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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움] 나의 삶이 ‘역사’다
첨부 작성일 2018-04-09 조회 636

영화 속 ‘인간과 세상’

나의 삶이 ‘역사’다

이대현 요나 영화평론가

 

‘위안’이란 묘하다. 다시는 기억조차 하기 싫어 진저리를

치는 고통과 눈물도 위안이 된다. 그것들이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지만, 이제는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추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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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2014 .12 .17/ 126분/
한국/ 12세 관람가/ 감독 윤제균

 

 


영화가 우리의 ‘기억’을 불러낸다. 소설도, 연극도 마찬가지다. 허구이든, 실제 인물이든 작품 속의 주인공이 우리에게 삶을 추억하고 기억을 더듬게 만든다. 중국의 위화는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쓰면서 “단지 두 사람의 역사를 허구적으로 꾸며낸 것에 불과하지만, 그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 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대 로마 시인 마티에르). 영화는 미래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기도 하지만, 때론 기억의 문을 두드려 행복했던 시간을 불러오거나, 기억조차 하기 싫은 지난 삶으로 되돌아가도록 한다. 그곳에 역사가 있고, 현재를 이어주는 사건이 있다.

 

역사란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주인공도 인간이고, 기록자도 인간이다. 역사가 모든 인간을 기억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역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에게는 “역사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역사와 무관한 인생은 없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를 만들든, 역사에 의해 자신의 삶과 운명이 결정되든, 나의 삶이 역사’이다.

 

<지리산>의 소설가 이병주는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인간들, 산맥이 아닌 골짜기를 기록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했다. 영화 역시 하늘 높이 솟아 태양이 비치는 인간을 만나기도 하지만, 달빛에 물든 골짜기 걸으며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사람들도 만난다. ‘위안’이란 묘하다. 다시는 기억조차 하기 싫어 진저리를 치는 고통과 눈물도 위안이 된다. 그것들이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지만, 이제는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추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60년 현대사 앞에 ‘격동’이란 말을 붙인다. 거센 폭풍에 휘청거리고, 높은 파도에 휩쓸리면서 수많은 눈물과 땀을 쏟아냈고, 그 눈물과 땀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한걸음씩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갔다. 누군가 ‘운명은 시간’이라고 했다. 그 시절에 태어나 온몸으로 그 격동을 지나가야 했던 사람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도 그중 하나이다.

 

한국전쟁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었고,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독일 탄광에서 몸이 부서져라 곡괭이질을 했고, 동생의 대학 진학을 위해 자신의 소박한 미래까지 포기했고, 여동생 결혼비용을 벌기 위해 이역만리 베트남에서 목숨을 걸었다.

 

덕수는 미국 영화 <포레스트 검프>, 스웨덴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과 닮았다. 영화가 만들어낸 가공의 상황설정으로 그는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어김없이 서 있었고, 그 파도를 고스란히 맞았다. 상상과 과장으로 <국제시장>이 덕수를 그렇게 만든 이유는 한 순간일망정 그곳에서의 우리의 추억을 불러내고, 위화의 말처럼 그 추억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살아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국제시장>은 흘러간 ‘유행가’ 가사처럼 이야기를 시작한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에’의 금순이가 막순이로 바뀌었을 뿐. 1.4후퇴 때 아버지와 여동생 막순이와 흥남 부두에서 헤어지고 어머니와 막내 끝순이와 부산으로 피난 내려온 어린 덕수는 ‘국제시장 장사치’로 살아가고, 생사조차 모르는 북의 아버지와 누이동생이 그리워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을 보며 눈물 흘리고, 아버지와 약속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구두 통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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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에게 역사는 고통과 시련이었지만, 자신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 기회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망정 그는 역사의 한 자락을 끌고 갔다. 그렇게 살아온 60여 년의 세월을 덕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다.”고. 비록 분단으로 끝내 다시 만나지 못했고, 덕수의 삶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알 것이다. 아들의 땀과 눈물과 희생의 아름다운 역사를.

덕수는 자식들은 알지도, 알려고도 않는 것이 섭섭하지만, 한편으로는 “힘든 세월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내가 겪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부모다. 그 시대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은 높고 낮음을 떠나 덕수였다. 흥남부두에서 막 순이를 놓치고 나서 절규하는 어린 덕수, 독일 탄광 매몰로 생사를 헤매는 덕수에게 용기와 사랑의 힘을 보여 준 영자(김윤진), 1983년 남북 이산가족 찾기에서 극적으로 가족을 다시 만나 30년 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막순이를 본 1,000만은 바로 그들이 ‘나’이고, 나의 ‘누이’이고, ‘어머니 아버지’이며, ‘삼촌’이고, ‘할아버지’라는 것을 안다.

<국제시장>이 이렇게 우리를 ‘추억’으로 데려다 놓으면서 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역사 다시 보여 주기는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국제시장>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내 가족의 지난 삶의 기억과 경험이 담긴 일기장이자, 사진첩이다. 영화가 되돌려 놓은 아버지의 ‘과거’를 만나면서 자식들은 ‘현재’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이 또한 유행가처럼 빠르게 지나갈 것이지만, <국제시장>이 잠시나마 세대 간 ‘소통의 길’을 조금이 나마 열어 준 것만은 분명하다. 허구에 불과한 영화가 때론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영화의 힘이다.

소통은 ‘공감’에서 출발한다. 공감은 감정이입이다.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타인의 아픔과 눈물을 함께 할 수 없다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웃음을 자아내는 자잘한 에피소드들, 아득한 기억까지 불러내는 소품의 섬세한 배치, 시대의 아 이콘(대중 스타들)을 덕수와 장난스럽게 조우시키는 연출의 리듬과 재치도 결국 관객의 마음을 열어 영화와의 ‘공감’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이었다.

개인의 삶도 그렇듯 역사도 늘 심각하고, 거대하지 않다. 작은 돌, 깨진 그릇조각, 마당 앞의 나무, 아버지의 깊은 주름살 하나에도 역사는 스며 있다. 단지 무심코 지나쳐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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