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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어린 아들로부터 얻는 믿음 부활의 교훈
첨부 작성일 2018-03-31 조회 656

어린 아들로부터 얻는 믿음 부활의 교훈

정동철 세례자 요한 개포동성당

 

"어느 날 큰 결심을 했다. 나도 주변인이 아닌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믿음 생활을 해 보기로 한 것이다. 2010년의 일이다. 6개월간 주 1회의 예비 교리반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아이 엄마도 세례를 받았다. 모두 아들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즉,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초등학생 아들이 부모를 구원의 세계로 인도한 어린양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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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둘째 아들의 복사 졸업식에 참석했다. 졸업식은 교중미사 중간에 열려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이뤄졌다.

그중에서도 우리 아들이 졸업생을 대표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감문을 발표했다. 떨지 않고 또박또박 발표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그보다 복사생활을 하는 동안의 감정을 어린 아이답게 숨김없이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감동의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내 아들이지만 그놈 참 기특하네.”라는 생각도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6년간의 복사생활을 옆에서 지켜봐온 아빠이기에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친구들 따라 성당에 나갔던 아이가 하루는 복사를 하겠다고 했다. 당시 성당에 대해 잘 몰랐던 아이 엄마와 나는 단순히 그런 게 있나 보다 여겼다.

그리고 아이가 복사생활을 했다. 당시 겨울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느 해보다 춥고 눈도 많이 왔던 것 같다. 처음 40일 동안은 매일 새벽 5시에 집을 나가 새벽 미사에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추운 겨울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며칠 하다가 말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른 새벽에 아이 혼자 보낼 수 없으니 처음에는 엄마가 동행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기특하다는 마음이 들어 나도 몇 번을 동행했다. 아들은 4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한 끝에 정식 복사가 됐다.

친구들이 좋다지만 새벽 5시에 나가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것도 아니었다. 또 신앙의 깊이에 빠져 그 일이 마냥 좋기만 하다고 느끼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런데도 그 아이를 그 세상으로 인도했던 힘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아이가 저렇게 다니는데 부모는 뒷짐만 지고 있으면 그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아이 데리고 미사에 몇 번 참석해 봤던 터라 미사와 성당에 대한 적응도 자연스럽게 되어 있지 않은가. 어느 날 큰 결심을 했다. 나도 주변인이 아닌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믿음 생활을 해 보기로 한 것이다. 2010년의 일이다. 6개월간 주 1회의 예 비 교리반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아이 엄마도 세례를 받았다. 모두 아들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즉,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초등학생 아들이 부모를 구원의 세계로 인도한 어린양이었던 셈이다.

교리반 시절 처음에는 남들 앞에서 기도하고 성경 구절을 읽는 게 여간 쑥스럽고 불편한 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리반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교육 내용은 당시 한 신부님이 농담 삼아 말씀하신 천주교에 대한 개념이었다.

그 신부님은 “이름이 천주교이기 때문에 신자들이 주일헌금을 보통 1천원 내는 것 같다. 처음부터 이천주교나 삼천주교라 지었으면 2천~3천원을 내지 않았을까”라고 말해 모두가 웃었던 기억이 있다.

어쨌거나 나는 6개월의 교리반을 나가는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세례식장에서 개근상도 받았다. 이 부분만큼은 역으로 아들의 유전자를 받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레지오 관련 에피소드도 잊을 수 없다. ‘될성부른 떡잎’의 새로운 형제를 발견했으니 주변 아는 사람들이 자기 레지오에 서로 가입을 권했다. 어느 한쪽을 택할 수 없는 관계의 사람들이었다. 변명이겠지만 결국 모두를 포기했다. 지금도 공식적으로 레지오 활동은 하지 않는다. 후회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믿음이 나태해질 수밖에 없었고 값진 봉사활동을 할 기회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 레지오에 협력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점은 그나마 위안거리다.

직장 일, 친구모임, 조기축구 등등의 이유로 미사에 불참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요즘의 내 모습이다. 예전에는 성당 앞을 지날 때면 성모상 앞에 들러 잠시 묵상도 했다. 잠깐이지만 마음의 평화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성당 앞을 지나칠 때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글을 쓸 자격도 없지만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점이 많다. 어린 아들이 대견하고 부럽다. 교리반 6개월 동안의 성실했던 내 모습도 찾고 싶다. 2015년 부활절이 포함된 사순시기에는 내 믿음의 부활기가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라는 말씀을 듣는 의식에 빠지지 않는 것을 그 실천의 첫 번째로 삼고 싶다. 이 글은 믿음에 길들여지지 않은 방황하는 한 사람의 반성문이자 지상 고해성사쯤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 아들의 복사 졸업 소감문 ]


지난 6년간 복사라서 즐겁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사 서기가 힘들고 귀찮았 던 기억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5시에 일어나 새벽 복사를 섰던 일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항상 주님은 제 편이 되어 주셨고, 늘 제 곁을 지켜 주신다는 든든함이 있었 습니다. 지난 6년간 감사했고 너무 좋았습니다. 저희를 이끌어 주신 신부님, 수녀님, 단장님, 학사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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