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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겨울 / 계간 46호
    아니오를 못하고 살아온 인생... 그래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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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아는 순간
첨부 작성일 2018-04-21 조회 621

기쁨으로 충만한 삶
아는 순간

현문학 스테파노 상계2동성당

 

창세기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가 힌두교 전설에도 있다. 세상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인간에게는 행복이라는 선물이 미리 주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나 꼴불견이었던지 하루는 천사들이 회의를 열어 인간의 행복을 회수하기로 결정한다. 이때부터 인간들이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 헤매는 역사도 함께 시작된다. 천사들은 회수한 행복을 어디에 숨길까를 고민한다. 깊은 바다 속이나 높은 산 위에 숨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인간의 머리로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천사들은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두기로 한다. 눈을 뜨고 있어도 마음속에 꼭꼭 숨겨진 행복을 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스려 행복을 찾는 가르침은 어느 종교에나 있다. 불교 원로 스님들도 인터뷰를 해 보면 ‘참나’를 찾거나 ‘자리이타(나를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경지)’를 주로 강조한다.

 

여느 사람처럼 영원한 행복을 찾아 내가 성당 문을 두드린 것은 18년 전 일이다. 회사 일로 베이징에서 근무할 때였다. 황량한 베이징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중 고색창연한 건물이 심금을 울렸다. 알고 보니 이승훈 베드로 신부님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성당이었다.


바로 6개월간 교리를 공부하고 온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은 후 교우들과 어울렸다. 같이 세례를 받은 교우 중에는 구원의 이르는 길을 거의 다 달린 것 같은 모범 신자도 많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인 성당 주임신부님이셨던 김영환 몬시뇰께서는 독립운동 당시 만주로 이주한 후 수십 리 떨어진 교회에 매일 새벽미사를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새벽 미사를 빠지는 날에는 밥도 못 먹었다며 엄격한 신앙생활을 주문했던 것이다.


당시 나의 신앙생활은 중국 고사 중에 ‘동가식서가숙’을 떠올리는 수준이었다. ‘태평어람’에 나오는 제나라 시절 혼기가 찬 처녀 이야기다. 처녀의 집에 동쪽에 있는 동가와 서쪽에 사는 서가에서 동시에 청혼이 들어오는데 조건이 문제였다. 동쪽 신랑감은 재산이 많은데 추하게 생겼고 서쪽 신랑감은 인물은 훌륭한데 재산이 없었다.

 

본인 의사를 존중하기 위해 부모는 동쪽으로 시집가고 싶으면 오른쪽 저고리를 내리고 서가로 가고 싶으면 왼쪽 저고리를 내리라고 했다. 처녀의 결정은 놀라웠다. 양쪽 저고리를 다 내린 것이다. 놀라는 부모에게 처녀가 한 말이 그 유명한 동가식 서가숙이다. 낮에는 동가에서 살고 밤에는 서가에 가서 자겠다는 이른바 양다리 전략인 셈이다.


성당을 나가는 것도 즐거웠지만 골프 약속이 있으면 미사를 빠지기도 했다. 성당에서는 열심히 하느님을 찾고 나를 유혹하는 세상의 즐거움을 동시에 찾아가는 생활이었다. 성당에서는 하느님을 섬기지만 성당 문을 나서면 술과 운동과 유희를 즐기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마음껏 마시고 놀면서도 죽고 나서는 천국에 가겠다는 억지를 부리는 꼴이었다.


귀국한 다음에는 아예 냉담교우로 분류됐다. 성당이 지척이었는데도 미사를 외면했다. 일요일마다 반드시 근무해야 하는 일의 특수성을 핑계 삼았다.

 

하루는 신부님이 가정 방문을 했다. 일부러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오셨는데 내 얼굴은 술로 벌개진 상태였다. 그때도 회개를 못했다.

 

옆 동네로 이사를 간 후에야 회개라는 의미를 되새겼다. 등산을 가다가도 회개라는 묵상거리가 생각나면 오던 길로 되돌아 가 보기도 했다. 나이 오십 줄을 바라보며 하는 회개는 의미가 남달랐다. 다시 성당으로 갔다. 집사람이 독서 봉사를 권유했다. 그날부터 두말없이 성경을 펼쳤다. 처음 읽을 때는 6개월이 걸렸고 두 번째는 3개월 걸렸다. 영어로도 보고 중국어로도 읽어봤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령이 현존하심을 몸으로 느꼈다.


지금도 말씀은 바로 네 옆에 있고 네 입에 있고 마음에 있다는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 어설프게 아는 순간 행복도 멀리 있지 않아 보였다.


레지오 활동도 했다. 동네 교우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였다. 주말에 봉사도 하고 막걸리도 함께 마셨다. 그렇지만 베이징 때와 달라진 점은 미사를 빼먹는 실수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다짐한 점이다.


레지오에서 얻은 최고 선물은 묵주기도였다. 매일 20단을 목표로 하다 보니 잡념도 줄었다. 등산을 좋아하다 보니 주로 걸으며 묵주기도를 한다. 단수 채우기에는 그만이지만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몸을 다하여 온전히 바치는 기도는 아니다. 분심 때문이다. 분심은 몸의 소리, 마음의 소리, 정신의 소리라고 한다. 하느님께 모든 분심과 고통과 기쁨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들어주실까 하는 의심도 든다. 청하고 찾고 두드려라 다 들어 주신다고 하지만 하느님의 마음이 아니라 나의 마음만이 앞서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내 생각 내 꿈일 뿐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느님 사랑을 찾아 보지만 일치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과 일치할 때 정신은 더 맑아지고 집중되며 가슴은 벅차오르고 영혼은 기뻐 뛴다는 경험을 하고 싶지만 언감생심이다. 분심 때문에 하느님에게는 접근 불가능해 보였다. 물에 빠진 사람이 숨을 쉬고 싶어서 다급해 하듯 하느님을 찾아야 하는데 나의 갈망이 부족한 탓이다.


자식들이 커가면서 요즘은 하느님 나라의 완전함을 많이 묵상하는 편이다. 태초에 창조 섭리를 알아가는 게 참나를 찾는 일인데 세상사에 찌든 나로서는 어려운 개념이다. 하느님이 만든 인간은 완전한 존재다. 행복도 주어졌다. 생각하는 대로 꿈도 이루어지게 만들어져 있으나 여러 가지 세상 걱정과 남과의 비교 등으로 스스로 안 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소중한 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이에게 정성을 다하기 마련이다. 한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면 전 세계가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자신만을 위하던 이기적인 마음이 사라지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원리다.


자신을 내놓는 수련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나를 내어 드리는 가운데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조명하는 수련을 더 하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근데 하느님 나라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인데 참 어렵다. 이웃에 관심을 나타나는 일도 사랑을 실천하는 일인데 왜 근엄하게 무게만 잡고 살아가려 하는지 내 자신이 부끄럽다.


특히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마태 7,26-27참조)는 성경 구절을 읽으면 마음이 찡하다.


앞으로도 신앙생활을 통해 일상에서 견디는 힘을 얻고 원하는 것을 반드시 해주실 거라는 조바심 없는 믿음 안에서 누리는 여유를 간직하고 싶다. 늘 기도를 통해 깨어 있는 삶을 살고,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다 보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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