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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특집] 평신도가 똑바로 서야
첨부 작성일 2018-03-18 조회 982

한국평협 설립 50주년 맞이 – 역대 평협 회장을 만나다 【여규태 회장】

평신도가 똑바로 서야

 

대담·정리 김문태 편집위원

 

2018년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설립 5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역대 평협 회장을 만나 지난 50년을 회상하는 한편, 앞으로의 50년을 전망하는 시간을 갖는다. 덩굴장미가 활짝 핀 지난 5월 31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 자리한 의령 여씨 대종회 사무실에서 여규태 요셉 회장을 만났다. 그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제13대와 제14대 평협 회장을 역임 하였다. 여든넷이라는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다부진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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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는 26살 때 받았습니다. 당시 가정교사로 중학생을 가르쳤는데, 그 댁의 식구들이 교우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청량리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듬해 혼배도 그 성당에서 했고요. 나중에 혜화동성당으로 옮기고 나서 교회에 서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하게 됐지요.”

고향이 경북 봉화인 여규태 회장은 중학교 때부터 유도를 하였다. 운동을 좋아해서 처음에는 축구를 하다가 우연한 계기에 유도로 바꾸었다. 영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의 용인대학교에 3회로 입학하여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다. 1958년에 용인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유도 4단을 따고, 2004년에 대한유도회 공인 9단으로 승단하였다. 그간 그는 서울시 유도시설도장협의회장, 한국 유도고단자회장, 서울시 유도회장, 대한 유도회 부회장, 한국유도원 이사장, 대한 유도회 심의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 유도인으로 살아왔다. 또한 용인대학교 장학재단 이사장과 총동문 회장을 맡아 후배들을 양성하는 한편, 서울특별시 체육회 부회장을 비롯하여 아시아 무에타이연맹 부회장과 대한 무에타이협회 회장도 맡아 체육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의령 여씨 29대손으로 대종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그를 만난 사무실에 ‘대한무에타이협회’ 간판이 걸린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러한 공로로 2006년에 용인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8년에 대한 체육회 최우수공로상을 수상하였다.

여규태 회장은 혜화동성당에 다니면서 박순재 몬시뇰, 염수의 신부, 나원균 신부가 재임하던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사목회장을 하였다.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97년에 『백동 70년사』를 편찬한 일이었다. 백동성당으로 불린 혜화동성당은 서울에서 명동 종현성당과 중림동 약현성당에 이어 세 번째로 설립된 본당이니만큼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다음으로는 혜화동성당 소속의 포천 묘원을 재정비한 일이었다. 장면 박사가 영면하고 있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에 있는 289,516평의 묘원에 도로와 주차장을 정비하고, 제대를 마련한 것이 보람으로 남았다. 그러던 중 한국가톨릭경제인회 회장직을 맡게 되었고, 이듬해인 2000년에 한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이 되었다. 아울러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회장도 겸임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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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도인으로 살아온 여 회장, 공인 9단이다.


“평협 회장이 되고 나서 ‘똑바로 운동’을 펼쳤습니다. 박정훈 전 평협 회장이 펼쳤던 ‘내 탓이오 운동’처럼 교회와 사회를 바로 세우는 운동을 하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활동을 보고 공공기관에서 함께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운동의 순수성을 위해 거절했지요.”

여규태 회장은 전임 류덕희 평협 회장이 펼친 사업을 이어나가고자 하였다.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기 위하여 펼친 ‘가을걷이 도농 한마당잔치’ 를 재임기간 중 매년 개최하였다.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한 해의 수확에 대하여 감사하는 축제의 장을 서울시 서초구청 앞마당에서 열었던 것이다. 도농 간의 따뜻한 만남의 장이자 창조질서 보존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그는 도시 소비자와 농촌 생산자가 하나되어 생명의 연대를 이룰 때, 하느님이 창조한 원래 모습대로 생태계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는 남북한 교회의 교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 남북한의 유화적 분위기 속에서 종교계의 교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하였다. 2001년 9월에 평양 민족통일 대축전에 남측 대표단 337명이 참가하였다.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방북단을 파견하여 민간 차원의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문을 열었다. 당시 주교회의 사무총장이던 김종수 신부를 단장으로 한 천주교를 비롯한 7대 종단과 민족화해협의회, 통일연대 등으로 구성된 남측 대표단은 2002년 8·15 서울 행사에 북측 대표단이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 여규태 회장은 당시 장충성당을 방문하여 북한 신자들과 만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였다. 이어 2003년 8월에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회에 7대 종단을 비롯한 민간단체 대표단 341명이 재차 평양을 방문하여 민족공동행사를 통한 민족의 평화 의지를 확인하였다.

여규태 회장이 재임 기간 중에 지속적으로 심혈을 기울인 것은 2001년 9월에 선포식을 한 ‘똑바로 운동’이었다. 그는 세기말 세기초가 안고 있던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와 비윤리성과 같은 문제들은 우리의 양심과 도덕성이 무뎌진 데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였다. 따라서 똑바른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 및 사회의 공동선을 증진함으로써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는 의식개혁운동이자 회개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똑바로 운동’은 빛의 자녀로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는 삶, 하느님이 보시기에 올곧고 떳떳하고 성실한 삶을 살자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는 당시 4백만 평신도는 물론 뜻을 함께하는 선의의 국민도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해달라고 호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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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규태 회장, 고 백남익 몬시뇰, 정진석 추기경, 류덕희 회장, 최홍준 회장(왼쪽부터)


‘똑바로 운동’은 비단 평신도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성직자 역시 강론 중에 정치에 대한 사견을 밝히지 말고, 타종교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차량에 스티커를 붙여 실천을 다짐하는 국민의식개혁운동으로 확산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많은 평신도들이 ‘똑바로 운동’ 스티커를 자신의 차량에 붙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였다. 한번은 한마음수련원에 가서 주차되어 있던 차량들에 스티커를 붙이느라 다소 소란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때 두봉 주교가 나와 사제 연수중이라는 말을 건네 무안해하기도 하였다. 그는 그 해 말 두봉주교의 따뜻한 사과와 격려의 말이 담긴 성탄카드를 받고 감동하였던 일이 기억이 생생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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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평협의 명칭을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몇몇 교구에서는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를 사용하고있고, 대부분의 교구에서는 ‘평신도사도직협의회’를 쓰고 있거든요. 평신도를 대표하는 협의회 명칭을 하나로 통일해야만 합니다.”

 

여규태 회장은 일반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달변이라 느껴질 정도로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하였다. 하지만 교회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말을 아꼈다. 민감한 질문에는 ‘다 잘하고 있지 않느냐?’며 말을 돌리곤 하였다. 평신도로서 교회의 중요한 책무를 오랫동안 수행하였기에 하고싶은 말이 많으리라는 예상을 깼다. ‘비판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칭찬하고 격려해야 한다.’, ‘할 말을 다하고 살 수 없지 않느냐?’는 말에서 그의 심중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만은 예외였다. 평협의 명칭에 있어서는 힘주어 의견을 밝혔다. 현재 이분화되어 있는 평협의 명칭을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금도 서울대교구, 대구대교구, 의정부교구, 대전교구, 전주교구는 ‘평신도사도 직단체협의회’라는 명칭을 쓰고 있으며, 나머지 11개 교구는 ‘평신도사도직협의회’라고 호칭하고 있다. ‘단체’가 붙은 교구에서는 평협에 신심, 운동, 직능, 동호인 단체만 등록되어 있고, 각 본당의 사목협의회는 소속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교구의 각 단체장들은 평협 활동을 하고 있지만, 본당의 평신도를 대표하는 사목회장들은 평협 활동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구의 중요한 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평협이 본당의 평신도와 연결고리를 가질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여규태 회장은 앞으로 평협이 발전하고, 나아가 한국 천주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평협의 위상이 오늘의 평신도가 똑바로 서기 위한 발판이라 여기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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