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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평신도 사도직 (2)
첨부 작성일 2018-03-18 조회 1370

공의회 강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평신도 사도직 (2)

 

이창훈 알폰소 서울평협 기획홍보위원장, 가톨릭평화신문 기자

 

이 글은 ‘가톨릭평화신문’과 월간 ‘레지오 마리애’에 연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평신도사도직 교령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네 번에 나누어 싣는다.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변화

 

 

1)전례 쇄신과 하느님 말씀 강조

 

가장 먼저 이뤄진 그리고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전례 분야였다. 공의회의 첫 결실인 전례헌장이 반포되고(1963년 12월 4일) 난 직후 1964년 4월 한국 주교회의는 전례 쇄신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 촉진이라는 전례헌장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산하에 전 례위원회를 설치했다.

 

전례위원회의 첫 결실은 한국어 미사였다. 주교회의는 공의회 기간인 1964년 10월 로마에서 회의를 열어 1965년 1월 1일부터 자비송, 대영광송, 독서, 복음, 신경, 거룩하시다 등 신자들이 함께 하는 부분은 한국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미사통상문’ 으로 지칭되는 우리말 미사는 이후 로마(교황청)의 미사경본 개정 작업에 따른 우리말 번역 작업과 수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됐다.

 

공의회 이전에는 제대가 벽에 붙어 있었고 사제는 성찬 전례 때 신자들을 등지고 미사를 봉헌했다. 신자들은 사제 등을 바라보며 미사 전례에 ‘참석’했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 사제는 지금처럼 제대를 중심에 두고 신자들을 바라보며 미사를 거행하기 시작했다. 제대가 사제와 신자들 사이에 있다는 것은 제대가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공동체의 중심에 모신다는 의미를 지닌다. 신자석과 제단 사이의 난간이 치워진 것, 서서 손으로 성체를 모시는 것, 성당에서 제대를 가로지를 때 절을 하며 제대를 향해 예를 표시하는 것, 여성이 미사 복사를 서거나 평신도에게 예외적으로 성체 분배권 을 수여하는 것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에 따른 변화들이다.

 

전례력 개혁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에 따라 이뤄진 변화 가운데 하나다. 교회가 예수 성탄과 예수 부활을 두 축으로 해서 대림시기를 시작으로 성탄시기-연중시기-사순시기-부활시기-연중시기로 1년을 전례주년으로 지낸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성인들의 축일이 중심이었다. 공의회는 전례 쇄신을 통해 전례주년의 중심은 주님이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경축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에 따라 1969년 지금과 같은 전례력이 마련 됐다.

 

전례 쇄신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느님 말씀 곧 성경에 관한 강조다. 공의회 이전에는 미사에서 성찬 전례가 강조됐고 말씀 전례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 졌다. 이는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들이 “오직 성경만으로!”를 주장한 데 맞서 가톨릭교회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성전(聖傳)과 함께 성사(聖事)를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성경을 소홀히 한 데 따른 것이다.

 

공의회는 전례헌장을 통해 하느님 말씀인 성경이 미사 전례에서 더욱 다양하고 풍요롭게 활용될 것을 강조했고, 이에 따라 미사에서 말씀 전례도 성찬 전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됐다. 공의회는 계시헌장을 통해 하느님 말씀에 맛들일 것을 강조하면서 성경 번역은 물론 성경 읽기와 성경 보급, 성경 연구 사도직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 교회에서도 성경에 대한 관심이 일고 성경 공부에 집중하는 사도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교회의 산하에 성서위원회가 설립된 것도 공의회가 끝난 후인 1965년이었다.

 

전례 쇄신 운동과 성경 연구 및 보급 운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전부터 특히 유럽 교회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운동들이 운동 으로 머무르지 않고 실제적인 변화와 쇄신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 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다 준 획기적 변화 가운데 하나는 교회에 대한 이해 를 새롭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공의회 이전의 교회는 한마디로 엄격한 위계 중심의 교계제도로 이뤄진 교회라고 할 수 있다.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는 교황이 있고, 그 아래에는 주교들이, 주교들 아래에는 신부들이, 아래에는 하급 성직자인 부제들이 있다. 평신도들은 이 위계 중심의 교계제도의 지시를 받는 수동적 존재에 불과했다. 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교회가 모두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특히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모습은 일반적으로 이와 같이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런 교회관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교회헌장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공의회는 교회를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으로 이해했다. 세례로 하느님 자녀가 된 신자들은 비록 교회 안에서 수행하는 직무에 있어서는 성직자들과 본질적 차이가 있지만(평신도의 보편 사제직과 성직자의 직무 사제직) 하느님 백성으로서 똑같은 품위와 존엄을 지닌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회를 친교 공동체로 보는 ‘친교의 교 회’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위계 중심의 제도 교회에서 친교 공동체로 전환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대단히 크게 강조되는 소공동체 운동은 바로 공 의회가 제시하는 친교 공동체로서의 교회 모습을 구현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계 중심의 제도 교회가 틀렸다거나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위계 조직이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을 위한 봉사 조직이라 는 점이다.

 

하느님 백성인 교회, 친교 공동체인 교회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교회관은 교회 통치 혹은 운영 면에서도 변화를 가져다줬다. 우선 주교단 단체성 혹은 주교단성(主敎團性)을 들 수 있다. 주교단성이란 주교들이 교황을 단장으로 하나의 주교단을 이뤄 보편 교회(전 세계 교회)에 대해 최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주교단 단체성을 통한 최고 권력은 세계 공의회에서 장엄하게 행사된다.

 

친교 교회관에 바탕을 둔 주교단 단체성을 보여주는 또 한 가지는 교회와 사회의 주요 현안과 관련해 교황을 자문하는 상설기구인 주교 시노드(주교 대의원회의)다. 주교 시노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부터 있었지만 보편 교회의 교회법적 기구로 서 상설화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자문기구 성격을 지니지만 주교 시노드가 교회법적 기구로 존재하게 된 것은 친교 교회관에 바탕을 둔 주교단 단체성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교황은 주교들 의견을 더욱 존중해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친교 교회관을 반영하는 교회법적 기구로 오래 전부터 지역 교회 차원에서 지역 주교회의와 관구 공의회 등이 있었지만 특별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별 교회인 교구 차원에서 이를 반영하는 교회법적 기구들이 마련됐다. 대표적인 것이 교구 사제평의회와 교구 사목평의회다.

 

개별 교회인 교구의 최고 목자인 교구장 주교는 교구 사제들을 대표하는 사제평 의회와, 사제뿐 아니라 수도자와 평신도 등 교구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교구 사목에 반영토록 하기 위한 사목평의회를 의무적으로 두게 돼 있다. 사제평의회와 사목평의회는 물론 교구장 자문기구다. 따라서 교구장은 자신이 원하면 굳이 사제평의회와 사목평의회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만 생각한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쇄신 정신 특히 친교 교회관을 왜곡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본당 사목협의회(사목평의회) 역시 친교 공동체로서의 교회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을 반영하는 교회법적 기구다. 교구장 주교가 합당하다고 판단하면, 본당마다 설치해야 한다. 현행 「교회법전」이 규정하는 본당 사목평의회는 본당 주임 신부의 자문기구이지만 본당 신자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 더욱 효과적으로 사목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는 교구 사목평의회나 본당 사목평의회가 평신도들이 참여하는 기구라는 사실이다. 평신도들이 교회 운영 또는 사목에 참여할 길을 열어놓은 것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다준 획기적 변화다. 친교 교회관을 바탕으로 교회를 하느님 백성으로 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를 사목 대상으 로 여긴 이전과는 달리 사목 협력자로, 교회 사명에 함께 참여하는 주체로 이해했다. 신학자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평신도를 위한 공의회’라고 부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 백성인 교회, 친교 공동체인 교회. 여기에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 목자인 주교와 그 협조자인 신부들과 마찬가지로 세례와 견진성사로 하느님 자녀가 되고 성령의 은총 속에 살아가는 신자들에게도 하느님의 영인 성령께서 작용하신다는 것을 공의회는 다시 확인한 것이다(신앙 감각, 12항). 서로 역 할은 다르지만 같은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공동체가 바로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로 이뤄진 하느님 백성인 교회다. 신자들은 목자를 존경하며 따르고, 목자는 신자 공동체 안에서 부는 성령의 바람을 존중하는 것, 이것이 친교 공동체인 교회 모습이다.

 

 

3)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

 

❶ 교회 일치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을 발표할 때부터 새 공의회가 일치를 위한 공의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교회 일치는 제2차 바티 칸 공의회의 핵심 사안이었다.

 

후임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는 1964년 1월 예루살렘에서 그리스 정교회 수석 총대주교인 아테나고라스 1세와 역사적 회동을 한 데 이어 그해 9월 13세기 십 자군 전쟁 당시에 탈취해 보관하고 있던 사도 성 안드레아 유해를 그리스 파트라이에 반환했다. 성 안드레아 사도는 그리스 정교회 수호성인이어서, 교황은 이를 통해 정교회와 화합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교황은 공의회 폐막 전날인 1965년 12월 7일 1054년에 있었던 콘스탄티노플과의 상호 파문을 911년 만에 철회하는 공동선언 을 발표한다.

 

공의회가 끝난 후 바오로 6세는 1967년 7월 터키를 방문, 이스탄불에서 아테나고 라스 1세 총대주교와 다시 만났고, 그해 12월에는 아테나고라스 1세 총대주교가 처 음으로 바티칸을 방문한다.

 

이에 앞서 교황은 1966년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를 만났고, 이 만남을 계기 로 성공회와 가톨릭교회의 쟁점들을 논의하기 위한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위원회 (ARCIC)가 설립된다. 바오로 6세는 1969년에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 본부를 찾았고, 1973년에는 로마에서 칼케돈 공의회(451년) 때 갈라져 나간 고대 동방교회인 이집트 콥트 교회 총대주교 쉐누다 3세와 그리스도 신앙 교리에 관 한 공동선언을 발표한다.

 

교황은 또 공의회를 준비하기 위해 설치했던 그리스도교 일치 사무국을 공의회가 끝난 후에는 교황청 상설기구로 설치해 일치 문제를 관장하게 한다. 이 일치 사무국은 1988년 교황청 기구 개편과 함께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약칭 일치평의회)로 개편돼 오늘에 이른다.

 

보편 교회 차원의 일치 노력은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 교황 때 더욱 활발하게 펼쳐졌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특히 정교회와 일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79년에는 이스탄불을 방문, 디미트리오스 1세 총대주교를 만났고, 이를 계기로 가톨릭-정교회 합동 위원회가 구성됐다.

 

교황은 또 1987년에는 디미트리오스 1세를 바티칸으로 초청한 데 이어 1995년 그 후임 바르톨로메오 1세 총대주교를 초청했다. 루마니아(1999)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와 아르메니아(2001)를 방문했을 때나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시나이, 예루살렘, 시리아, 그리스까지 성경의 세계를 순례했을 때 정교회와 고대 동방교회들과 일치도 주요 사안이었다. 특히 1995년에 발표한 회칙 「하나되게 하소서」는 교회 일치를 위한 교황의 염원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문헌이다.

 

가톨릭교회와 정교회는 1978년 이후 해마다 안드레아 사도 축일(11월 30일)에는 가톨릭 대표단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가 있는 이스탄불을 방문하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축일(6월 29일)에는 정교회 대표단이 로마를 방문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교회임을 확인하고 있다.

 

종교개혁 이후 갈라져 나간 개신교 교회들과의 일치 노력 역시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교황청 일치평의회는 신앙교리성 등 유관 부서와 협조하면서 정교회와 고대 동방교회들뿐 아니라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회, 복음주의교회 등 주요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 일치를 위한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1999년에는 루터교와 함께 ‘신앙에 의한 의화에 관한 공동 선언’을 발표, 16세기 종교 분열의 한 원인이 된 의화 교리 문제에 있어서 원칙적 합의를 보았다. 이 공동 선언은 2006년 7월 서울에서 가톨릭교회와 세계감리교협의회 그리고 루터교 세계연맹의 의화 교리 에 관한 공동 선언으로 이어졌다. 

 

일치 노력이 순조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정교회 일부 교회들은 특히 동유럽 지역에서 가톨릭교회가 정교회 신자들을 개종시키려 한다며 탐탁지 않은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또 성공회와의 일치 노력은 성공회에서 여성 사제 서품을 인정한 것이 암초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갈라진 형제들과 일치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❷ 종교간 대화

 

종교간 대화 노력 역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새롭게 시작됐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공의회가 진행 중인 1964년 6월 타종교와의 관계 증진을 위해 비그리스 도교 사무국을 설치했다. 공의회가 비그리스도교 선언 「우리 시대」(1965년 10월 28일) 를 발표한 후 이 선언의 정신에 따라 타종교와 대화를 추진해 온 사무국은 1988년 교 황청 기구개편과 함께 종교간대화평의회로 개편했다.

 

종교간대화평의회는 보편 교회 차원에서 그리스도인들과 타종교인들과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증대하고 대화와 협력을 증진한다.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이 해마다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교 등 주요 종교의 축제일에 경축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6년 아시시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 지도자 모임을 열었고, 아시시 25주년을 맞아 2011년 10월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시 아시시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지도자 기도 모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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