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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해결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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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부활하신 주님, 믿음이 부족한 저를 도우소서
첨부 작성일 2018-03-27 조회 680

부활하신 주님, 믿음이 부족한 저를 도우소서

황진선 대건안드레아 고양시 대화성당

 

우리가 하늘나라의 영원한 삶을 믿는다면 변방에서 어울려 살며 양의 악취를 풍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부활 신앙을 간직한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좀 더 살 만한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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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왜관수도원을 찾은 가톨릭언론인산악회 일행(왼쪽에서 둘째가 필자)에게 박현동 아빠스께서 수도 생활과 수도원 시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양숙 체칠리아>

 

 

예수의 부활이 사실인가를 둘러싼 논란은 끝이 없을 것 같다.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 중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언론 매체에 종종 보도된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분들도 ‘하늘나라’라는 표현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할머니 할아버지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셨다.”고 한다. 예전에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하느님도 무심하시지.”라는 표현도 자주 썼다. 육신의 부활을 믿는 것은 어려워하면서도 하늘나라의 삶은 믿는 분들이 적지 않다.

 

흔히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도 없다.”고 얘기한다. 예수님이 붙잡히자 무서워서 뿔뿔이 도망쳤던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예수를 전하기 시작한 것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죽은 다음에 영원한 삶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로마시대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그 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양심과 정의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도 하늘나라의 삶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늘나라의 보상이라는 추동력이 없다면 순수하게 정의를 위해 싸우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하늘나라의 영원한 삶을 믿는다면 현세의 삶과 가치 지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좇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닮는 삶을 지향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5)고 하셨다. 모두가 고립되지 않고 친교를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포도나무와 하나가 된 가지처럼 살라는 뜻이다. 친교의 근본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중에서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강조하신다. 교황은 추기경 시절부터 성직자든 평신도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변방’으로 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복음의 기쁨’에서도 “자기 안위만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고 말했다. 베드로 성당에서 봉헌한 성유 축성 미사를 비롯한 여러 미사의 강론에서 사목자는 ‘양의 악취’를 지녀야만 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황만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제러미 리프킨의 저작 <공감의 시대>는 의미심장하다. 리프킨은 공감(empathy)이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얘기한다. 치열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시대를 넘어 협력과 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친사회적 행동과 협동심이 새 시대의 적자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보여 주는 연구 결과도 제시한다. 그는 인간이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숙한 공감 본능을 키워왔다고 말한다.

 

사순시기가 지나면 부활절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회개와 성찰을 거쳐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과 ‘공감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변방을 찾으려 노력하고 양과 어울리며 양의 악취를 풍길 수 있을까. 우리가 하늘나라의 영원한 삶을 믿는다면 변방에서 어울려 살며 양의 악취를 풍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부활 신앙을 간직한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좀 더 살 만한 사회가 될 것이다. 현 사회에 대한 성찰이 깊을수록 사회적 약자의 권리도 확대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으로 더 풍요로워지고 해방감도 맛볼 것이다.

 

하늘나라의 삶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더라도 굳은 결심으로 현세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다. 일상에서 마음에 예수께서 임하시도록 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가꿀 수 있다. 작은 유혹에 넘어가고 나쁜 습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부활의 전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매번 후회하고 자책하면서도 종전의 좋지 않은 습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거기에서 헤어나기만 한다면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필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톨릭 신자로 알려지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 신앙이 몸과 생활에서 드러나야 하는데 오히려 신앙인답지 못한 행동을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사순시기를 지나면 달라지고 싶다. 주변 사람들을 온유하고 친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고 싶다. 이기심이나 두려움에서 비롯되거나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 속의 분노와 화는 제단에 올려 모두 벗어 버리고 싶다. 하지만 아직도 믿음이 부족해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하게 봉헌하겠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한다. 앞으로도 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활하신 주님, 부디 저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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