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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로마시 우르바노 8세로 16번지’
첨부 작성일 2018-03-18 조회 897

우르바노(Urbano) 신학교 생활 체험기 1

‘로마시 우르바노 8세로 16번지’

 

박정일 미카엘 원로사목자, 전 마산교구장 주교

 

 

지난 호까지 「평신도」지의 호의로 나의 ‘북한 생활 체험기’를 함께 연재하였다. 나는 이 체험기에서 공산치하의 북한 국민의 생활상과 교회가 어떤 어려움과 박해를 받았는지 직접적인 나의 체험을 진솔하게 기술하였다. 그리고 곁들여서, 6·25 동란 시의 나의 월남(나는 북한의 평남 평원군 태생이다) 피난기와 아울러 피난 신학교 (제주도와 부산 영도) 생활 체험기 등도 기술하였다. 그런데 나는 부산 영도 신학교에서 1년을 수학하던 중 로마 우르바노 신학교(Collegio Urbano)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국에서는 북한의 덕원 신학교와 제주와 부산 영도의 피난 신학교에 서 약 1년밖에 신학교 생활을 하지 못한 셈이다. 나는 로마에서 신학교 과정(철학 3년, 신학 4년)을 처음부터 시작하여 1958년에 사제품을 받고 사회학 2년을 이수한 후 1962년 9월에 귀국하였다. 나는 근현대의 파란 많던 한국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운 좋게(!)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헤쳐 나올 수 있었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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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정일 주교

 

 

「평신도」지에 연재한 ‘북한 생활 체험기’가 인연이 되어 이제는 또 한 번 ‘우르바노 신학교 생활 체험기’라는 요청을 받고 연재하게 되었다. 나는 이 연재의 청을 받고 처음에는 다소 수락하기를 망설였다. 왜냐하면, 신학교 생활이야 보통으로 신자들이 알고 있고 짐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연재를 수락하게 된 동기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우르바노 신학교는, 앞으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일반 신학교(교구나 수도회가 자기 교구나 수도회를 위한 사제 양성을 위해 설립한 신학교)와는 다른 성격과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르바노 신학교는 교구나 수도회 신학교와는 달리 교황청이 직접 ‘교황께서, 전 세계 교회를 위하여, 전 세계 전교지방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교회의 중심지인 로마에 설립한 신학교다.’) 따라서 우르바노 신학교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세계 복음 선교 사명과 직결되는 신학교라고 할 수 있다. 우르바노 신학교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인 1627년, 교회의 복음 선포 사명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깊이 통찰하신 우르바노 8세 교황께서 전교지방 신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세우신 특수 신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이 연재를 읽을 독자 여러분이 교회의 선교 사명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느끼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을 기꺼이 집필하기로 하였다. 현재 우르바노 신학교의 소재지 주소는 우르바노 신학교를 설립하신 우르바노 8세 교황을 기념하여 ‘로마시 우르바노 8세로 16번지’(Via Urbano VIII, 16)로 되어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 19-20; 마르 16, 14-18; 요한 20, 19-23) 하시며 세상 구원을 위한 복음 선포 사명을 부여 하셨고, 또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시면서도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며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 8-9)라고 하시며 전 세계에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부여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사도들을 주추로 해 세우신 당신 교회에 부여하신 복음 선포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복음 선포는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교회의 근본 사명인 것이다.

 

사도들이 주님의 이 중대한 복음 선포의 명령을 어떻게 수행하였는가 하는 것은 신약성서 사도 행전에 잘 기록되어 있다. 사도들은 성령을 받은 후 힘을 얻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했을 뿐 아니라,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유다 지도자들의 협박과 박해를 불구하고 용감히 복음을 선포하였고 마침내 장렬히 순교까지 하였다.

 

초대 교회 신자들의 복음 선포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그들이 복음 선포에 전심하였다고 미루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의 공동체 생활을 함으로써 사람들을 감동시켜 신자들의 수가 늘어났다고 사도행전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사도 2, 42-47.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

 

 

수도회들의 출현과 복음 선포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시조는 성 안토니오 (251-357)이다. 그는 이집트에서 혼자서 은수생활을 하면서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완덕을 지향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한 개인적 은둔 수도생활이 차츰 공동적 은둔생활로 변천하면서 수도생활이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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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토니오 은수자

 

서방 교회의 수도생활 시조는 성 베네딕토 (480-547)이다. 성인께서는 오늘날까지도 수도생활의 표본이 되고 있는 유명한 「수도규칙」을 만들 었다. 베네딕토회 수도자들은 한 곳에 정주(定住) 하여 생활하며 청빈, 정결, 순명의 3대 서약을 하고 기도, 노동, 성경공부에 정진하였다.

 

그 후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각각 다른 목적과 영성을 추구하는 수도회들이 생겨났다. 여러 종류의 봉쇄 수도회와 활동 수도회 등이 그것이다. 수도회들은 각각 고유한 목적과 영성을 추구하면서 주님의 복음 선포를 수행하였다. 그러한 여러 수도회 가운데서 가장 먼저 특별히 복음 선포에 주력한 수도회가 예수회다.

 

예수회는 16세기 중반 1534년경 파리대학 신학부 학생 이냐시오 로욜라와 프란치스코 하비 에르 등 젊은 7명의 학생들이 의기투합하여 루터의 종교개혁을 반대하며 복음 선포와 외교인 회두를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교황의 명을 받들어 청빈과 정결의 생활을 서약함으로 태동되었다. 1539년 이냐시오 로욜라는 로마에서 회헌 초 안을 작성하였고, 1540년 9월 27일 바오로 3세 교황이 이를 윤허함으로써 예수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예수회는 교구에 소속되지 않는 교황청 직속 수도단체다. 그리고 교황의 명을 온전히 받드는 것이 예수회의 특징이다.

 

또한 예수회는 고등교육을 중요시하고 담당하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중세기인 창설 당시부터 귀족과 군주 등 지도계급의 자제들을 대상으로 엘리트 교육에 치중하였다. 그러한 전통은 오늘도 대학 교육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유지 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 유명한 로욜라 대학들이나 서울의 서강대학교, 일본 도쿄의 상지대학교 등이 예수회가 설립하여 운영하는 명문 대학들이다.

 

예수회는 인도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중에 예수회 회원 마태오 리치 신부(1522-1610)가 1582년 중국에 입국하여 서양문물을 소개하고 유창한 중국어 실력으로 천주교 교리서 「천주실의(天主實義)」 를 저술하여 중국과 한국 선교에 큰 영향을 미쳤 다. 우리 선조 남인 학자들이 이 책을 읽고 천주 교를 알게 되었고 북경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을 만나 교리를 배우고 이승훈이 베드로의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고 한국의 첫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황청 포교성성 설립


신자들의 선교열과 수도회들의 선교활동에 발 맞추어 가톨릭 신앙의 확산을 촉진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교황청 안에 전 세계 복음 선포를 총괄하는 새로운 기구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포교성성(布 敎聖省 = Sacra 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이 그것이다. 포교성성은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의 교서 《Inscrutabili Divinae = ‘무량하신 하느님의’》로 설립되었으며 전 세계의 비그리스도교 국가와 민족들의 복음화를 총괄하는 중대하고 광범위한 책무를 담당한다. 그러 한 무거운 책무와 권위를 한 몸에 지닌 포교성성 장관 추기경을 사람들은 가끔 ‘붉은 교황’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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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15세 교황

 

교회 안의 예수회 중요성에 비추어 사람들은 예수회 총장 신부를 ‘검은 교황’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참고: ‌ 교황은 흰색, 주교와 추기경은 붉은색, 사제는 검은 색 주게토✽를 쓴다.

주게토zucchetto=가톨릭 성직자가 쓰는 반구형 모자, 속칭 빵떡 모자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을 이은 우르바노 8세 교황께서 전임 교황님의 뜻을 이어 비 가톨릭 국가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그러한 나라들(소위 전교 지방)의 신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신학교를 교황청이 가까운 로마에 설립하였다. 이 신학교가 바로 설립자 우르바노 8세 교황의 이름 딴 우르바노 신학교(Collegio Urbano)이며, 필자가 다니고 사제가 된 신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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