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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움] 상선벌악과 천주가사 < 심판가>
첨부 작성일 2018-03-23 조회 892

인문학 강좌

상선벌악과 천주가사 <심판가>

김문태 힐라리오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천주교의 4대 핵심교리인 천주존재, 삼위일체, 강생구속, 이와 더불어 상선벌악(賞善罰惡)은 현세에서의 공과가 사후의 심판을 통해 내세에 실현될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몸으로 한 일에 따라 갚음을 받게 됩니다”(2코린 5,10)

 

복음화는 비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베풀어 교회 공동체를 설립하는 선교, 그리고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들의 영적 생활을 돌보는 사목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복음의 힘으로 모든 사람들을 내적으로 쇄신시켜 복음적 생활로 인도하는 활동까지를 폭넓게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의 사명을 지닌 교회는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초대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새로운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하며, 하느님 생명에 참여시키는 일을 근본 사명으로 하고 있다(「교황 바오로 6세의 권고 – 현대의 복음 선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7, 14-19항). 이에 따라 교회는 안으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리교육을, 밖으로 비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교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의 신앙선조들이 박해시기에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하여 천주가사를 활용하였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사말교리(四 末敎理)인 죽음·심판·천당·지옥을 읊은 천주가 사는 초기 교회의 순교영성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이 핵심교리를 천주가사로 작품화한 것 중의 하나가 『박동헌본』에 전해오는 <심판가>다.

 

천주교의 4대 핵심교리인 천주존재, 삼위일체, 강생구속, 이와 더불어 상선벌악(賞善罰惡)은 현세에서의 공과가 사후의 심판을 통해 내세에 실현될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 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29-30)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 근거가 된다.

 

따라서 상선벌악 교리는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이 현세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심판결과에 따라 사후의 삶이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불의를 저지르는 자는 계속 불의를 저지르고, 더러운 자는 계속 더러운 채로 있어라. 의로운 이는 계속 의로운 일을 하고 거룩한 이는 계속 거룩한 채로 있어라. 보라, 내가 곧 간다. 나의 상도 가져가서 각 사람에게 자기 행실대로 갚아 주겠다.”(묵시 22,11-12)는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초대받은 인간은 자유의지에 의해 현세의 삶을 영위한다. 이어 인간은 죽음 이후에 각자 하느님 대전에서 개별심판 – 예전에는 사심판(私審判)이라 하였다. - 을 받게 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한 자는 천당에 가고, 불완전하게 응답한 자는 연옥의 정화과정을 거치며, 단호하게 거절하며 죄를 지은 자는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심판, 그리고 적대자들을 삼켜 버릴 맹렬한 불에 대한 무서운 예 상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히브 10,27)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개별심판의 근거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에 있다. 호화스럽게 살던 인색한 부자는 사후에 지옥의 불길 속에서 고통을 받았고, 가난하고 병든 라자로는 사후에 천사들의 인도로 아브라함과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그들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 오갈 수 없었다는 내용이 그러하다.

 

<심판가>는 4음보 92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1단락인 ‘놀납고도 무셥도다 심판날에 엄 이여’로 시작되는 1-8행은 인간은 누구나 심판받을 운명이라고 노래한다. 2단락인 ‘삼가하고 쇼심야 스로 쇽이지말쇼’로 시작되는 9-27행은 심판의 엄함을 노래한다. 3단락인 ‘이런각 미려야 엄심판 보 난다시’로 시작되는 28-33행은 죄의 통회와 보속을 노래한다. 4단락인 ‘엄 심판 아니밧고 텬당영복(天堂永福) 샹이로다’로 시작되는 34-45행은 마귀가 천주 대전의 심판장에 등장하여 죄인의 죄를 낱낱이 고한다. 5단락인 ‘참혹다 죄인이여 변발명(辯白發明) 말업셔’로 시작되는 46-82행은 수호천사가 역시 천주 대전의 심판장에 등장하여 죄인이 생시에 천주의 은혜를 저버린 사실을 낱낱이 열거한다. 천주의 자비와 인자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지옥을 택한 죄인의 잘못을 부각시킨다. 6단락인 ‘죄범자 말이업고 도망길 영원이라’로 시작되는 83-92행은 만시지탄을 그린다. 결국 죄인은 마귀에게 둘러싸여 맹호와 독룡이 마중 나온 맹렬한 불길 속으로 끌려가는 처지가 된다. 보속과 통회도 죽음 이후에는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심판가>는 사람은 누구나 죽음 이후에 천주 대전에서 엄한 심판을 받아야 할 운명이므로 현세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 함을 복음적 시각에서 읊은 노래다. 이 노래에서는 개별심판 후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천당으로 가는 것보다 그 죄과로 인해 지옥으로 가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 천주의 강생구속을 굳게 믿고, 마귀의 꼬임이 아닌 수호천사의 인도에 따라 천주의 자녀로서 충실히 살아야 함을 강조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천주가사는 ‘심판받을 운명 - 심판의 엄함 - 죄의 통회와 보속 - 마귀의 말 - 수호천사의 말 - 만시지탄’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 번째 단락에서의 통회와 보속이 살아 있을 때 이루어졌다면, 이어지는 단락에서의 질책과 후회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작자는 신자와 비신자가 살아 있을 때 회심하기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단락에서 심판의 결과 천당이 아닌 지옥으로 끌려 들어가는 죄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복음적 삶을 살지 않은 자의 말로를 비참하게 드러내는 것도 이러한 의도에서 야기된 것이다. 즉 이 노래의 작자는 이러한 작품구조를 통해 이 노래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현세에서의 그릇된 삶의 태도를 회개하여 복음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천주가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원고인 마귀와 증인인 수호천사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연극적 구성은 악한 자가 현세에서 저지른 죄악에 대한 질책을 보다 생동감 있게 드러내는 장치다. 이 노래의 향유자들이 개별심판을 아득한 미래의 가상적인 일이 아니라, 미구에 생생하게 마주대할 현실적인 일로 자각하게 하는 효과적인 장치인 것이다. 아울러 마귀의 말보다 수호천사의 말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이는 죄인이 어떤 죄를 범하였느냐의 문제보다는 어떤 태도로 살았느냐의 문제를 더욱 중시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수난하고 십자가상에서 죽은 예수의 공은(公恩)과 사은(私恩)을 잊고 배은망덕하게 산 죄인의 마음가짐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죄인을 구하려 하지만, 인간은 마귀의 유혹에 빠져 그 큰 은혜를 잊고 영원한 고통만이 있는 지옥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라는 말씀에 합당한 대목이다.

 

우리말로 창작된 <심판가>는 당시 한문이나 한글을 몰라 성경·교리서·신심서 등을 해독 하지 못하는 신자들이나 신앙심이 깊지 않은 신자들을 교육하는 한편, 천주교를 모르는 외인들에게 전교하는 데 유용하였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신자들에게는 그의 자녀로서 온전히 살아가게 하는 한편, 비신자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기회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하면 누구나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이 노래는 이 땅의 복음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 천주가사는 현세의 하느님 나라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오늘날 교회의 흐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판가>는 현세 중심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의 신자와 비신자들에게 복음적 삶과 순교영성의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가 병인박해 150주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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