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보기서울평협 바로가기
> 계간 평신도 > 웹진
계간 평신도
  • 2017년 가을 / 계간 57호
    “220V 열정으로 기쁘고 따뜻하게 살아갑니다”
    PDF 다운로드
제목 [특집] 기도하는 평신도가 되어야
첨부 작성일 2017-11-08 조회 894

한국평협 설립 50주년 맞이 – 역대 평협 회장을 만나다 【손병두 회장】

기도하는 평신도가 되어야

대담·정리 김문태 편집위원

2018년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설립 50주년이 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역대 평협 회장을 만나 지난 50년을 회상하는 한편, 앞으로의 50년을 전망하는 시간을 갖는다. 삼복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 2일 서울지하철 강남역 옆에 자 리한 삼성생명 6층 호암재단 이사장실에서 손병두 요한 보스 코 전 회장(76)을 만났다. 그는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제15 대 평협 회장을 역임하였다. 동서투자자문 대표이사 사장, 전국 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코피온 총재, 서강대학교 총장, 한국 대학교육협의회 회장,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 KBS 이사장 등 다양한 단체를 이끌어온 경영인이자 교육자답게 차분하고도 신중한 모습이었다.

20171017_161835.png


@ 세례를 받으신 계기와 이후의 변화에 대해 말 씀해 주세요.
저는 경남 진주의 유교 집안에서 자랐는데, 초 등학교 3학년 때 큰형님이 결혼하시면서 세상에 천주교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형수가 천주교 구교 집안이었거든요. 그 후 경복고등학 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서 입주 가정교사를 했는데, 그 집안이 독실한 가톨 릭이었습니다. 자연히 그 분위기에 젖어들었고, 성인전과 같은 교회서적을 읽으며 천주교에 흥미 를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님이 타계하시자 죽음에 대해, 신앙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됐지요. 어머님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으니 세상이 참 쓸쓸했습니다. 무작정 무전여행을 떠나 합천 해인사에 가서 스님들과 토론하기도 했고, 유명한 목사님들의 신앙강좌를 들어보기도 했고, 명동성당에서 신 부님들의 강론을 듣기도 하면서 정신적인 방황 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다가 중국의 법리학자이자 가톨릭 법사상가였던 오경웅(吳經熊) 박사가 쓰신 『동서의 피안』을 읽고 천주교를 믿어야겠다고 결 심하고, 본당 전교회장님의 특별 교리교육을 받 아 영세 입교하였습니다. 세례명은 『돈보스코 성 인전』을 읽고 교육자요 사회사업가인 그분을 본 받아야겠다고 해서 제가 선택했지요. 세례 후 제 삶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신앙심에 불타 온 세상 사람들을 천주교로 영세 입교시키고 싶은 열망이 불타올랐거든요. 그래서 당시 가 톨릭학생회 지도신부이신 나상조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을 찾아뵙고 ‘서울상대 가톨릭학생회’를 만 들었습니다. 제가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1학 년이었던 한홍순 전 바티칸대사와 홍문신 전 산 업연구원 원장 등 가톨릭 신자들을 모아 활동했 지요.

20171017_161923.png


대학을 졸업하고 ROTC 장교로 전방 소대장 으로 갔습니다. 개신교는 사단 단위, 연대 단위까 지 군종목사가 있었지만, 가톨릭의 군종신부는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사단에 신학생 2명이 있었 는데, 그들과 함께 사단 수송부에 교섭해서 차량 한 대를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천주 교 신자들도 주일이면 공소예절을 할 수 있었지 요. 그 신학생들이 바로 최창화, 나원균 몬시뇰이 십니다. 그때 ‘가톨릭 군인회’를 조직해 회장으로 서 신자 사병들을 음양으로 돌보며 보람을 느꼈 습니다.

@ 교회에서 봉사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군에서 예편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 나상조 신 부님을 모시고 ‘가톨릭 청년사도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열심히 신앙심을 키워갔습니다. 결혼한 후에는 화곡동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는데, 신 부님 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30여 명 정도가 모여 미사를 드렸지요. 이사 후 첫 주일미사를 갔는데, 신부님이 저를 포함해 몇 사람을 사목위원으로 임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젊은 제가 29세 때에 교 육분과위원장을 맡았던 겁니다. 그 본당신부님이 원로사제이신 김형식 신부님이십니다. 그 뒤 화곡동에서 ME 소개모임에 갔다가 그 길로 ME 주말교육을 받고 봉사자로 뽑혀 ME 봉 사를 하게 됐습니다.

제가 ME 주말교육 체험을 하고 나서 나 자신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주 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예수님 을 제대로 만나 내 신앙생활의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된 것이지요. ‘우리는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비전을 갖게 됐고, 이 세상 곳곳에 하느 님 말씀을 전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을 갖게 됐습 니다. 나 자신과 가정과 교회를 쇄신할 수 있다는 소명의식에 불탔습니다. 그로 인해서 한국 ME 대표도 됐고, 아시아 ME 대표도 돼서 세계 ME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여 아시아 ME 가족을 대표 하여 활동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 평협 회장으로서의 지향점과 주안점, 그리고 보람된 일과 아쉬웠던 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일찍이 사목위원이 되는 바람에 이사 가 는 곳마다 사목회 일을 맡게 됐습니다. 대치동 성 당 총회장 때부터 평협 주최 모임에 참여하여 이 관진, 박정훈, 류덕희, 여규태, 한홍순, 최홍준, 강주희 회장님 같은 교회지도자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또 김수환 추기경님을 비롯한 교 회 장상들과도 교분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리 고는 여규태 회장님 다음에 제15대 평협회장으로 선출됐지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평신도의 중요성과 위상을 높이자는 뜻에서 평협이 탄생된 만큼, 평 신도의 목소리를 교구장님을 비롯한 사목자들에 게 제대로 전달함으로써 우리 교회가 성직자 중 심의 교회운영을 탈피하여 평신도와 함께하는 공 동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평신 도 사도직의 위상과 조직구조에 대한 워크숍을 열기도 했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평협은 본당 총 회장과 평신도 단체장이 함께하는 조직으로서 명 실상부하게 교구장을 보좌하는 평신도들의 대표 조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회장이 된 뒤에는 박정훈 회장님이 펼친 ‘내 탓이오’ 운동과 여규태 회장님이 펼친 ‘똑바로’ 운동에 이어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세상’이라 는 캠페인을 시작했지요.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 정이 성화되고 행복하면 자연히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는 이상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자살, 폭력, 마약, 저출산, 이혼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병리현 상이 가정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가정을 성화시켜 건강하고 건전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자는 캠페인이었지요. 아울러 그때는 소위 IMF경제위기 이후 대량실 업사태로 많은 실직자와 가정이 참으로 암울하고 고달팠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이들 과 그 가정에 위안을 주고 희망을 주기 위해 명동 성당에서 <하상신앙강좌>를 개최했습니다. 주1회 1강좌씩 12강좌를 했지요. 강좌 당일에 1,200여 명이 몰려와 성당이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일부 는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대성황을 이루었습니 다. 그때 강좌에 왔던 분들 중에 영세 입교한 분 들이 많았습니다

20171017_162016.png


또한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도 펼쳤습니다. 평 협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인 김현욱 회장님과 함 께 매주 목요일 오후 4시 꼬스트홀에서 100여 명 의 신자들이 모여 탈북자의 증언을 청취하고 기 도회를 개최했지요. 그러고는 성모상을 모시고 명동성당을 돌면서 묵주기도 5단을 바쳤습니다. 독일 통일이 이루어진 이면에는 라이프치히에 있 는 니콜라오 교회에서 처음에 서너 명의 신도가 통일을 위한 기도를 했는데, 나중에 십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 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거든요.

이 운동을 계기로 전국의 성당에서 평화통일 기도운동을 전개하면 우리도 독일처럼 휴전선 철 조망이 걷히고 평화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 라는 확신을 가졌던 겁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 가 평협 회장을 마친 후 지속되지 못한 채 끝나버 렸습니다. 그래서 파티마 성모님 발현 100주년을 맞이하는 금년에 평협이 북한 구원과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운동을 전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하게 듭니다. 

20171017_162104.png


@ 교회 내에서 평신도의 역할과 앞으로 평협이 나아갈 길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평협이 발족한 지 50여 년이 됐지만, 아직도 평신도의 위상과 역할이 제대로 정착됐다고 보 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교구마다, 본당 마다 교구장님과 신부님에 따라 평신도의 위상 과 역할이 천차만별인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아직도 우리 교회는 성직자 중심의 교회 라고 봐도 과히 틀리지 않습니다. 교회는 성직 자도 평신자도 아닌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여야 하며, 모든 것을 복음 중심으로 이루어야 합니 다. 평신도들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성직자들 도 평신도에 대한 태도와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함께 이행돼야 하지요. 평신도 각자가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회 운영에 자율성 과 개방성, 투명성을 높여 나갈 수 있는 장이 마 련돼야 합니다.

평협은 어디까지나 평신도들이 모인 신앙공 동체입니다. 따라서 우리 평신도들이 삼위일체 이신 하느님 모상을 닮은 교회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활동에는 늘 성령이 함께해야 하 는 것이지요. 그래서 평신도 활동에는 꼭 기도가 필요합니다. 평협은 무엇보다 예수님 말씀을 따 르겠다고 열심히 기도하는 신앙공동체가 돼야 하는 겁니다. 평협이 성직자들과 어떻게 일치를 이루며 이 세상에 하느님 말씀을 구현할 수 있을 까를 고민해야 하는 까닭이지요. 왜 냉담교우가 늘어가는지, 왜 교세가 정체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 교회장상들과 성직자들과 함께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며 해결의 길을 찾아 야 합니다. 자신감을 잃고 자조적인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 는 손길을 내미는 노력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 을 겁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빛이 되고자 하는 교회가 사랑이 없는 정의만을 외치다가 신자들을 떠나보 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사랑이 함께하는 정의를 실천하는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도록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하지요. 성직자들은 사목자로서 양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양의 냄새가 나도록 몸을 낮추어야 하며, 평협은 신뢰와 사랑의 교회 가 될 수 있도록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가교 역 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전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한국 교회의 평신도 중심 쇄신
다음글 ‘한국. 평신도. 열두 마당’
      


TOP 위로가기
Copyright ©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All Rights Reserved.

04537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80 (명동2가 1) 가톨릭회관 510호
전화 : 02) 777-2013 / 팩스 : 02) 778-7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