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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겨울 / 계간 42호
    형제애(兄弟愛)와 가정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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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나자렛 성가정 : 사랑과 질서
첨부 작성일 2018-04-28 조회 615

나자렛 성가정
사랑과 질서

명백훈 프란치스코 (수학강사)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의 모든 속성 중에서 으뜸이요, 원천이 틀림없습니다. 하느님의 모든 속성이 사랑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용서하는 사랑이요, 정의는 다스리는 사랑, 그리고 지혜는 가르치는 사랑이고, 능력은 보살피는 사랑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번 호에는 요셉, 마리아, 예수님이 계신 성가정은 얼마나 아름답고 기분 좋은 거룩함이 감돌았을까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곳은 오직 평온과 미소와 화목 속에 거룩하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곳이 아니었겠어요. 그 집에서는 기도가 있고 소박한 음식이 있으며 노동을 사랑하고 겸손이 있어 거룩한 질서만 있었을 겁니다.


착하게 되기 위한 덕성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질서, 인내, 꾸준함, 겸손, 애덕, 용기, 소망, 온유, 믿음, 사랑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중에서 질서는 특별히 중요한 특성이 됩니다.

 

여기서 저는 의도적으로 질서는 맨 처음에 두고, 사랑은 맨 끝에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완전한 직선(성덕)의 두 끝이기 때문입니다. 도화지에 그은 직선은 시작도 끝도 없는 수학적 성질을 가집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두 직선의 두 끝은 서로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잘못 그린 사각형에서의 어긋난 꼭짓점 같은 곳에서처럼 말입니다. 그와 달리 나선이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곡선이나 그림은 어느 것이나 항상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룩함은 직선같이 단순하고 완전하여 두 끝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 직선은 곡선보다 긋기가 훨씬 쉽다고 생각하세요?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어떤 복잡한 도면에서는 작은 결점은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직선에서는 잘못된 곳을 하나하나 즉시 발견하게 됩니다.

 

기울어지거나 불확실해서 틀린 곳을 말입니다. 중림동성당의 후문에는 성가정에서의 한 장면이 모셔져 있습니다. 성모님이 바느질을 하시고 어린 예수가 요셉 성인의 일을 돕기 위해 편평하고 반듯한 널빤지를 건네주시는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마치 요셉 성인이 어린 예수에게 “얘야, 알겠느냐? 장식에 있어서나 선반으로 하는 일에는 그래도 그저 넘어 갈 수 있다. 왜냐하면 아주 익숙하지 못한 눈은 어떤 점은 깨닫지만 다른 점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널빤지가 제대로 편평하지 않으면 농부의 식탁같이 아주 간단한 일에 있어서도 그것은 실패작이다. 한편으로 기울거나 쓰러질 것 같이 된다. 그 식탁은 땔나무로밖에는 소용이 없게 된다”고 하는 인간적인 지혜의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지혜의 말씀이신 예수께서는 “사람들은 이 말을 영혼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지옥 불에 던져지기에 알맞은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즉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제대로 대패질이 되고 다듬어질 널빤지처럼 완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그의 일거리의 여러 부분을 맞추려고 할 때에 불안한 새처럼 이 일에서 저 일로 건너뛰는 것같이 무익한 일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처럼 그의 영적인 일을 무질서하게 시작하면 그는 아무 것도 제대로 랑이 있어야 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무언의 교훈이 오가는 이곳 한편에는 성모님께서‘이 모든 것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시려는 듯(루카2,51)’한 고요한 표정으로 앉아 계십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무질서 때문에 잘못된 경우가 참 많습니다. 질서 없는 친구 사이의 우정, 질서 없는 형제·자매 간의 우애, 질서 없는 부부 간의 애정, 질서 없는 스승·제자 간의 예의, 질서 없는 부모·자식 간의 사랑 이 모든 것들은 우리를 유익함보다는 불완전으로 이끌어 갈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진리와 성실성과 성덕의 문제에서는 반듯한 널빤지에서와 같이 적응도 타협도 없다는 교훈을 어린 예수는 성모님과 요셉 성인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그런 지혜를 알기에는 예수가 너무 어려 보인다고요? 하지만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질서이다’(집회 1, 5)라는 구절과 ‘하느님은 특히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혜를 풍부히 나누어 주신다’(집회 1, 10)라는 구절을 생각할 때, 사랑이신 하느님이 아직 어린아이지만 말씀이신 당신의 아들에게 말의 지혜와 고결함을 주셨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이것은 어린아이라는 성장의 법칙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큰 빛과 지혜 안에 이루어질 인간의 구원, 곧 구세주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원한 지혜 자체이신 분이 자신의 어머니와 양부께 자신의 지혜를 주시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저에게는 더욱 어렵습니다.


요셉은 가장이므로 성모님과 어린 예수는 그에게 애정과 존경과 복종을 드립니다. 이것은 도덕적 질서입니다. 가정은 집과 가구와 옷과 음식과 더불어 하느님의선물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하느님의 섭리가 나타납니다. 짐승에게 털을 주시고, 새들에게는 깃을, 풀밭에는 신록을, 골짜기의 백합에는 옷을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 말입니다. 집과 옷과 가구와 음식들을 주시는 하느님의 손을 찬미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고 주의 선물로서 경건하게 다루는 것은 물질적인 질서입니다. 마리아와 요셉 두 분의 빛나는 사랑과 이토록 기분 좋은 질서가 있기에 아마도 어린 예수는 세상의 일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떠나온 하늘나라를 그리워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눈을 감고 마음을 모아 가슴 깊이 성가정을 떠올려 봅시다. 어린 예수가 온전히 행복하였을 나자렛 성가정의 고요한 하루를 상상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대단한 은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요한 1, 14) 못지않게 하느님이 우리 사람에게 순종하셨다는 것, 곧‘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자렛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루카 2, 51)는 사실은 정말 엄청난 신비인 것 같습니다. 요셉 성인의 상본이나 조각을 보면 백합꽃과 더불어 반듯함의 상징인 직각삼각자를 들고 계신 것을 간혹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의미를 알고 아울러 성인의 반듯함을 따르려는 우리들은 참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착한 뜻을 가지고 반듯하게 살며 그로써 마음과 영혼에 인자하신 예수님의 빛을 가진다는 것은 이미 하나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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