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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평신도 사도직 (3)
첨부 작성일 2017-11-08 조회 1606

공의회 강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평신도 사도직 (3)

이창훈 알폰소 서울평협 기획홍보위원장, 가톨릭평화신문 기자

이 글은 『가톨릭평화신문』과 월간 『레지오 마리애』에 연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평신도사도직 교령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네 번에 나누어 싣는다.

4) 교회와 세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변화와 관련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한 분야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 혹은 세상에 대한 교회의 이해다.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 대해 특별히 다루고 있는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이다. 사목헌장의 첫 대목은 이렇 게 시작한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무엇 이든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스도 제자들의 공동체가 인간들로 이 뤄져 있기 때문이다.…그리스도 제자들의 공동체는 인류와 인류 역사에 긴밀하게 결합 되어 있음을 체험한다”(1항). 공의회 문헌 가운데서 말 그대로 ‘심금을 울리는’ 대목으로 꼽히는 사목헌장의 이 대 목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결부돼 있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감동적으로 표 현하고 있다.

공의회 이전에 교회는 세상을 이러한 시각으로 보지 않았다. 공의회 이전에 교회가 세상을 바라보는 일반적 시각은 이원론에 가까웠다. 이원론이란 한마디로 세상이 영과 육, 성과 속, 정신과 물질, 선과 악의 대립 구조로 진행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물론 교회 가 이원론을 인정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교회는 이런 이원론을 언제나 단호히 배 격하였다.

그래도 교회와 신자들의 실제 삶에는 이원론적 경향이 적잖게 배어 있었다. 교회 일 을 하는 성직자나 세속을 떠난 수도자에 비해 세속에 파묻혀 사는 평신도는 열등하다는 생각, 성을 속되다고 보고 독신이나 동정 생활을 결혼 생활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생 각, 현세 삶은 귀양살이에 불과하기에 내세만을 본향으로 여겨 그리워하는 생각 등이 바 로 이원론적 경향에 해당한다. 오늘날에도 영혼의 세 가지 원수 곧 삼구(三仇)로, 마귀와 세속과 육신을 들면서 마귀만 아니라 세속과 육신까지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모 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성과 속, 영혼과 육신을 대립 구조로 이해하는 이원론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이원론적 경향에는 세상을 불변적이며 정적으로 이해하는 세계·역사관이 자리 하고 있었다. 현세를 귀양살이로 여기고, 내세의 천국만을 그리워하는 것을 당연시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와 역사의 변화와 발전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고정된 실재로만 여기 는 정서와 무관치 않았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교회는 이런 세계관에서 벗어난다. 바깥세상과 의 단절을 통해 그리스도 제자 공동체의 순수함과 거룩함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지양하 고, 세상과 대화하며 세상과 화해한다. 교회는 단지 세상을 위해 혹은 세상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세상 안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한마디로 전 인류 가족과 함께 있다. 그뿐 아니라 교회는 자신이 하 느님에게서 비롯하는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거룩하지만, 또한 나약한 인간들 로 이뤄진 공동체라는 것도 새롭게 인식한다. 교회는 세상과 분리돼 있지 않다. 오히려 세상 안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한다. 세상 사람들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다. 그래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목헌장 첫 대목에 나오는 저 가슴 뭉클한 메시지를 세상에 선포 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어 사람들 가운데 사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 인 교회도 이제 세상에 파견돼 세상 가운데서 살아간다. 교회는 이제 세상 사람들을 향해 구원의 방주인 교회 안에서 안전하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외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는 세상 안에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자신 안에 숨겨진 보화를 찾으라고, 하느님 모 습대로 창조된 고귀하고 존엄한 인간 모습을 되찾아 함께 기쁨을 누리자고 초대한다. 하 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하신 그 창조 질서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우리가 발을 딛고 사 는 이 삶의 자리를 하느님 보시기에 좋도록 개선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함께 나아 가자고 초대한다.
 
그뿐 아니다. 교회는 또한 세상으로부터도 도움을 얻는다. 공의회는 이렇게 고백한 다. “교회를 역사의 사회적 실재로 또 그 누룩으로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도움이 되듯이, 바로 교회도 인류의 역사와 발전에서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모르지 않는다.…… 교회는 그 공동체 안에서는 물론, 각각의 자기 자녀들 안에서 온갖 계층이나 신분의 사람 들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받고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닫고 있다. 가정, 문화, 경 제, 사회, 정치의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인간 공동체를 향상시키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 님의 계획에 따라 교회 공동체에……적지 않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사목헌장 44항). 이러한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해 달라진 모습이다. 역사는 고정된 실재가 아니 라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하고 발전한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에서 영과 육, 정신과 물질, 성과 속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보시니 참 좋았다”고 할 때까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간다.

II. 교회헌장의 평신도 이해
교회헌장 제4장은 평신도를 다룬다(30~38항). 평신도는 하느님 백성 가운데서 성직자 와 수도자 신분을 제외한 모든 신자를 말한다. 평신도는 교회 안에서 성직자나 수도자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한 하느님 백성으로서 똑같은 품위를 지닌다. 그런데 평신 도에게는 ‘세속적 성격’이라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 그래서 성직에 종사하며 하느님 백성 을 위해 봉사하는 성직자나 참 행복의 정신으로 하느님 나라의 증인이 되는 수도자와는 달리 평신도의 고유한 임무는 “자기 소명에 따라 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 뜻대로 관리 하며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것”(31항)이다.

이를 위해 평신도는 나름대로 사도직을 수행하고 교회 사명에 참여한다. 평신도들은 교계 사도직, 곧 성직자들에게 맡겨진 직무에 좀 더 직접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사도직을 수행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일상생활에서 사제직과 왕직과 예언자직을 수행함으로 써 사도직을 실천한다.  평신도들이 모든 일을, 곧 기도와 사도적 활동과 부부 생활과 가정생활은 물론 일상 노동과 심신의 휴식까지도 성령 안에서 행하고 특히 삶의 괴로움을 꿋꿋이 견뎌낸다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고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34항). 또 믿음과 희망으로 인내하면서 세상의 악을 거슬러 싸우는 생활 의 증거와 말씀 선포를 통해 복음의 증인이 됨으로써 예언자직을 수행한다(35항). 나아가 겸손과 인내로 이웃에게 봉사하고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을 쳐 이김으로써 왕직을 수행한다(36항). 하지만 평신도들은 자신들의 사도직 수행과 관련해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인 목자들이 교회 안에서 결정하는 것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목자들 또한 교회 안에 서 평신도들의 품위와 책임을 인정하고 향상시켜야 한다(37항).

평신도들은 이렇게 저마다 세속에서 그리스도 부활과 생명의 증인이 되고 하느님의 표지가 됨으로써 하느님 나라 건설에 참여한다. 헌장은 평신도에 관한 부분을 마치면서 평신도를 ‘세상의 혼’이라고 부른다. “영혼이 육신 안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세 상 안에서 그 혼이 되어야 한다”(38항).

III. 평신도교령의 평신도 사도직

1. 평신도교령의 특징과 구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와 평신도 그리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평신도 사도직의 본질과 성격, 다양성과 기본 원칙, 효과적 실천을 위한 사목 지침 등을 제시하는 문헌을 발표했다. 그것이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이하 평신도교령) 「사도직 활동」(Apostolicam Actuositatem)이다. 공의회의 마지막 제4회기 때인 1965년 11월 18일에 공포된 교령은 이보다 1년 앞서 공 포된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이하 교회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그 가운데서도 ‘평신도’에 관한 제4장을 교리적 기초로 하고 있다. 또 평신도교령이 제대로 다 취급하지 못한 사도직 부분은 공의회 폐회 전날인 1965년 12월 7일에 공포된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이하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에서 다루고 있다. 따라서 평 신도교령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평신도교령은 △서론(1항) △평신도 사도직 소명(2~4항) △평신도 사도직의 목표 (5~8항) △사도직의 여러 분야(9~14항) △사도직의 다양한 형태(15~22항) △사도직에서 준 수해야 할 질서(23~27항) △사도직을 위한 양성(28~32항)과 권고(33항) 등 전체 33항으로 이뤄져 있다.

2. 평신도의 사도직 소명 : 그 토대와 영성(2~4항)

1) 평신도 사도직의 본령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평신도 사도직’이란 특별한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일 부 계층의 평신도에게 한정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해됐다. 그런데 공의회는 평신도, 곧 교회를 이루는 하느님 백성 가운데 성직자와 수도자 신분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모든 이들도 다 사도직의 소명을 받고 있음을 천명한다.

① 사도직이란 무엇인가? 교령은 ‘교회 사명, 혹은 교회 설립 목적을 위한 신비체의 모든 활동’(2항)을 사도직이라고 규정한다. 물론 신비체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가리 킨다. 평신도 역시 신비체인 교회의 한 지체로서 교회 사명을 위한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 이다. 이로부터 평신도 사도직이 무엇인지 규정할 수 있다. 평신도 사도직은 교회 사명 수행을 위한 평신도의 모든 활동이다.

② 교회 사명은 무엇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이에 대한 답변은 한마디로 ‘영혼을 구하는 일’이었다. 이와 관련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널리 사용되던 말 가 운데 ‘삼구’(三仇)가 있었다. 삼구란 영혼의 구원을 방해하는, 그래서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세 가지 원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세 가지 원수는 육신과 세속과 마귀였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삼구란 용어는 사실상 폐기됐다. 멀리하고 경계해야 할 원수 는 마귀뿐이다. 육신과 세속은 멀리해야 할 원수가 아니라 잘 관리하고 개선(改善)함으로 써 구원의 여정으로 함께 이끌어야 할 대상이다.

실제로 교령은 교회 사명과 관련해 이렇게 밝힌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총을 사람 들에게 가져다줄 뿐 아니라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그 질서를 완성하는 것이 다”(5항).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총을 전해주어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뿐 아니라 “현세 질서”를 복음 정신으로 개선하고 완성하는 일까지도 교회 사명에 속한다. 여기서 현세 질서란 바로 세속 사회의 질서, 세속의 삶을 가리킨다. 따라서 세속은 이 전처럼 결코 몰아내고 경계해야 할 원수가 아니다. 평신도교령은 오히려 세속이 평신도의 고유한 삶의 자리임을 강조한다. 여기에 또한 평신도 사도직의 특성이 있다. “세상 한 가운데서 세속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신도의 신분이므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인 정신으로 불타올라 마치 누룩처럼 세상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하느님께 부름 받았 다”(2항).

이것이 평신도 사도직의 본령이다. 물론 평신도 역시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지체이기 에 자기 역량에 따라 교회 발전과 성장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평신도의 고유한 자리는 세속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복음화와 인간 성화에 힘쓰면서 현 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그 질서를 완성하도록 노력하는”(2항) 것이 바로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2) 평신도 사도직의 토대
평신도 사도직은 근원적으로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주님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그 리고 같은 주님이신 성령에게서 나온다. 그 근거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다. 하느님의 아 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에게서 파견돼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지고한 사랑을 드러내신 것처럼, 세례성사로 그리스도와 결합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자신의 삶의 자리로 파견된다. 또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의 힘으로 튼튼해진 평신도들은 성령에 게서 받은 은총의 선물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행복과 교회의 건설을 위해 이 은사를 사용할 권리와 의무”(3항)를 지닌다.

하지만 이 은사의 사용에 있어서 특별히 유념해야 할 일이 있다. “성령의 자유로운 인 도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과 특히 자기 목자들과 일치를 이루며 사용해야 한다” (3항). 교령은 “이러한 은사의 순수성과 올바른 사용에 대한 판단은 목자들이 할 일”이라 며 목자들의 판단에 따를 것을 요청한다. 그것은 “성령의 불을 꺼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 라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보존하려는 것”(3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나 혹은 밖에서 사도직 수행과 관련해 함께하는 형제 평신도들과 는 물론 지도신부와도 마찰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성령의 불을 끄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서로 마음을 열고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무엇이 선하 고 좋은 것인지를 헤아려야 한다. 그래도 부합하는 결론을 내지 못할 때는 목자들의 판단 을 따르는 것이 도리다. 목자들 역시 자신들이 내리는 판단이나 결정이 개인적 감정이나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것은 아닌지, 신자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불을 꺼버리는 것은 아닌지 깊이 유념해야 한다.

3) 평신도 사도직의 영성
영성이란 간단히 ‘삶에서 풍기는 신앙의 향기’라고 할 수 있다. 관건이 되는 것은 신앙 과 삶의 일치다. 평신도는 “일상생활의 현세 임무를 올바로 이행하면서도 그리스도와 이 루는 일치와 자기 삶을 분리시키지 말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기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이 일치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4항).

신앙과 삶의 일치와 관련, 두 가지가 강조된다. 하나는 일상생활의 현세 임무를 올바 로 이행하는 것이다. 평신도는 “영성 생활을 이유로 가정을 돌보지 않거나 다른 세속 일 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4항). 그뿐 아니라 “직업의 전문 지식,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 임감, 그리고 사회생활과 관련된 덕 곧 정직, 정의, 성실, 친절, 용기를 존중하여야 하며” 이런 덕행들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덕행이 없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생활이 이루어질 수 없다”(4항). 다른 하나는 “모든 사도직의 원천이시며 기원이신”(4항)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일 이다.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성사, 특히 사랑의 성사인 성체성사를 통해 강화되기에, 평신 도들은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이 일치를 강화하고 이 일치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

이렇게 평신도들이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가운데 사도직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믿음 과 바람과 사랑의 끊임없는 실천”(4항)이 필요하다. “성령께서 교회의 모든 지체에게 불 어넣어 주시는”(3항) 믿음과 바람과 사랑의 덕을 통해 평신도들은 특히 이 시대 사람들에 게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 따라서 평신도 사도직을 제대로 수행 하려면 늘 성령께 마음을 열어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특별히 믿 음과 희망과 사랑의 대신덕(對神德)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자주 성찰하고 점검하는 자세 가 요청된다.

3. 평신도 사도직의 목표(5~8항)

평신도 사도직의 목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다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한 가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현세 질서를 개선하고 완성하는 일을 교회 사명에 포함시 킨 것이다. “교회 사명도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총을 사람들에게 가져다 줄 뿐 아니라 현 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그 질서를 완성하는 것이다”(5항).

1) 평신도 사도직의 두 가지 목표
평신도 사도직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복음화와 성화(6항)이고 다른 하나는 현세 질서의 그리스도교화(7항)다. 복음화와 성화는 전통적으로 말씀 선포와 성사 집전 을 고유한 직무로 하는 성직자들의 몫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교령은 평신도들이 “진 리의 협력자”(3요한 8)가 돼야 한다면서 평신도들도 복음화와 성화를 위한 사도직을 수행 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평신도는 어떻게 복음화와 성화를 위한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교 생 활의 증거와 초자연적 정신으로 실천하는 선행”(6항)을 통해서다. 내가 그리스도 신자임 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특별히 하느님의 이름으로 선행을 실천할 때 그것은 믿지 않는 이 들을 “하느님과 신앙으로 이끄는 힘”(6항)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의 증거만 으로는 부족하다. 기회가 있는 대로 말로써도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 하는 사랑 이야기는 힘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이나 행 동으로 전하는 복음이 힘이 있으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에 젖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은 요란한 구호에 불과할 것이고 우리가 드러 내는 행동은 가식과 위선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말과 행동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빛을 세 상에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그 빛을 가려 버린다.  평신도 사도직의 또 한 가지 목표인 현세 질서의 그리스도교화는 사람이 몸담고 살아 가고 있는 생활환경과 현세 질서 곧 세상을 대상으로 한다.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뜻은 사람들이 마음을 합하여 현세 질서를 개선하고 끊임없이 완성해 나아가는 것”(7항)이기 때 문이다.

현세 질서의 개선과 완성을 창조 질서의 보전과 연관된다. 현세 질서를 이루는 모든 것 곧 인간 삶의 행복이나 가정의 선익, 문화와 경제, 국가 제도, 국가 관계 등은 저마다 하느님께 받은 고유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고유 가치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 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하신 창조 질서를 반영한다. 그런데 ‘보시니 참 좋았다’ 하신 창조 질서가 인간의 악습과 잘못으로 심각하게 훼손됐다. 이렇게 훼손된 “현세 질 서를 바로 세우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힘껏 도와주는 것이 온 교회의 임무”(7항)이지만 특별히 세속에 몸담고 있는 평신도에게 고유한 임무다. 평신도 는 현세 질서의 개선을 고유 임무로 받아들이고……복음의 빛과 교회 정신의 인도를 받 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확고하게 바로 행동하여야 한다”(7항).

2) 그리스도교 양심의 지배: 신앙과 삶의 일치
복음화와 성화, 그리고 현세 질서의 개선과 완성이라는 평신도 사도직의 두 가지 목 표를 수행함에 있어서 평신도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신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인 평신도는 두 질서―교회의 영적 질서와 세상의 현세 질서―안에서 지속적으로 한 그리 스도교 양심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5항). 그런데 많은 평신도들이 이 점에서 어려움에 직면한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똑같 이 사회에서 생활하다가는 쪽박 차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평 신도는 자신들의 고유 임무인 현세 질서의 개선을 위해 더 더욱 노력해야 한다. “시민으 로서 전문 지식과 고유한 책임감을 지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며 모든 일에서 하 느님의 정의를 찾아야 한다”(7항). 현세 질서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면 될수록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질서와 현세 질서 안에서 동일한 그리스도교적 양심에 따 라 행동하기도 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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