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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순례자의 노래, 신심과 시심
첨부 작성일 2017-11-08 조회 869

순례자의 노래, 신심과 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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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프란치스코 전 한국일보 주필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여름호 9쪽 참조) 설립 50주년을 지내며 가톨릭 언론인으로 살다간 평신도 정달영 프란치스코(1939~2006)를 그리는 이들이 많았다. 이 글은 『정달영의 기자론 기사론』에 실린 것으로 고인의 아들 정민 씨가 제공하였다.

몇 개의 상패와 감사패 따위가 남는다. 한 인 간이 질척거리며 살아온 흔적, 아니면 망명정부 의 훈장 같은 것일는지 모른다. 정년퇴직자, 또는 은퇴자의 거실 풍경은 그들 상패와 감사패가 번 들거릴수록 오히려 쓸쓸하다. 내게도 그런 기억의 흔적들이 꽤 있다. 자랑 스러운 것보다는 감추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 보 인다. 의례적인 것, 돌아가며 받는 것, 거기 적힌 상찬의 말이 과분하고 부담되는 것이 그 대부분 이다. 그렇더라도 어쩌랴. 그것이 ‘소풍 가듯’ 한 번 다녀갈 뿐인 이승에서, 내가 걸어간 자취, 그 한 자락의 찌꺼기인 것을 나는 안다. 싫더라도 그것 들을 감출 재주는 없는 이치다

감사패에 남은 인생의 흔적들
키가 한 뼘보다 약간 큰, 작은 ‘패’ 하나가 있 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감사패는 그래서 늘 진열대의 맨 앞자리에 놓인다. 번쩍거리지도 않 아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것만은 그래도 남이 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굴뚝같은 모양이다. 감사패에 적힌 문안을 보면, 받는 이는 ‘한국일보사 문화부장 정○○’이고 주는 이는 ‘천주 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김수환’이다. 날짜는 ‘1980년 11월 23일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되어 있 다. 5월에 광주 민주화운동이 있었던 바로 그 해 다. 문안 내용은 이러했다.

“귀하는 1980년 가을 한국일보 문화면에 ‘한국 의 聖地’를 기획 연재하였는 바, 그 내용이 한국천 주교 전래의 역사를 빛냈으며 이 땅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에 삼가 귀하께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패의 머리에는 김 추기경의 주교문장(主敎紋 章)이, 끝에는 서울대교구장 인(印)이 찍혔다. 종 교기관에서 내는 신문도 아닌 일반 종합지가 천 주교 전래사(傳來史)의 자취를 연재한 데 대해 교 회측이 특별한 반응과 감사를 표시한 것이다. 교회 수장의 이름으로 된 이런 종류의 감사패 가 신문사의 담당부장과 취재기자에게 전달된 것 은 우리 교회로서는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싶을 만큼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 추기경 집무실에서 나는 이 연재물의 취재기자인 이충우(李忠雨) 차장과 함께 패를 전달받았다. 당시 서울대교구 홍 보국장 오지영 신부가 곁에서 거들었다.

한 연재물이 가져온 대전환
이충우 기자. 오늘 나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중이다. ‘한국의 성지’라는 연재물에서 비 롯된 한 기자의 존재론적 대전환, 그로써 초래된 개인의 변화가 이야기의 줄거리다. 오랜 사회부 근무에서 문화부장으로 옮겨갔을 때, 그곳엔 차장이 둘 있었다. 선임 차장은 장명 수 기자였고, 다른 하나가 종교 문화재 등을 담당 하는 이충우 기자였다. 두 차장 모두 신앙을 가진 이는 아니었다.

천주교의 한국 전래와 관련된 ‘성지’들을 찾아 서 순교의 피로 얼룩진 200년 교회사를 짚어보는 시리즈를 기획한 것은 특정 종교나 종파를 떠나 서도 크게 의미 있는 일로 보였다. 서구문화의 이 입(移入)을 둘러싼 격렬한 갈등과 충돌, 그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 곳곳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천주교회는 몇 가지 연대기적 매 듭을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하는 때였기도 하다. 이다. 우선,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그리스 도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교회를 ‘창설’한 해로부 터 200주년 되는 해가 1984년으로 다가와 있었고, 그에 앞서 1981년은 교황청이 조선교구를 정식으 로 설정(1831년)한 150주년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 한 그 무렵은 유신 폭압체제를 통해 내연(內燃) 또 는 성숙한 저항의 영성(靈性)이 폭발적인 신자 증 가로 나타나던 때였다.

뒷날 돌이켜볼 때,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행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참 석한 가운데 한국 순교성인 103위 시성식(諡聖式) 으로 치러졌고, 그 5년 뒤인 1989년에도 제44차 세계성체대회가 역시 같은 여의도 광장에서 열려
교황의 두 번째 방한이라는 경사를 만끽했으므 로, 1980년대는 한국 가톨릭으로서는 ‘영광의 연 대’가 틀림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연이지만 그 머리맡 언저리에 한 신문의 문화면 연재물인 ‘한 국의 성지’도 있었던 셈이다.

이충우의 ‘한국의 성지’
‘한국의 성지’는 천진암 강학회에서 시작한다. 이 땅의 천주교 기원사를 크게 끌어올린, 18세기 후반 젊은 학자들의 앵자산 주어사 모임에 주목 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그 자취를 찾아 개발을 시 작한, 한 사제(변기영 신부)의 열정을 소개하는 것 으로 첫 장을 연 것이다. 변 신부는 그가 체득한 ‘교회 창설’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달변으 로 쏟아내 이충우 기자를 교회사의 길 동반자로 어렵지 않게 ‘입문’시켰던 것 같다. 이 차장은 금 세 학구적 자세로 파고들었다.

기자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반짝이는 재기로 일찍 두각을 보이는, 그러나 끈기는 못 미치는 ‘숨 짧은’ 형이 있는가 하면, 친화력을 무기로 취재원 에 밀착하고 주어진 과제를 끈질기게 천착하는 ‘숨 긴’ 형이 있다. 심층 취재, 또는 탐사보도가 요 청되는 요즘 추세에 걸맞은 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차장은 『주간한국』에 배치되었을 때 국립 서울 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을 장기 연재로 파헤쳐 이미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 ‘저술가’였다.

그의 기자로서의 장점은 취재원과의 친화력이 다. 취재는 기사자료를 쥐고 있는 취재원으로 하 여금 그 자료를 털어놓도록 유도하는 행위이기 쉽다. 부담 주지 않고 접근하여 말을 하도록 이끌 어 낸다. 신뢰감, 유머 있는 언행, 부지런함 등은 그 덕목이다.

처음 교회사라는 딱딱한 현장, 익숙하지 않은 교리 지식 등과 씨름하면서 ‘성지’를 순례하던 그 는 순교자들의 개인사를 추체험(追體驗)하는 과정 에서 깊은 감동을 받는 눈치였다. 데스크인 내가 보기에 그가 교회의 역사, 순교의 현장, 죽음을 무릅쓴 신앙에 대해 함몰하다시피 빠져들어간 속 도는 인상적이었다. 그는 초기 강학회 무렵의 학 자들과 신앙 선조들의 인맥을 보학자(譜學者) 이 상으로 꿰찼고, 그들의 거점과 퍼져나간 지역에 대해 손바닥 보듯 소상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변화는 그들 선조가 지 녔던 신앙심을 그가 스스로 받아들이고자 결심한 것이다. 연재가 끝날 무렵에 그는 그가 살던 동네 성당의 김창석 신부에게서 영세한다. 세례명은 안드레아였다. 부인과 자녀 모두가 함께였음은 물론이다. 신앙을 얻은 것은 그가 기자로서, 또는 ‘한국의 성지’ 연재로 얻은 저널리즘에서의 성취 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근본적인, 존재론적인 성 취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정말 귀중한 가치에 눈 을 뜬 것이다.

진실로 중요한 것을 안 사람
며칠 전에 그가 시집 한 권을 들고 찾아왔다. 『순례자의 노래』(2002, 양업교회사연구소)로 제목 붙은 장편 서사시다. “시로 쓴 조선 순교의 역사 – 천주 신앙인들 삶과 사랑의 송가”라는 설명이 있다. 몇 권의 공저, 편저를 포함하면 10번째 저술 이다. 그는 어느새 한국 교회사의 전문가였고, 부 럽게도 신심(信心)에 시심(詩心)을 더한, 지금은 어 엿한 신앙시인이다.

신문 연재물 ‘한국의 성지’는 1981년 출간(분도 출판사) 이후, 제4판부터 『다시 찾는 한국의 성지』 로 개제되어 판을 거듭하는 ‘숨이 긴’ 저서다. 그 후 『천주학이 무어길래』(1985, 가톨릭출판사), 첫 시 집 『꽃이 되고 빛이 되어』(1995, 바오로 딸), 『신앙 유산답사기』(1996, 사람과 사람), 『신앙유산답사기 2』(1999, 사람과 사람)를 잇달아 냈다. 그는 지금 신 앙유산연구회장이고 가톨릭문인회 회원이다. 한국일보에서 24년, 평화방송 보도국장과 평 화신문 편집국장으로 8년을 일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를 아는 것이다. 알고 행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충우 기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고, 그를 행한 사람이다. 행운아다. 세속적인 성 취, 저널리스트로서의 이름은 그 행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지 모른다. 『순례자의 노래』에 실린 그의 시편 ‘기도 1’을 듣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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