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보기서울평협 바로가기
> 계간 평신도 > 웹진
계간 평신도
  • 2014년 겨울 / 계간 46호
    아니오를 못하고 살아온 인생... 그래서 행복합니다
    PDF 다운로드
제목 [이야기] 그분의 존재 자체가 내게는 대박
첨부 작성일 2018-04-21 조회 674

그분의 존재 자체가
내게는 대박

김창환 바르톨로메오 신당동성당

 

14년 전, 약간의 이상을 가벼운 증상으로 생각하고 찾은 병원에서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의사와 면담을 끝내고 답답한 마음에 혼자 병원 옥상으로 올라가니, 나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한 친구가 연방 담배를 피워대며 투덜거린다. ‘왜 하필 내가, 나보다 더 악하게 사는 사람도 많던데 내가 암이라니….’


그 모습을 보며, 세상에 태어나 보지도 못하고 떠난 소중한 생명들이 하나 둘이겠는가? 그리고 저 친구보다 더 살았고, 쉰을 넘긴 나는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니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었다.


저녁에 잠자리에 누워 이대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잠이 올 리 없었다. 팔순의 어머니,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옆에 누워있는 아내, 아직 대학에 재학 중인 두 아들, 그렇다고 크게 모아둔 재산도 없었다. 정말 답답한 것은 아직 하느님 나라에 갈 여비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이웃에게 베풀어 준 덕도 없고, 시간 나면 해 보겠다던 성경 공부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그런 내가 하느님께 내세울 만한 공덕이 있겠는가? 잠시 눈을 감고 묵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하느님 앞에 내세울 공 하나 없으나,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주님을 믿고 따랐으며, 부족하지만 주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한 사실 하나만이라도 살펴주시길 바라는 마음뿐, 살고 싶다는 애원은 차마 드릴 염치가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을 것이란 평소의 바람만은 간절한 기도로 드릴 수 있었다. 비록 캄캄한 여정이나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데 남들처럼 방황과 원망의 시간으로 세월을 보낼 필요가 있겠는가? 오늘로 갈등과 고통의 시간은 끝내자 마음먹으니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다음날 종합병원으로 재진 겸 수술 의뢰를 마치고, 그다음 주로 수술 날짜도 잡았다. 수술 사흘 전,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길고 긴 의료 파업이 시작되었고 수술 날짜는 무기한 연기되었으며, 아니 할 말로 하늘은 내 편이 아니었다. 기약 없이 초조한 시간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의료 파업은 계속되었고, 가족은 물론 일본에 사는 지인까지 자기 집에 와서 수술을 받고 가면 될 것을 언제까지 기다릴 거냐는 투정 어린 조언도 있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다행히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치료비 걱정은 없었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한 내가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여 드릴 자신과 용기가 없었다.


파업은 3개월을 넘기고서야 끝이 났고 수술도 무사히 마쳤다. 살아서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들어간다는 수술실도, 성모님 대신 수녀님 위로라도 받고 들어가겠다던 내 바람이 성모병원이어서 가능하였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으나 10회에 걸쳐 1주일씩 맞는 항암 주사의 위력이 그렇게 대단한 줄 몰랐다. 평소에 군침 도는 밥 냄새는 물론 향수 냄새까지 모두가 역겨워 한 주 내내 음식물 섭취가 불가능했고 치료 후에도 2~3일 정도는 오로지 링거에만 의존해야 했다. 그렇게 열흘 정도 굶고 나면 기력도 없어지고, 의지도 희미해지며 이대로 누워 며칠만 더 굶으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유혹의 순간도 많았다. 그럴 때 밀려오는 두려움이하나 있다.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 뜻을 역행하는 행동이 아프다는 이유로 과연 용납이 되겠는가? 하는 의문과 두려움, 어쩌면 하느님 나라를 포기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평생을 하느님 눈치 보며 하느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얼마나 숨죽이며 살았는데, 이제 와서 하느님 나라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입맛을 찾기 위해 한두 시간씩 차를 타고 고작 해장국 한 그릇 정도의 음식을 찾아 다니기를 여러 차례 했어야 했다.


병원에서 항암치료 횟수를 거듭하면서 일어난 해프닝 하나가 떠오른다. 같은 링거처럼 보이지만 항암제 링거는 포장지 색깔이 조금 달라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링거를 꼽고 병동 안을 돌며 운동을 하다 보면 아는 사람도 만나고 모르는 사람도 만난다. 그때 내 표정이 다른 환자보다는 조금 밝게 보였나 보다. 생각해 보면 나로서는 굳이 죽을상을 하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주님께 모든 걸 의탁하고 마음을 비웠기에 늘 히죽히죽 웃고 다니는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 보기엔 살짝 맛이 간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 후로 내게 한 가지 변한 것은 기도 방법이다. 늘, 주님! 하면서 먼저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아쉽고 투정에 가까운 기도에서, 이제는 내가 태어난 것부터 시작하여 자녀를 허락하신 것까지, 그리고 남들 누구나 다 가진 흔한 휴대폰 하나까지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우선하는 것을 보며, 인생 반 이상을 살고 나서야, 그것도 매 맞기 전에 할 것이지, 꼭 한 대 맞고 나서야 알아채는 나 자신을 생각하며 혼자 속으로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신앙의 기쁨! 내게 신앙의 기쁨은 평생 두렵기만 한 존재임에 분명한 그분이 있어서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방향을 설정하게 해 주셨고, 지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었으며, 정작 막막할 때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것도 모자라 현세에서 마음껏 평화를 누리고 나서, 다음 세상까지도 제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분의 존재 자체가 신앙의 기쁨이며 한마디로 내 인생의 대박이 아닐까 싶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드리며 작은 기도로 시작한다.

이전글 거룩한 독서의 충만한 기쁨
다음글 주님께서 달란트를 주셨기에
      


TOP 위로가기
Copyright ©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All Rights Reserved.

04537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80 (명동2가 1) 가톨릭회관 510호
전화 : 02) 777-2013 / 팩스 : 02) 778-7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