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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특별기고] 복자 다카야마 우콘 시복식에 다녀와서
첨부 작성일 2017-04-17 조회 927


복자 다카야마 우콘 시복식에 다녀와서 

강우일 주교 제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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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 수속 70년 만의 경사 
지난 2월 7일 일본 오사카성 홀(컨벤션 센터)에서는 다카야마 우콘(유스토 高山右近) 복자의 시복식이 교황대리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교황청 시성성 장 관)의 주례로 열렸다. 일본 전국에서 1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하여 장엄 미 사와 함께 다채로운 시복 축제를 개최하였다. 한국 교회와 달리 교세가 약 해 가톨릭 신자가 소수에 불과한 일본 교회로서는 오랜만에 기획한 큰 축 제였다. 시복미사에는 필리핀 마닐라 교구의 타글레 추기경을 비롯하여 일본 주 교단 전원과 한국 주교단 6명, 베트남, 캄보디아, 룩셈부르크에서 온 주교 등 30명의 주교들을 비롯하여 300여 명의 사제들이 공동 집전하였다. 이번 시복식은 복자 유스토 우콘이 국외로 추방당하여 필리핀 마닐라에서 타계 한 지 402년 만이다. 다카야마 우콘의 시복은 일본 교회의 오랜 염원이었 고, 시복에 대한 수속이 시작된 지 70여 년 만에 이루어진 경사였다. 우콘은 처형되지는 않았으나 유배지에 도착한 뒤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교회는 그를 순교자로서 복자의 반열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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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신자 영주로서 
다카야마 우콘은 1552년 일본 전역에서 여러 영주들이 세력 다툼을 하며 끊임없는 전투를 되풀이하던 전국 시대에 무사 계급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해는 일본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하늘로 떠나신 해였다. 우콘은 나이 12살에 아버지 다리오와 가족 전체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22세에 다카츠키성(오사카 북쪽 약 20킬로미터) 의 성주가 된 우콘은 전국 시대의 무장으로서 주변 지역 무사 계급의 각축 전에 휘말리며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우콘은 수많은 전투에서 죽을 고 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도 그리스도 신자로서의 확고한 믿음과 가치관으로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유지하였다. 우콘의 인격에서 우러난 성실성과 현명함은 주변 많은 이들의 감화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전국 시대의 무장들은 상황에 따라 동맹과 약속을 수 시로 파기하였으나, 우콘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정평이 나 있었다. 어떤 무장이 우콘을 믿을 수 없는 자라고 고 발하자 당시의 최고 권력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 시(풍신수길)가 고발한 무장을 오히려 혼내주었다 는 일화가 있다. 우콘의 성실함은 많은 사람의 신 임을 샀고, 우콘의 사람됨에 끌려 많은 무사들과 영주들이 차례로 세례를 받고 가톨릭 교회의 일원 이 되었다. 그는 영주의 자리에 오른 무장이었음에도 아버 지와 함께 ‘미세리코르디아(자비)회’라는 신심단체 에 가입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성실 하게 임하였다. 그는 이 단체 회원으로 가난한 이 들, 병자들, 비천한 이들을 돕는 것을 적극 나서 서 실천하였다. 그는 한 지역의 영주라는 높은 직 위에 있었음에도 손수 죽은 이를 묻어주고 가난한 이를 구제하는 일을 서슴지 않으며 신분의 귀천을 뛰어넘는 모범을 보여 백성들을 놀라게 하였다.

영지를 몰수당하고 고향에서 추방 
1577년 한 해 동안 우콘이 다스리는 지역 백성 들 4천 명이 세례를 받았고, 그 후에는 그의 영지 에 속한 백성 대부분이 거의 천주교 신앙을 받아 들여 많은 불교 사찰이나 신사들이 문을 닫았다 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영주로 있는 동안 그는 여 러 곳에 교회 건물과 신학교를 건설하였다.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그리스도교 금교 령을 내린 뒤 우콘은 영주의 지위에서 쫓겨나 소 유하던 영지를 전부 몰수당하고 고향에서 추방당 했다. 다만 우콘에 대한 각별한 우정과 친교를 맺 고 있던 다른 영주 무장들의 우정으로 보호를 받 고 여러 곳을 떠돌며 27년간 그들의 영지에서 더 부살이를 하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콘은 선교활 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주변 이웃들을 신앙생활로 인도하였다. 그러던 중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가 막 부를 차지하고 일본 전체의 전권을 장악하며 도요 토미 히데요시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새로 권력 을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14년 새롭게 그리스도교 금교령을 발표하며 우콘은 국외추방 처 분을 받고 필리핀 마닐라로 쫓겨난다. 마닐라에 도착한 우콘은 그곳 교회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 으나 마닐라 도착 후 40일 만에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닐라 교회는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하고 우콘은 그곳 예수회 성당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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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내려가는 하강의 삶 
400년 전의 일본은 끊임없이 지속되는 전란으 로 온 나라와 백성이 짓밟히고 고통받던 혼돈의 시대였다. 무사들은 온갖 지략과 무력을 동원하여 더 윗자리로 치고 오르려고 갖은 술수와 하극상을 서슴지 않으며 신분상승만을 추구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오히려 우콘은 거꾸로, 입었던 갑옷 을 하나씩 벗고 아래로 내려가는 하강의 삶을 산 인물이었음을 오늘의 일본 교회는 되새기고 있다.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 시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며 자신을 비운 다카야마 우콘 복자 의 삶이야말로 현대를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 특 히 이웃 나라인 우리 한국 교회의 신자들에게도 깊이 새겨야 할 표양이요 모범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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