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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가을 / 계간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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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 향후 교회의 변화와 평신도의 역할 1
첨부 작성일 2016-10-25 조회 1892

한국평협 심포지엄1 
향후 교회의 변화와 평신도의 역할 1

정희완 요한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이 글은 지난 9월 9일 인천교구 강화도 갑곶 순교성지에서 열린 한국평신도사도직단체 협의회 하반기 연수중에 발표한 내용 가운데 일부이다. 나머지는 겨울호에 연재하려 한다. 

들어가는 말 
한국 가톨릭교회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물론 외형적 신자 수와 한국 사회 안 에서의 영향력 관점에서 보면, 한국 가톨릭교회의 현재와 미래는 그리 비관적으로 보 이진 않는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세상의 아픔과 문제점들에 대한 예언자적 발언들과 사회참여를 통해 대외적으로 교회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종교지도자들의 지 위와 영향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풍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톨릭 고위 성직 자들에 대한 정치권력의 인정과 우대의 경향, 점점 증가하는 신자 고위 공직자들과 사회적 유력인사들의 숫자들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이 점점 커가고 있다는 착 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상일 뿐, 한국 가톨릭교 회의 실제 현실의 모습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것 같다. 한국 가톨릭교회에 뿌리 깊 이 내려 있는 성직주의와 물질주의는 교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한다. 한국 교회 안에는 성직주의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지역 교회들보다 더 유난히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성직주의와 그에 따른 수직적 위계주의와 권위주의 의 교회 안의 만연함은 교회 안 구성원들 간의 소통을 방해하고 공동체 사목의 걸림 돌로 작동되고 있다. 물론 교회 안의 토론 자리에서 성직주의에 대한 숱한 비판적 담 론들이 양산되고, 성직자들 스스로도 성직주의의 폐해에 대해 자주 말하고 있다. 하 지만 성직주의에서 벗어나려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노력들은 거의 없다. 한국 교회 안에서 성직주의에 대한 비판적 담론은 그저 수사학적 장식에 불과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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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교회의 삶과 문화는 물질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교회의 일 들과 어떤 결정들을 할 때 신앙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실천하기보다는 세속의 논리 즉 자본주의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 모습이다. 성당을 건축할 때 외형과 화려함을 추구하는 방향, 교회 기금 마련을 위한 지나친 상업행위들, 교회 자산 운용에 있어서 주식투자와 부동산 투기의 방식들 등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많은 행위들이 물질주의 의 자본의 논리로 작동되고 있다. 한국 교회의 본당들 역시 전반적으로 생동감을 잃어가고 있다. 신앙생활의 대부 분은 본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본당은 그 지역에서 사는 교회의 현존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 생활이 성장하는 장소이며, 대화와 선포, 아낌없는 사랑 실천, 그리고 예배와 기념이 이루어지는 장소다.”(〈복음의 기쁨〉, 28항) 사실 그리스 도교 신앙생활 안에서, 교회의 기초 단위 조직으로서의 본당, 또한 넓은 의미에서의 생활 공동체로서의 본당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이와 같은 본당의 신학적, 사목적 중 요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실 속의 한국 본당들은 점점 그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본 당은 그저 주일 미사만 참여하는 공간으로 그 기능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 

가톨릭교회(Catholicism)2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교회의 변화가 올바르고 바 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교회 스스로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가. 교회 자신이 복음의 방향으로 변화하고, 그래서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세상의 변화들이 교회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 역사 속에서 교회가 스스 로를 변화시키면서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는 일은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다고 볼 수 있다. 교회사 안에서 교회의 변화들은 결국 세상 밖에서 밀려 온 추 세와 압력을 따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교회가 세상의 변화 특히 서구 문화에 있 어서 많은 변화를 초래한 것은 사실이다.3 하지만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교 회가 가져온 세상의 변화가 아니라 세상 속에 있는 교회 자신의 변화에 대한 것이다.4 교회는 세상 속에 있다. 세상과 교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 있다. 교회 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이 교회를 변화시키고 있는가. 이는 분명 중요한 질문이다.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면, 그 올바른 세상의 변화에 교회가 적응(aggiornamento)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의 바람직하지 못한 변 화를 교회가 수용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타락, 부정적 의미에서의 교회의 세속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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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방향으로의 교회 변화는 타락이며, 올바른 방향의 교회 변화는 쇄신이다. 오늘 의 한국 교회는 쇄신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교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세상의 부정적인 힘들, 세속의 부정적인 조류를 따르는 변화가 아니라 복음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는 어떻게 이룰 것인 가. 올바른 방향으로의 변화인 쇄신을 교회가 어떻게 이룰 것인가. 교회 변화의 주체 는 누구인가. 교회의 변화, 교회 쇄신의 진정한 주체는 물론 성령이다. 그 성령의 이끄 심에 따라 교회 구성원들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변화의 노력이 쇄신을 낳는다. 교회 구성원들은 과연 어떻게 성령의 이끄심을 따를 것인지. 과연 어떻게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 쇄신에 참여할 것인가. 교회의 올바른 방향의 변화, 즉 교회 쇄신은 무엇을 뜻하는가. 프란치스코 교황 의 말을 패러프레이즈하면, 교회 쇄신은 결국 교회의 복음화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 하는 방향으로 교회의 구조를 개혁하고 교회 구성원들이 복음화의 사명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황은 교회 쇄신을 위해 모든 구성원들이 복음화의 방향으로 노력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성직자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실천이 요청된다고 강조한다. 교 회 쇄신을 위한 구조 개혁에서 가장 큰 걸림돌의 하나가 성직주의(clericalism)라는 사실 과, 교회 쇄신을 위한 교회 모든 구성원들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성직자들 의 성찰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참 묘한 아이러니다. 물론 교회 쇄신을 위해 교 회 구성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화의 소명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 쇄신 을 위한 평신도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변화와 쇄신을 말할 때, 우리는 당위성의 논리에 빠질 위험이 많다. 교회는 자비 로워야 한다. 교회는 겸손해야 한다. 교회는 열린 구조여야 한다. 교회의 변화와 쇄신 을 이야기할 때 숱하게 언급되는 말들이다. 너무 자주 쉽게 언급되어서 이제는 그저 말들로만 소비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사실 상식적인 차원 에서 다 안다. 문제는 언제나 현실의 모습과 실천이다. 변화와 쇄신을 말할 때 이상적 이고 당위적인 교회의 모습에 대한 언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현실 교회의 모습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더 요구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 교회의 모습에 대한 비판 적 성찰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에서 지적하는 ‘무익한 비관주의’와 ‘패배 주의’(84, 85항)와는 다른 맥락이다. 음울한 비관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져 아무 것도 하 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냉정하게 현실 교회의 모습을 분석하고 파악한 후 좀 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모색하자는 의미다. 물론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한 사 회학적, 통계학적 분석이 그리 많지는 않다.6 또한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한 종교 사회학적, 신학적 해석들 역시 많지 않다. 따라서 이 글에서 다루어지는 한국 교회의 현실 들은 주로 인상비평적 시각에서 접근되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 것인가. 지역 교회인 한국 가톨릭교회는 세계 교회 가 변해 가는 모습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한국 교회 역시 세계 교회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가. 교회는 이 시대에 안팎으로 어떤 도전들을 받고 있는가. 교 회에 대한 도전들과 변화 속에서 평신도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일까. 세상 속에서의 평 신도 역할에 대해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하 지만 교회 안에서의 평신도의 역할은 무엇일까. 교회의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 져야 할까. 교회 쇄신의 방향과 그 길을 모색함에 있어서 평신도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의 시도다. 비록 이 글이 엄밀한 학술 논문의 형식이 라기보다는 인상비평적 에세이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말이다.  

미래 교회의 모습과 변화의 흐름 
근대사회로의 이행 이후, 교회의 관점에서 보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 릭교회는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근대 이전의 가톨릭교회가 유 럽중심의 교회였다면 근대 이후의 교회는 점점 세계 교회(world church)의 형태를 드러 낸다. 물론 21세기에 들어 와서도 교회 권력의 중심은 아직도 서구교회에 있다. 하지 만 신자수의 분포도에서 비서구지역의 신자수가 훨씬 많아지고, 지역 교회들의 활성 화 현상들은 점점 교회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 남미 출신의 교황의 등장은 그 변 화의 단초를 상징한다. 또한 교회 안의 위계적 질서를 강조했던 근대 이전의 교회론에 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강조하는 교회론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제2차 바 티칸 공의회 정신은 교회 구성원들 모두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에 깊은 영향을 미쳤 다. 당연히 교회 안에서 평신도 역할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기 시작했다. 또한 성직자 의 감소 현상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교회 안에서의 평신도 역할에 대해 새롭게 성찰하 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대 이후 교회가 겪은 가장 큰 변화의 하나 는 교회의 세속화 현상이다. 물론 세속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 교회는 자신이 세상 속에 있는 존재임을 또 세 상과 깊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교 회는 세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 21세기 교회가 받고 있는 가장 도전 중의 하나 는 자본주의의 물질주의 영향이다. 사실, 종교의 자본주의화와 자본주의의 종교화 현 상은 현대 세계의 가장 큰 도전 중의 하나다. 이런 세계 교회의 추세 속에서 한국 가톨 릭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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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전지구적 가톨릭교회 (Global Catholicism) 
영어권의 저명한 종교 역사가인 필립 젠킨스(Philip Jenkins)는 현대 그리스도교는 유럽 중심의 그리스도교에서 전 세계적 그리스도교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 교회에서 세계 교회로의 이행이 현대 그리스도교 역사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라고 말 한다.7 그리고 현대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 또 다른 큰 특징의 하나는 교회의 무게 중심이 남반부(global South), 즉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의 교회에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남반부 교회의 성장은 그리스도교가 점점 성령주의(Pentecostalism) 와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경향으로 기울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젠킨스는 주장한 다. 남반부 교회의 성령주의와 근본주의의 경향에 대한 젠킨스의 주장에 대해서는 아 직 많은 논쟁이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 종교 역사가들은 그리스도교가 세계 교회의 방 향으로 변화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오랫동안 바티칸 담당기자를 했던 미국 저널리스트인 존 앨런(John L. Allen, Jr.) 역시 자신의 책 《미래 교회 The Future Church》에서 향후 가톨릭교회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10개의 트렌드를 제시하면서 그 가운데 세계 교회 로의 변화를 강조한다. 알렌은 ‘세계 교회’라는 장을 기자다 운 상상력으로 2050년 로마 바티칸에서 아프리카 나이지 리아 출신 교황 빅토르 6세 교황의 일상을 묘사하는 것으 로 시작한다.8  또한 신학적인 측면에서도 제2차 바티칸 공 의회 문헌들 안에서 지역 교회(local church)들에 대한 강조 가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개별 교회들 간의 친교를 강조하는 교회론의 등장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9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교회가 유럽 교회에서 세계 교회로 확장됨을 알리는 시발점이었다.10 가톨릭교회의 세계 교회화 현상은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의 산물이다. 무엇보다 가톨릭교회의 인구수의 증가가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통계학적 사실이다. 이처럼 신자수 분포도의 확산과 남반부 신자들의 증가는 전통적 유럽 중심 의 교회에서의 탈피를 촉진시켰다. 또한 지역 교회들의 활성화와 토착화는 더더욱 가 톨릭교회의 세계 교회화를 확장시켰다.11 이러한 남반부 가톨릭교회(Southern Catholicism)의 확산은 몇 가지 외형적 특성을 드러낸다. 첫째, 교회가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택하고 정치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자유주의적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둘째, 아프리카와 남미 신자수 의 증가는 종교 영역에서 점점 기적과 치유와 초자연적 현상들에 초점에 맞춰지는 경 향을 드러낸다. 셋째, 유럽에서 발생하는 세속주의(secularism)의 문제보다 다원주의 (pluralism)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 넷째, 교회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요청 이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12 이러한 남반부 가톨릭교회의 확산은 교회 안에 변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들은 교회의 리더십이 남반부 교회로 조금씩 이동하는 경향으로 드러나기도 한 다. 그리고 교회 안의 이슈들이 유럽 중심의 이슈들에서 남반부 지역의 이슈들로 대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지역의 일부다처제와 주술사를 둘러싼 이슈들이 교 회 안의 첨예한 문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교회 내부의 문제보다는 교회 밖의 문 제들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가족과 성 문제에 있어서는 더 완고하 게 전통적 견해를 고수하는 입장을 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반면에, 경제 정의와 전쟁에 대해서는 좌파적 견해가 더 강화되는 추세가 보인다

1.2. 성직자의 감소와 평신도 역할의 확장 
남반부 교회의 성직자의 증가 추세로 인해 전세계적 가톨릭교회의 성직자수 자체 는 조금씩 증가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물질문화가 발전된 국가들 에서는 성직자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사제부족 현상 때문에 유럽 교 회를 중심으로 사제 독신제에 대한 재검토가 언급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 교회는 사 제들의 재분배를 통해 사제 부족 현상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신부 들의 유럽 교회에서의 활동하는 현상과 한국 교회에서 프랑스 교회로 사제를 파견하 는 일종의 역 선교 현상은 그러한 추세를 반영한다. 현대 교회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증대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현실적으로 사제의 부족 현상은 필연적으로 평신도의 역할 증대를 초래했다. 또한 사제들의 성 스 캔들과 그에 따른 교구 재정의 파산 현상 역시 교회 안의 평신도 역할의 강화를 낳았 다. 그리고 근대 이후 각 거대 종교들의 경쟁관계 특히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종교와의 경쟁관계는 교회의 많은 역량을 끌어내야 하는 필요성을 낳았다. 종교적 경쟁의 시장 에서 이기기 위해 당연히 평신도의 참여가 절실히 요청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학 적인 측면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은 교회 구성원 모두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이러한 신학적 입장은 교회 안의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 는 평신도 신학의 가능성을 낳았다. 한편으로 가톨릭교회에 조금씩 성령주의가 강화 되는 현상 역시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이러한 추세는 성직자 중심주의에서 카리스마적 평신도의 역할이 인정되는 경향을 낳았다.14 교회 안에서의 평신도 역할의 확장은 때때로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갈등을 초래 하기도 한다. 본당의 관리를 둘러싼 갈등과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열린 대화와 교회 운영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그 대표적 예이다. 또한 교회 안에서의 평신도 역할이 주로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여 교회의 여성화(feminization) 경향을 낳기도 한다. 교회 안의 평신도의 영향력의 확장은 역설적으로 사제직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현상으 로 나타나기도 한다.15  오늘날 평신도 역할의 확장이 단순히 본당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교구 차원과 바 티칸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등장하고 있다. 오늘날 많 은 신학자들 역시 신학적인 측면에서 사제의 고유 권한으로 여겨지는 성사의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들에 있어서 평신도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 권력 의 행사에 평신도의 참여를 요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신도 추기경의 임명과 바 티칸 고위직에 평신도의 참여를 요청한다. 바티칸의 고위 관리들이 꼭 성직자여야만 한다는 신학적 이유는 없다. 교황대사 등 교황청의 외교 사절들은 평신도 전문가들이 맡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1.3. 자본주의 논리가 내재화된 교회
 오늘날 자본주의는 일종의 형이상학이 되고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 삶의 모든 영 역들이 최종적으로 경제적 목적을 지향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정치와 사회와 문화의 영역들은 경제의 논리와 규범에 종속되고 규율되고 있다. 오늘날 경제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발휘한다. 경제는 단순히 경제 영역의 문제가 아 니다. 사회적 삶은 경제중심주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제 자본주의는 단순 히 경제 체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삶의 방식을 뜻한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 의 논리가 내재화되어 있는 사회다. 자본의 논리, 경제의 논리가 우리 삶을 지배한다. 자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삶의 모든 영역을 가로지르며 자신의 논리를 확장시켜 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자본은 끊임없이 사회를 지배하고 통제하고 인간 주체의 재구성을 통해 자신의 논리를 영구화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우리는 자 본주의 물질주의 논리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는 성경의 가르침을 선포하면서 도 실제 현실에서 교회 안의 어떤 일들을 할 때 자본의 논리를 따라가는 교회의 모습 을 우리는 쉽게 발견한다. 신자 수 증가를 목표로 하는 교세 확장을 위한 행위들 안에 서 자본주의의 성장주의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어 있음을 목격한다. 당위적 관점에서는 신앙적 가치의 소중함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현실의 장에서는 자본주의 물질주의와 적 당히 타협하려 하는 교회의 모습을 여전히 본다. 교회의 자본주의화가 도처에서 이루 어지고 있다. 신앙의 논리와 상업논리는 분명히 서로 다른데도 교회와 신앙인들이 실 제 삶에서 신앙의 논리보다는 상업논리에 더 익숙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자본주의 시 스템 속에 살고 있는 교회 공동체와 우리 자신들이, 자본주의 안의 상업주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우리는 도처에서 기업화되는 교회, 상업화되는 교회의 모습과 물질적 이익에만 민감하며 욕망을 사고파는 데에 익숙한 우리 자신들 의 모습을 쉽게 발견한다. 시장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소비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괴력을 가졌다. 종교 역시 소비주의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소비사회에서는 종교 적 신앙들마저도 판매되고 구매되는 상품처럼 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종교적 신 앙들을 상품을 선택하고 사용하듯이 소비한다. 영성의 상품화된다. 많은 신자들이 영 성을 살아내기보다는 영성을 소비한다.

1.4. 한국 교회의 모습 
한국 교회 역시 세계 교회의 추세에서 그리 벗어나 있지 않다. 다만 한국 교회 안 에는 남반부의 교회와 서구 교회의 모습들이 혼재해 있다. 도덕적인 이슈들에 대해서 는 대부분의 남반부 교회들과 비슷하게 보수적 입장과 태도를 드러낸다. 정치적 이슈 들에 대해서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보였던 진보적 입장에서 벗어나 점점 보수적 입 장과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신자 분포도에 있어서는 서구 교회와 비슷하게 신자들의 고령화 현상과 젊은층의 이탈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 보수화 현상 때 문에 교회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요청도 남반부 교회와는 달리 그리 강한 편이 아니다. 한국 교회에서 점점 성직 지원자의 감소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물론 서구 교회에 비하면 여전히 성직자수의 증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남반부 교회가 보여주 는 성직 지원자의 폭발적 증가 현상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1990년대를 정점으로 성 직 지원자 수는 하락 현상을 보이고 있다. 교회 안의 평신도 역할은 아주 미약한 현실 이다. 유교적 서열 문화를 중시하고 종교 지도자의 권위를 존중하는 한국 사회의 풍토 탓인지 성직주의의 폐해는 다른 지역 교회들보다 훨씬 더 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풍토 속에서 당연히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깊은 신학적 성찰이 부족하고 교회 운영에 있어서 평신도의 참여가 잘 허락되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 교회 안에는 자본주의 물질주의 문화가 깊이 뿌리 내려져 있다. 성당 건축, 성지 개발, 교회 재산의 증식, 교회가 운영하는 사업체, 등의 문제들에 있어서 신앙의 논리가 작동되기보다는 자본의 논리가 더 깊이 작동되고 있다. 또한 종교와 정치의 관 계에 있어서 과거에는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면 오늘날 에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더 첨예해졌다고 볼 수 있다.

2.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평신도 
정직하게 말하면, 가톨릭교회는 역사 안에서 오랫동안 성직자의 종교였다. 많은 신자 순교자들을 발생시켰던 초기 박해시절과, 교회 안의 직제와 직무들의 엄격한 분 화가 이루어지기 전의 초기 교회 시절과, 교계제도가 교회법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 로 교회 안에 뿌리내리기 전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교회 안의 대부분의 영역들은 성직 자를 중심으로 작동되어 왔다. 물론 긴 교회의 역사 안에서 토마스 모어 같은 세상 속 에서 신앙을 증거한 훌륭한 평신도들이 있었다. 또한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신앙을 수행한 숱한 신자들 때문에 교회가 성장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 교회 의 통치와 운영에 있어서, 신앙의 사유를 재현하는 교회 신학에 있어서, 교회 사명의 핵심인 복음화와 선교의 영역에 있어서, 평신도의 위치와 역할이 오랫동안 미미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평신도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결정적인 비전을 제시한 공 의회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공헌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평신도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상상력을 제공한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공헌의 하나다.19 교회 안의 평신도 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신학적 상상력의 가능성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갑작스럽 게 발생된 것은 아니다. 신학의 역사 안에 그 나름의 배경과 많은 신학자들의 노력들 을 통해 계승된 것이다. 특히 교회의 직무들(ministries)과 사도 전래성(apostolicity)에 대 한 이브 콩가르의 신학적 통찰은 평신도에 대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이해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20

2.1. 보편 사제직, 신앙 감각, 대중 신심 
평신도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근거는 무엇보다 보편 사제직에 대 한 통찰에서 시작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은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 에 대한 이해를 제공한다. 하느님 백성의 교회론은 세례성사의 우선성을 강조하고 세 례성사를 통해 모든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함을 강조한다. 물론 신 학적인 측면에서 보편 사제직(the common priesthood)과 직무 사제직(the ministerial or hierarchical priesthood)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는 여전히 명확하지는 않다. 〈교 회헌장〉 10항은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과 직무 또는 교계 사제직은, 정도만이 아니라 본질에서 다르기는 하지만(differ essentially and not only in degree), 서로 밀접히 관련되 어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각기 특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 고 있다.”고 진술한다. 또한 〈교회헌장〉 34항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명과 사명 에 밀접히 결합시키신 평신도들에게 당신 사제직의 일부도 맡기시어(gives a share in his priestly office)”라고 진술한다. 이러한 진술들은 분명 보편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은 차 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정도와 본질의 차이는 존재적 차이(위계, 서열)를 뜻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기능적(역할의) 차이에 불과한 것인가. 〈복음의 기쁨〉104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좀 더 정직하게 진술한다: “직무 사제직은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에 게 봉사하시고자 쓰시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직무 사제직의 역할이 ‘위계적’으로 여 겨진다 하여도 ‘이 구조는 온전히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거룩함에 예속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핵심 축은 지배를 의미하는 권력이 아니라 성체성사 집전 권한입 니다.” 〈교회헌장〉 9항에서 언급된 신앙 감각(Sensus fidei)은 평신도 신학의 또 다른 배경 과 근거가 된다.21 개별 신자의 신앙 감각이든 믿는 이들의 신앙 감각이든 초자연적 본 능으로서의 신앙 감각은 “믿음에 관한 일을 명확히 식별하며, 참된 지혜를 촉진하고, 진리를 선포할 수 있게 해 준다.”22 모든 세례 받은 이들이 지니고 있는 초자연적 신앙 본능으로서의 신앙 감각은 “복음에 합당한 것을 인식하고, 복음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거부 할 수 있는”23 일종의 자율적 힘을 모든 신자들에게 부여한다. 신앙 감각이란 신 학적 개념을 통해 평신도들 역시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단순히 수동적으로만 대응하 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신앙 감각은 교 도권의 식별과 판단을 받아야 하지만, 이러한 신앙 감각의 존재는 평신도들에게 현실적으로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된다. 대중 신심(popular piety)에 대한 새로운 이해 역시 평신도 신학의 확장에 깊은 영 향을 미친다. 종교 사회학과 문화 인류학에 있어서 종교적 왜곡과 미신적 경향을 드러 내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었던 대중 신심에 대한 교회의 새로운 접근은 평신도 의 신앙적 자율성에 대한 새로운 공간을 제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중 신심에 대 한 열렬한 옹호자다. 물론 교회적이고 올바로 이끌어진 진정한 대중 신심이라는 단서 가 붙지만, 대중 신심은 “대중문화 속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육화되어 생겨나는 것이 다”(『복음의 기쁨』, 90항). 다시 말해, “받아들인 신앙이 어떻게 한 문화 안에 구현되고 지 속적으로 전달되는지를 볼 수 있게 해 준다”(123항). 대중 신심은 무엇보다 신앙 토착화 의 전위적 형태다. 또한 대중 신심은 “하느님 백성의 자발적인 선교 활동의 참다운 표 현이다”(『복음의 기쁨』, 122항). 대중 신심은 복음화하는 힘을 가졌다. 보편 사제직에 대한 신학적 강조, 신앙 감각에 대한 새로운 이해, 대중 신심에 대 한 새로운 재해석의 경향은 신학적 측면에서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 가 능케 하는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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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교회 운동들(ecclesial movements)
일반적으로 가톨릭 신앙생활은 교구와 본당 공동체를 중심으로 수행된다. 교회의 교계적이며 제도적인 차원(hierarchical-institutional dimension)의 핵심 조직인 교구와 본 당 공동체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를 포함하는 구조다. 하지만 신학적·교회법 적 측면에서 보면, 교구와 본당 공동체는 성직자(교구장과 본당신부)가 리더십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구와 본당 공동체에서 평신도들이 리더십을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교회 안에는 교구와 본당의 틀과 범위를 넘어 있는 다양한 교회 운동들(ecclesial movements)이 존재해왔다. 수도 공동체와 더불어 이 교회 운동들은 교회의 또 하나의 본질적 요소인 카리스마적 차원(charismatic dimension)을 드러낸다. 물론 교회 운동들은 수도 공동체 운동과는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분명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일반적으 로 교회 운동들은 몇 가지 본질적·내용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고유한 카리스 마를 지닌 창시자가 복음에 기초한 고유한 영성과 카리스마로 신자들을 세례의 갱신 으로 이끈다. 둘째, 그 공동체의 카리스마에 동의하는 모든 신자들을 구성원으로 받아 들인다. 즉, 성직자, 수도자, 기혼자, 미혼자,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공동체의 형태 를 지닌다. 셋째, 운동들의 제도적 구조는 매우 탄력적이고 유연해서 신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다. 넷째, 운동들은 교회의 사목적, 사도적, 복음화 사 명의 쇄신을 목적으로 한다. 교회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고유한 카리스마를 실현하려 한다. 다섯째, 운동들은 신앙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교회 내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과의 통교를 지향한다.25 교회 운동들의 구성적·형태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카리스마적 창시자, 고유한 카리스마, 공동체적 형태의 삶 또는 빈번하고 정기적인 모임, 평신도 중심의 회원, 복음에 대한 급진적인 헌신, 카리스마와 긴밀히 연결된 교육과 양성의 과정, 고유한 카리스마를 교회 생활 안으로 도입하려는 특별한 노력들 이다. 이러한 교회 운동들은 회원의 형태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평신도 교회 운동들, 성직자 교 회 운동들, 또는 평신도와 성직자가 혼합된 교회 운동들. 또한 생활 스타일에 따라 다 양한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독신공동체, 가족공동체, 친교공동체, 수도공동체, 선 교공동체 형태로 구성되기도 한다.26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기점으로 교회 운동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활발해지기 시 작했다고 많은 교회역사가들은 지적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교회 안에는 다양 한 방식의 운동들이 있었다. 가톨릭 운동(Catholic movement)과 가톨릭 액션(Catholic action)이라 불리는 평신도 중심의 운동들이 존재했었다. 이 운동들은 분명 평신도 중심 의 운동이었지만, 운동의 주도권은 교계지도자들과 성직자들이 갖고 있는 형태를 지 녔다. 운동의 구성원은 평신도들이었지만 교계지도자들이 주도권을 갖는 탓에 운동의 자율성이 많이 담보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27 195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평신도 신학이 활발해지고 평신도 사도직(the apostolate of the laity)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교회 운동의 양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새로운 교회 운동이 발생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공의회 이후의 교회 운동들은 교계와의 일치를 유 지하면서도 동시에 운동에 있어서 평신도들의 자율성과 역할이 강화되는 방식으로 주 로 작동되었다.28 교회 운동들은 그 지향하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성격(보수적, 진보적, 교계친화적, 엘리 트주의적)을 지닌다. 하지만 이 교회 운동들은 평신도들에게 영적 은사(spritual gifts)와 직무적 역할(ministerial roles)을 활성화하는 공간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29 또한 이 교 회 운동들은 교회가 하나의 제도라기보다는 하나의 운동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려주 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교회 운동들은 결과적으로 교회 쇄신을 겨냥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것이 진보적 방식이든 보수적 방식이든.30<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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