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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아내와 하느님이 주신 완전한 부활
첨부 작성일 2018-03-31 조회 750




아내와 하느님이 주신 완전한 부활

하용수 남종삼 요한 성모회울타리 대표

 

그때 저는 “하느님이 계시구나, 저는 살았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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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60년 1월 2일, 특별하지는 않은 한 집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안은 5남 2녀였고 저는 그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부모님의 사랑이란 것을 많이 받아 보지 못했습니다. 다섯 살 때부터 열 살까지 이모 댁에 가서 살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씩씩하게 자라지 못하고, 엄마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매일매일을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열 살에 그리던 부모님 품으로 갔으나 엄마도 형제도 가족이란 느낌이 안 들었습니다. 학교도 가기 싫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출을 했습니다.

 

경북 안동으로 가출했던 저는 수중에 돈이 떨어지자 시장에서 과일을 훔쳐 먹었습니다. 도둑질을 처음 했을 땐 두렵고 떨렸지만 그것도 계속 하다 보니 어느새 제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계속 과일을 훔쳐 먹고 있을 때 도둑놈들을 만났습니다. 저에게는 그 도둑놈들이 오히려 더 편하고 좋았습니다. 제 맘을 알아주고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같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경찰에게 잡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판사는 제일 좋은 판결이라며 저를 소년원에 보내 주었습니다.

 

열다섯 살 때, 소년원에 가서 멍석말이로 구타를 심하게 당하고 보니, 그 구타가 무서워 도저히 도둑질을 다시 하고픈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폭력이 무서워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자리 잡고 신문팔이, 껌팔이를 했습니다. 하루는 텃세 부리는 사람들이 와서 시비를 거는 바람에 매일 싸우고 머리도 깨졌습니다. 싸움에서 지면 자리를 잃게 된다는 생각에 죽기 살기로 싸웠습니다. 칠전팔기로 일주일에 열 번을 싸우니 터미널에서 깡패로 유명한 친구가 드디어 “네가 이겼다. 그만 싸우자.”고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싸움에 이기기 위하여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0대 운동을 하던 때인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아내를 그때 만났습니다. 운동선수인 것은 맞지만 대학생이라고 사기치고, 아버지는 마을회장이었지만 회장이라고 속였더니 아내가 넘어왔습니다. 1년 정도 만나던 어느 날, 아내가 안 나타나서 동사무소에 들러 희귀성인 편 씨 집을 찾아 갔습니다. 2층집 창문이 잠겨 있기에 창문을 뜯고 들어가서 아내를 데리고 나와 환한 곳에서 보니 머리가 깎여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지금의 장인 어른께서 제 뒷조사를 해 보고, 맏딸인 제 아내가 잘 돼야 동생들이 잘 된다고 사귀지 말라며 가둬 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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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안은 대체로 노름을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도 노름으로 한평생을 보내셨습니다. 저도 18년 경력으로 못하는 노름이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폭력.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본 것은 여자를 때리는 것. 터미널서 배운 것은 여자와 명태는 두드려야 한다는 것. 한 번은 아내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때렸는데, 손가락이 부러지고 온몸이 잉크처럼 멍들고, 뒤통수를 각목으로 갑자기 때리면 기절을 하고…

 

아내는 자기가 좋아서 집을 도망쳐 나왔기에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다 아내가 애를 낳았는데 저는 노름을 하느라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한 번은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왜 이제 왔노?” 하고 묻는 그 한 마디에 누워 있는 산모의 머리를 걷어찼습니다.

 

마약은 7년 정도 했습니다. 마약중독이 된 상태에서는 남을 의심하고, 가정파탄, 사회문제, 폭력 등 문제가 많았습니다. 아무리 끊으려 해도 일주일 이상 끊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마약을 하고 나면 아내도 마약을 했다고 의심하고, 폭력을 가했습니다. 아내는 그동안 제 폭력까지는 참았지만 마약은 못 참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랍니다.

 

어느 날 이웃의 자매님이 아내에게 성당 한 번 다녀보고, 안 되면 아직 어리니까 도망가라고 말했더랍니다. 그렇게 아내랑 같이 성당은 다니게 되었지만, 예전과 별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여전 히 도박, 마약, 폭력.

 

성탄 전야 미사 때 신부님이 예비자도 오라고 하셔서 집에 와 있던 친구들을 먼저 보내며 “나중에 다시 보자.”고 약속하고 흥미도 없이 미사에 참석하고, 뒤풀이로 성당에서 맥주도 마시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땐 운동도 하고 건강할 때였는데, 이상하게 피곤을 느껴 집에서 잠깐 30분만 자고 가려고 한 것이, 그만 자느라 친구들 모임에 참석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친구들끼리 싸움이 나고 살인사건이 나서 3명 모두가 교도소에 갔습니다. 아직 세례도 받기 전이었습니다. 그날 하느님이 저를 죽음의 늪에서 건져 주신 것입니다.

 

세례 받기 전, 마약을 그만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가 순도 좋은 마약을 주면서 함께 하자기에 나가려는데 눈치 빠른 아내가 알고, 레지오 단원 5명을 데리고 저를 붙잡고 30분간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때 ‘세례를 받아야겠다.’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조산소에 가서 마약을 씻어내고 왔습니다. 1990.7.5 한국성인 남종삼 요한이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여담으로 제게 세례를 내려주신 신부님은 제 사정을 잘 알고 계신데, 과연 세례를 주는 게 맞나? 하고 고민을 많이 하셨다는 말씀을 나중에 들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 기적적으로 마약을 세 달간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석 달 후, 다시 마약에 손을 댔습니다. 그래도 교리 받을 때, ‘죄를 지으면 고해성사를 보라.’는 기억이 남아 있어서, 마약을 하고 이틀 뒤 신부님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봤습니다. 밤 열두 시에도, 새벽에도, 신부님과 맞대면한 채 몇 개월간 사흘이 멀다 하고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보속으로 마산 삼청 나환자촌으로 봉사를 가라고 하셨습니다.

 

나환자촌을 다녀와서 다시 조산소에서 마약을 씻는데, “하느님 당신이 과연 계신다면 마약을 제발 끊게 해 달라.”고 눈물 콧물 다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세례 받고 몇 개월밖에 안 된 신앙 초보자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두를 공평히 사랑하셨습니다. 울부짖으며 기도한 그날 이후로 회개의 마음이 생기고 저는 다시는 마약에 손을 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 달 후,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서 엽서 한 장이 왔습니다. 오순절 마을에 후원을 했던 적이 있는데 자선을 했기 때문에 초대한 줄 알았더니, 성령 세미나 초청장이었습니다.

 

세미나를 하던 중, 걷잡을 수 있는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과거에 싸웠던 기억, 제가 받았던 천대 등등 모든 것이 겹쳐졌습니다. 그러나 팀장님의 기도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저는 무사히 성령 세미나를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안수예식 중, 제 안에 빛 같은 것이 들어오더니 온 몸을 뜨겁게 데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느님이 계시구나, 저는 살았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제가 운영하고 있는 성모울타리라는 공동체는, 한 수녀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이름입니다. 늑대를 막고, 양을 지켜주는 성모님의 울타리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마약에 손대지 않은 지 어연 20년이 넘어갑니다. 그렇게 재미있었던 도박은, 요즘 식구들과 카드 게임 20분만해도 질려서 그만두고 맙니다. 그보다 더 좋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이란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마약과 폭력, 도박에 찌들었던 저는, 아내와, 그리고 하느님에 의해 완전한 부활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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