제연구소에 들어갔던 것, 그리고 퇴사했던 것, 지금 생각해보니 모두 제가 뜻해서 이뤄졌던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수많은 점을 찍으며 지금까지 왔는데, 훗날 돌이켜보니 그 점들이 연결이 되어서, 하느님이 계획하셨던 일과 닿아 있더란 겁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들이 하느님이 뜻하신 모습으로 이뤄져 나갈 것이기에 순간마다 우리의삶에 찾아오는 작은 어려움이나 슬픔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이죠.

 

이제 곧 성탄입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성탄절이 있으신지요?
안타깝게도 기억에 남는 성탄절은 없네요. 그렇지만 아쉬운 성탄절은 있습니다. 매 성탄절이 그러했습니다. 젊은시절에는 제 앞날만 바라보고 달리느라 가족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성탄절도 마찬가지였고요.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제가 한국에 들어와서 일을 하느라고 또 떨어져 지내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가정’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것 같아요. 언제부터인가 성탄절에 가족과 함께 지내는 장면을 접하면서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버거워하는 가장이 많잖아요. 성탄절에 함께 모여서 시간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더 늦기 전에 알았으면 좋겠어요. 가장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족이 모여 따뜻한 밥 한 끼를 같이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지 알면 좋겠습니다.


과거에 비해 요즘은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살기도 편해졌는데, 왜 사람들은 더 평화롭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걸까요? 취업난과 스펙 경쟁,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는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마태오 복음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물을 짜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시니 전혀 망설이지 않고 따라 나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그물을 짜던 어부는 가장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삶의 목표나 희망이 없었지요. 그렇게 매일같이 같은 일을 하고, 희망이 없던 베드로에게 다음 생애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고대에는 사후세계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리스 신화에도 신과 인간을 구분지어 놓았습
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에는 이 개념이 바뀌게 되었죠. 아프고 병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도움을 주시면서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이웃과 나누며 이웃을 위해 살다보면 나중에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파하게 됩니다. 이건 인간사적으로 볼 때 더할 수 없는 혁명이라고 할 수 있죠. 예수님이 인간에게 던진 메시지는 다름이 아닌 구원이었습니다. 현재가 중요하긴 하지만 다음 생애가 있기 때문에 다음 생애를 위해서 그때,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지금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으려고 하지 말라는 뜻을 전하신 겁니다.


좀 돌아왔지만, 저는 젊은이들에게 바로 이러한 점을 말해주고 싶어요. 그들이 구하고자 하는 답은 먼 곳에 있는데, 그들은 가까운 곳에서만 답을 구하려고 합니다. 당장 보기 좋은 직장을 구하려 하고, 가까운 미래에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는 혹은 후년에는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거짓말은 못하겠습니다.


당장 2014년만 해도 청년들에게는 2013년보다 더욱 혼란스러울 것 같거든요. 하지만 종교적인 가치가 아이들에게, 청년들에게 좀 더 위로가 되는 쪽으로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해 청년들이 부르짖던시대가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웠지만 당시에는 종교가 청년의 방패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젊은이들의 고뇌와 아픔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종교가 충분히 해 주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민주화 운동이 끝나고 명목상으로는 민주주의 시대가 찾아왔죠. 그런데 오히려 젊은이들의 변하지 않는 고민인 ‘돈, 사랑, 명예, 철학’등에 대해서 지금의 종교는 크게 어루만져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급속한 현대화를 겪어면서 물질 만능주의 풍조가 팽배해지고, 그 위에 종교가 자리를 잡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중세시대에 천주교회가 면죄부를 팔았는데요, 그것은 물질 만능주의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었죠. 그런데 이런 일이 다시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삶에는‘돈’보다도 중요한 것이 많은데, 그것들을 가르치는 곳이 없습니다. 행복은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효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세상에 많은 것이 있고 그 위에 하느님의 존재가, 하느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젊은 친구들이 깨닫게 되는 계기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힘든 사람이 참 많아요. 하지만 잘난 사람들은 잘난 척을 하고 힘이 없는 사람은 마냥 힘든 세상입니다. 하느님이 말씀하신 세상은 힘든 사람은 도움을 받아야 하고, 힘이 있는 사람은 이웃을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위로해 주는 사람은 더 없죠. 이럴 때일수록 천주교회가 우리 젊은이들에게 다가가 위로해 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즉 복음을 전하는 다양한 활동을 더욱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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