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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움] 신앙과 교회공동체
첨부 작성일 2018-04-22 조회 646

신앙과 교회공동체

김문태 힐라리오 가톨릭대학교 교수

 

 

인간의 보편적 본성으로 흔히 종교심성을 든다. 이는 곧 인간은 영혼을 지닌 존재이자 영성적 존재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인간은 나와 내면적 자아의 관계, 나와 외면적 타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와 초월적 신의 관계를 염두에 두는 존재임을 뜻한다. 인간은 궁극적 실재에 대한 지향을 통해 삶의 근원과 의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물론긴 혀를 이리저리 내둘러 목탁 소리를 내는 소, 또는 스님이 예불하는 동안 곁에 엎드려 있는 개를 예로 들면서 이를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이한 행동을 종교심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동물의 보편적 본성이라 규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은 신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영성적 존재이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 민족 역시 오래전부터 신앙을 표출하며 살아왔다. 수목신앙과 암석신앙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수목신앙은 고조선 신화의 환웅이 태백산 정상에 있는 신단수에 내려왔듯이 우리 신화 주인공들이 모두 나무나 숲으로 강림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 이후 나무는 신의 하강처이자 거처이며 제사처가 되었다. 솟대는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의 소도에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소도는 큰 나무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천신을 제사하는 별읍(別邑)으로 죄인이 피신하여도 끌어낼수 없는 성스러운 구역이었다. 제관인 천군이 솟대에 드리는 천신제가 오늘날 마을공동체 단위로 드리는 동제의 원형이었다. 또한 지역에 따라 벅수·수살목·하르방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장승은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짝이 되어 동구 밖에 서서 잡귀를 쫓는 수호신이었다. 그리고 서낭당 또는 성황당이라 불리는 당목(堂木) 역시 마을 수호신의 거처였다. 당목은 우주목의 위상을 지니고 있으므로 명실상부한 마을의 중심으로서 동제를 올리는 주안처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암석신앙은 부여 신화에 등장하는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가 자식이 없어 산천에 제사하여 마침내 큰 돌 아래에서 금빛 나는 개구리 형상의 금와를 얻었다는 데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암석이 자식을 비는 기자석(祈子石)으로 신앙의 대상물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암석신앙의 대표적인 신체로는 선돌, 선바위, 입석, 갓바위 등으로 불리는 남근석(男根石)을 들 수 있다. 마을의 평지나 산등성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기자석은 자식이 없거나 아들이 없는 여인이 찾아가 치성을 드리던 곳이었다. 남성 상징인 석상의 코를 떼어다 빻아 먹으면 양기를 받아 잉태할 수 있다는 믿음도 암석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늘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간 신부가 돌하르방의 코를 잡고 사진 찍는 것도 그와 같은 마음의 발로다.


신앙은 신을 믿고 받드는 일이다. 동양의 ‘宗敎’는 근본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며, 서양의 ‘Religion’은 라틴어 ‘Religio’에서 나온 말로 다시 읽는다(Re-legere)는 뜻인데, 반복되어 낭송되는 종교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초월자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종교라는 용어에 대한 어원은 종교의 조건으로 가르침과 의례와 조직을 꼽는 것과도 상통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관에 의해 일정한 형식의 의례가 진행되는 마을공동체 단위의 수목신앙은 개인의 기복을 위한 암석신앙보다 종교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목신앙 역시 가르침이 수반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종교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로써 본다면 하느님을 믿고 받드는 가톨릭 신자의 신앙과 교회공동체의 참모습은 이미 규정되어 있는 셈이다. 가톨릭 신자는 가르침의 측면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교리를 숙지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복음적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가톨릭 신자는 의례의 측면에서 개인의 신앙 생활이 아니라 교회 차원의 공적인 경배이자 공동체를 위한 기도인 미사를 비롯한 7성사와 준성사 등의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톨릭 신자는 조직의 측면에서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보편적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일반적인 사회와 달리 남녀노소, 지위고하, 동서고금, 혈연·지연·학연을 초월하여 보편적 종교로서의 가톨릭(Catholic)이라는 어의를 온전하게 실현하여야 하는 것이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나이다.’라는 <사도신경>의 구절과 부합하는 대목이다.


성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이 1997년에 공포한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의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빛이며,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달로서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곳이다. 교회를 뜻하는 라틴어 ‘Ecclesia’는 불러 모은다는 뜻이고, 영어 ‘Church’는 주님께 속한 모임이라는 뜻으로 주님 백성의 집회를 의미한다. 즉 교회는 목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불러 모은 양 떼(루카 12,32)들이 머무는 곳으로 예수의 참 가족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5)라는 말씀처럼 하느님을 중심으로 지체가 되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공동체는 교계제도에 의한 주교, 사제, 부제 등의 성직자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된 백성인 평신도로 구성된다. 교회공동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신도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는 말씀에 따라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사제직·예언직·왕직에 참여한다. 특히 한국천주교회는 선교사의 도움 없이 전적으로 평신도의 손으로 세워졌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1779년(정조 3년)경 권철신·이벽·정약전·김원성·권상학·이총억·이윤하 등의 남인 학자들이 참여한 주어사 강학회에서 파견한 이승훈이 1784년 베이징의 베이탕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함으로써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후 1794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기 전까지 평신도 공동체인 명도회를 결성하여 신앙을 키워 나갔다. 복자 정약종 초대회장이 지은 한글교리서인 『주교요지(主敎要旨)』가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한국천주교회는 그야말로 평신도에 의해 자발적으로 세워지고 다져진 교회공동체였던 것이다. 오늘날 평신도의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역할이 부단하게 요구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교회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고통 받고 가난하고 박해받는 이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구성원 모두는 각자의 고유한 조건과 임무에 따라 그리스도 몸의 건설에 협력하여야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806, 872항) 즉 하나의 머리 아래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평신도들은 누구든지 살아 있는 지체로서 교회의 발전과 그 끊임없는 성화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힘을 기울이도록 부름 받고 있는 것이다.(『교회헌장』 33항)

 

따라서 교회공동체 안에서 병들고 힘없는 지체를 배려하고자 하는 자발적이고도 능동적인 움직임이 교회 밖으로 확산될 때, 사회의 복음화가 실현될 것임은 자명하다. 교회공동체의 지체인 평신도들이 자리적(自利的) 편협함을 깨고 나와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이타적(利他的) 포용심을 지닐 때, 지금 여기에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


견결한 신앙은 그 옛날 나무와 돌을 향해 드렸던 기복적인 청원기도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감사와 찬미의 기도에서 그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이리라. 교회공동체를 지탱하는 평신도의 지향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가 시의적절하다.


“평신도로서 여러분이 받은 은사는 여러 가지로 많고 또 여러분의 사도직이 다양하지만,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은 현세 질서를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우고 완성시키며 그분의 나라가 오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여 교회의 사명 수행을 진전시키는 것입니다.”


(2014.8.16. 평신도 사도직단체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한 연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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