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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겨울 / 계간 42호
    형제애(兄弟愛)와 가정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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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기도하여라, 많이 기도하여라, 항상 기도하여라’
첨부 작성일 2018-04-28 조회 624

벨기에 반뇌와 보랭 성모 발현성지

‘기도하여라, 많이 기도하여라,
항상 기도하여라’

류정호 데레로사 (가톨릭생명연구소 연구위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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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뿌연 정류장 불빛조차 얼어붙는 겨울밤, 홀로 긴 그림자 늘어뜨리고 닿는 버스마다 막내딸이 내려오나 기웃거리던 우리 엄마. 다다미 단칸방에서도 비닐온실을 만들어 화분에 키운 꽃과, 창가에 걸어둔 작은 조롱에서 재재거리는 새소리로 자연을 가깝게 끌어주시던 우리 엄마. 식당의 물 한 사발로 허기를 달래고, 오가는 행인이 손님이려니 눈길 좇던 우리 엄마. 어쩌다 장사가 잘 된 날은 얼굴 가득 자그르르 웃음꽃 피우고 찬거리 든 양손을 덩실거리며 이슥한 밤길을 내처 오시던 우리 엄마.

 

스스로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아드님까지 내어주신 지극한 사랑. 그리고 아들 예수님의 부활로 인간에게 참된 희망을 품게 한 하느님을 알기 전까지 내게 신앙은 오로지 우리 엄마였다. 뙤약볕에 거북등같이 까맣게 갈라진 엄마의 발등을 보면서 밤 새워 공부할 수 있었고, 엄마의 환한 미소를 그리며 1등을 꿈꾸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자식들이 세상의 전부인 엄마를 슬프게 하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베갯머리에까지 일렁이던 촛불의 긴 그림자는 엄마의 곡진한 기도소리를 담고 새벽을 열었다. 꿈결 같은 엄마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엄마는 무엇을 위해 저렇게 매일 기도를 할까’, 자식이 늘 앞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씩 엄마의 기도가 궁금했다.

 

버스는 빗물이 방울방울 맺힌 반뇌의 성모님을 떠나 벨기에의 또 다른 성모발현 성지인 보랭으로 달리고 있다. 광활한 유채꽃 대지가 노랗게 뒤덮은 차창을 후드득 성긴 빗방울이 빗금을 그으며 길게 따랐다.

 

벨기에 동부지역 거대한 전나무 숲이 시작되는, 축축하고 질퍽거려‘진창’이라 불리던 가난한 마을 반뇌. 팔십 년 전, 마을의 외진 베코네 부엌 창가에서 동생을 기다리던 마리에트에게 아름다운 부인이 처음 나타났다. 단박에 성모님을 알아보고 로사리오 기도를 바친 마리에트에게 여덟 번이나 발현하신 반뇌의 성모님은 “나는 가난한 자들의 동정녀다.” “작은 성당을 원하고, 기도를 많이 하여라.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부드러운 당부를 남기셨다. 때로는 슬픈 빛을 띤 얼굴로 “나는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이니라. 기도하여라. 기도 많이 하여라"는 엄한 목소리를 덧붙이기도 했다. 여덟 번의 발현에서 다섯 번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당부하시면서 기도의 중함을 일깨우신 반뇌의 성모님이다.


성모님께서 마리에트에게 손을 담가라던 샘물가에서 두 팔 들고 빗속 묵주기도를 바치던 우리 성당의 자매들은 노란 유채꽃의 환영과 환송을 오가며 시나브로 꿈길에 젖어들었다. 꿈속에서도 로사리오에 빠진 듯 평화로운 얼굴들이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아이의 얼굴에는 물질에 취한 오만함이 없다. 하느님도 예수님도 그리고 성모님에게도 자기의 생각을 덧칠하지 않는다. 그대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아이인 것이다. 성모님은 그런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마리에트를 인격으로 존중하며 나타나신 것이다.


어릴 적 나의 신앙이었던 우리 엄마도 내가 공부를 잘해서도, 예뻐서도 아닌, 오로지 엄마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에서 최고이며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거짓말만큼은 용납하지 않았던 우리 엄마는 한 번씩 회초리를 드셨다. 찰싹이던 회초리 소리가 그리운 지금에서야 성모님의 발현을 헤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성모님도 자식 같은 인간들이 기도에서 멀어지고 물질을 숭배하며 오만해짐을 멀찌감치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
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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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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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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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랭 성모 발현성지

 

 

버스 창밖은 되감기는 필름처럼 노란 유채꽃 구릉을 넘으면 초록 짙은 평원의 풍경을 되풀이했다. 한참을 달리니 소들이 풀을 뜯는 초지를 지나 꽃 화분을 내건 주택의 좁은 골목에 이르렀다. 이윽고 가는 빗속에 칠엽수가 높다란 길을 이루는 소박한 보랭 마을에 닿았다. 1949년 교황청이 공식 인가한 보랭 성모발현 성지가 기차역이 가까운 작은 마을 한가운데에 정결하다.

 

보랭의 성모는 반뇌보다 1년 먼저인 1932년 11월에서부터 1933년 1월까지 서른세 번에 걸친 발현에서 “기도하라”는 곡진한 말을 남겼다. 열네 살 앙드레 드장브르와 아홉 살 질베르트 드장브르 자매, 열다섯 살 페르난드 브와장과 열세 살 질베르트 브와장, 열한 살 알베르 브와장 형제의 다섯 아이에게 순백의 옷을 입고 황금빛 나는 왕관을 쓴 성모는 구름을 타고 나타났다.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동정녀”로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순례를 오도록 성당을 지어라”와 “기도 하여라. 많이 기도하여라”는 말과 함께 두 팔을 펼쳤는데, 가슴에 빛이 줄기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심장이 드러났다고 한다.
마지막 발현 때는 다섯 아이들 각각에게 “나는 천주의 성모이며 하늘의 모후이다. 항상 기도하여라. 잘 있어라”,“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키겠다. 잘 있어라”, “ 잘있어라”, “ 너는 나의 아들을 사랑하느냐?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너는 나를 위해 너 자신을 희생하라”고 이르며, 끝으로 페르난드에게 황금빛 성심을 보며주며 “잘 있어라”는 말을 남긴 후 사라졌다.


여느 성지에서처럼 밤을 새워 기도한 사람이 타고 온 휠체어를 두고 두 발로 성큼 성큼 걸어간 기적의 사례도 많다. 그래서인지 성지 여기저기 휠체어 탄 백발의 노인들이 눈에 띄었다.

 

많이 하고, 항상 해야 하는 기도는 무엇인가. 가진 것 없는 우리 엄마는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던 것이 기도밖에 없는 듯, 새벽을 기도로 열고, 밤을 기도로 닫았다. 엄마는 하느님께 자식을 위한 청을 곡진한 기도로 드린 것이다. 기도로써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았고, 기도로써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음을 알았던 우리 엄마였다.


성전에 소담한 한글 성모송이 걸린 보랭 성지는 우리나라 어느 성지에 있는 듯 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이곳에 한국인의 자취가 담겼으니, 오베핀 빨간 꽃향기 담은 성모님은 이미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황금빛 심장을 드러내 보이시리라. 늘 기도하라는 당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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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성모 발현 목격한 마리에뜨베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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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에 유채꽃 밭, 보랭 성모 발현 목격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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