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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잃어버린 어린 시절
첨부 작성일 2018-03-26 조회 675

심리 상담

잃어버린 어린 시절

조은영 히야친따 영성심리상담전문가

 

누구에게나 자신이 깊게 관여한 과거가 있다. 이 과거는 자신을 성장시킨 힘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이별해야 할 때 이별하지 못하면 그 과거가 자신의 현재를 또 미래를 삼켜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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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 부부 간의 소통이 그렇게나 엇갈릴 수 있는 개인적으로 정당하지만 상대에게는 정말 어이없는 배경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그 배경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A씨는 사회생활도 열심히 하고 성당활동도 열심히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한다. 특히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앞장서서 한다. 물론 가정생활도 잘하는 것 같다. A씨를 아 는 사람들은 A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일도 잘하고 사람들과도 잘 지낸다고. 그렇다면 A씨는 매우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최근 상담실을 찾은 A씨는 허무감과 우울감 및 불안을 호소했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이야기했다. 물론 사회생활, 성당활동 및 가정생활 모두 열심히 살고 있으며 그러한 삶이 자신에게 보람도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의 그러한 열정적인 삶을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 초조함, 무가치함으로 묘사하였다.

A씨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어려서 부모님이 몹시 싸웠다. 심지어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때리기도 했다. 어느 때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피해 어딘가로 도망갔다 오기도 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자 어머니는 이혼 생각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가진 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특히 마음이 착하고 여린 A씨에게 “내가 너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다.” “너 때문에 산다.” 등의 말을 하며 A씨는 그런 어머니에게 희망을 주면서 위기를 견뎌냈다. 형제 중에 유독 여리고 착한 A씨는 어머니가 우울할 때마다 힘이 되어 주는 매우 착한 아들이었다. A씨는 성실했으며 어머니에게 따뜻한 효자였다. 이러한 특성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인정받게 되어 A씨는 더욱더 열심히 살았다. 공감능력도 높아서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A씨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칭찬했고 그 어머니와 가족들을 부러워했다. 단, 본인과 부인은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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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였을까? 문제는 없었다. A씨는 본인의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혹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엄마를 살려야 했고 엄마가 살아야 자신이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매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특히 엄마를 돌보는 아이로 자랐던 것이다. 주변에서 봤을 때 이런 모습은 누가 봐도 철이 든 모습이고 기특한 행동이다.

대체 A씨가 최선을 다해 사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A씨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린 마음 때문에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의 폭력과 싸워야 했고, 공포와 대면해야 했다. 자신과 엄마의 안전과 가정의 해체를 막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압해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A씨의 행동은 칭찬과 인정을 끌어냈고 사회적으로 유능하다고 인정받게 되었고 A씨의 어머니도 이런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삶의 가치감을 갖고 살아왔다. 즉 A씨는 어려서부터 엄마를 살리기 위해 엄마를 지켜낸 빨리 성장한 성인아이였던 것이다.

아이는 적어도 어린 시절 일정 기간(학자들은 만 3세까지가 중요하다고 한다.)은 절대자적인 존재로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살아보는 매우 짧지만 달콤한 시기일 것이다. 우유가 맘에 안 들면 뱉어내고, 이유식도 먹다가 토해내고, 불편하거나 춥거나 아프면 울고, 똥 싸고 오줌 싸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달콤한 시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아이는 서서히 엄마 젖가슴과 이별하고 상대적으로 거친 이유식을 숟가락을 사용해 먹어야 하며, 엄마 품에 안기기보다 자기의 두 발로 서야 하고, 똥오줌을 가리기 위해 괄약근을 조절하고 기저귀와 이별해야 한다. 게다가 동생이 태어나면 자신이 독차지했던 사랑을 동생에게 나눠 주기까지 해야 한다. 아이에게는 정말 쓰디쓴 경험일 것이다. 성숙은 어쩌면 이와 같은 달콤한 시간에 일어났던 수많은 내 중심적인 세계와 하나씩 이별해 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새로운 발달과제는 그러나 적절히 아이에게는 도전적이고 성공경험을 통해 이루어 나가는 재미가 있어, 과거 내 맘대로 했던 유아기 경험을 대신하기에, 아이들은 세상을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은 것으로 경험한다.

영·유아기에 엄마는 자기 맘대로 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자신의 무자비한 욕구를 하나씩 세상에 맞추며 조절해 나갈 때 경험해야 하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좌절감을 함께 경험해 주며 지지해 주고 심지어 내적 힘이 되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때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하다면 아이가 맘대로 하고 싶은 욕구를 적절히 받아주며 적절한 좌절감을 경험하게 하고 일관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우울하고 절망스러운 엄마는 자신의 고통이 너무 커서 아이의 요구, 불안, 공포와 함께 할 수 없다. 오히려 아이가 엄마의 기분에 맞춰주도록 조절된다. 이렇게 조절된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기보다 타인의 욕구 및 감정을 먼저 알아차려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주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세상은 이런 아이에게 또 칭찬을 해 주어 더욱 더 세상을 위해 봉사하도록 강요한다.

자신을 보호하는 것과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의 균형감각 없이 오로지 타인에게 맞춰진 삶을 사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채 갑자기 커 버린 성인아이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A씨는 성인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탐색의 기회도 없이 엄마가 원하는 아들이 돼야 했던 A씨는 존재감을 찾기 위해 항상 자신을 움직였으며,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혹사시키는 일 을 통해 살아있음을 경험해야 했고 주변에서 힘든 일이 발생하면 자신이 더 불안하여 어느새 가서 도와주어야 했다.

물론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보람도 느꼈고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기쁨도 있었다. 이제 중년기가 된 A씨는 정작 부인과 가족에게는 짜증을 부리고 피곤해했다. 효자인 A씨는 어머니로부터 분화되어 자신만의 독립적인 가정을 만드는 데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부인과 자식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는 어머니와 함께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부인은 시어머니와 남편과의 관계에서 계속되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A씨 본인도 갑자기 억울하고, 울컥하고 허무한 감정들을 자주 접촉했다. 이는 오랫동안 참 자기를 소외시키고 역할로만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무의식적 안타까움과 서러움일 것이다.

상담을 통해 A씨는 자주 어린 시절로 퇴행하였다. 남 눈치 안 보고 먹고 싶고, 동생에게 양보 안 하고 싶고, 엄마가 아빠랑 싸우고 나서 나에게와서 징징대지 않았으면 좋겠고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좀 알아서 살아줬으면 좋겠고, 심지어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해 주었으면 좋겠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잘 돌보고 그래서 나의 잠자리를 편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매우 자기중심적인 욕구를 이야기했다. 그러한 욕구를 말하는 아이와 만났을 때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마음의 지하실에 외롭게 앉아 있는 아직 크지 않은 어린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유아기적 욕구를 만난 A씨는 계속되는 자신의 욕구를 비난하지 않고, 타인의 욕구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적이고 자동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에너지를 균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이러한 작업이 남 에게 피해를 끼치는 이기적 행동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여전히 과거 패턴을 반복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아가 외상(trauma, 심리적 상처) 에 의해 엮여져 있던 원가족과의 심리적 고리로부터도 자연스럽게 벗어나 이젠 자신의 가족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부인이 경험했을 외로움을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부인은 공감 받는 만큼 눈물을 흘렸고 이해받는 느낌에 스스로 과거와 이별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깊게 관여한 과거가 있다. 이 과거는 자신을 성장시킨 힘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이별해야 할 때 이별하지 못하면 그 과거가 자신의 현재를 또 미래를 삼켜버릴 수 있다.

겨울과 이별하고 새 순이 돋아나는 봄을 맞이 하고 있는 우리는 사순시기를 맞이하여 나의 과거와 이별하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새로운 가능성의 나를 발견하는 진정한 회개의 시간을 가질 때, 잃어버린 나의 어린 시절을 부활하신 예수님의 품안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성숙은 어쩌면 이와 같은 달콤한 시간에 일어났던 수많은 내 중심적인 세계와 하나씩 이별해 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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