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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특강] 교황 프란치스코와 소공동체 2
첨부 작성일 2017-11-08 조회 802

교황 프란치스코와  소공동체 2

이병호 빈첸시오 원로사목자, 전 전주교구장 주교

이 글은 4월 7~8일 전주교구 천호성지 피정의 집에서 연 2017년 한국평협 춘계 상임위원회에서 ‘한국 교회와 평신도의 역할’을 주제로 한 이병호 주교의 특강 내용으로, 지난 호에 이어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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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마음 자세와 구체적 체험을 바탕으 로 사제가 크게 부족한 남미의 사목자들 은 하느님께서 평신도들에게 주신 놀라운 능력을 깨닫게 되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제의 수효 와 관계없이도, 교회의 복음화 사명 수행을 위해 서 그들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절실 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남미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에서 “하느님 백성의 대다 수”(102항)인 평신도를 교회의 복음화 사명 수행 의 능동적 주체로 동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교회의 전통적 구조, 특히 본당 사목구를 소공동체(28, 29항) 기반 의 조직으로 개편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본당 사 목구를 “공동체들의 공동체”(28항)로 만듦으로써, “길을 가다가 목마른 이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지 성소, 지속적 선교 활동의 중심지”(같은 곳)가 되 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본당 사목구는 사람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살아 있는 친교와 참여의 장소가 되고 온전히 선교를 지향하여야 한다”(28항)는 것 입니다. 그 안에서 사목자는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사도 4,32 참조)의 이상을 따라, 언제나 자기 교구의 교회 안에서 선교적 친교를 증진해야 한 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양떼를 지키는 목자가 그렇게 하듯이, 사목자가 상황에 따라 위치를 바 꿔가며 백성들 ‘앞에’, ‘가운데에’ 그리고 ‘뒤에’서 함께 걸을 것을 권고하십니다. 이렇게 사목자와 신자들은 서로 보완하고 밀어주면서 교회가 받 은 복음선포 사명을 함께 수행하게 된다는 것입 니다.

이렇게 되면 사목자와 교우들이 함께 큰 보람 과 기쁨을 느낄 것이며, 짐은 가벼워지고 멍에는 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 의 목자 모세에게 충고한 장인 이드로의 지혜가 오늘에 와서도 목자와 양떼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드로는 모세가 하루 종일 백성 들에게 파묻혀 일을 처리하고, 백성들은 백성들 대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노라고 하루 종일 기다 리며 지쳐 있는 모습을 보고 사위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야 되겠는가? 자네뿐 아니라 자 네가 거느린 이 백성도 아주 지쳐 버리고 말겠네. 이렇게 힘겨운 일을 어떻게 혼자서 해내겠 는가? 이제 내가 한 마디 충고할 터이니 들어 보 게. 아무쪼록 하느님께서 자네를 도와주시기 바 라네. 자네는 백성의 대변인이 되어 그들이 제시 하는 소송을 하느님 앞에 내어 놓게. 그리고 그 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 주어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게.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참되게 살며 욕심이 없고 유능한 사 람을 찾아내어 백성을 다스리게 세워 주는 것이 좋겠네. 천 명을 거느릴 사람, 백 명을 거느릴 사 람, 오십 명을 거느릴 사람, 열 명을 거느릴 사람 을 세우게. 언제나 그들을 시켜 백성을 다스리게 하여 큰 사건만 자네에게 가져오도록 하게. 작 은 사건은 모두 그들에게 맡겨 두게. 그들과 짐 을 나누어 자네 짐을 덜도록 하게. 자네가 이와 같이 일을 처리한다면, 이것이 곧 하느님의 뜻에 도 부합되고 자네 일도 다 감당할 수 있어 이 백 성이 모두 만족해서 집으로 돌아 갈 것일세”(탈출 18,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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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림자의 시 대’였던 구약에 백성을 인도할 영도자목자의 일을 ‘돕기 위해’ 찾아낸 방안이었고, ‘실 체의 시대’인 그리스도의 때에 와서는,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받고 다른 누구를 돕는 협조자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영도자-왕-목자 와 예언자가 되어” 떠나는 것입니다. 다른 누구의 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 속 깊이에서 울려나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 음에서 스스로 우러나 움직이면 돌아온 탕자처럼 참된 자유인이 되어 살 것입니다. 그와는 달리 큰 아들처럼, 몸은 아버지의 집에 그대로 있어도 마 음은 아버지에게서 떠나 내면화되지 않은 명령을 겉으로만 따르면, 그 자신의 표현대로 “종이나 다름없는” 삶을 끝까지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주님을 만나고 그 말씀 이 주는 기쁨을 체험한 사람으로서 확신을 가지 고 자유롭게 떠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의 사도적 권고 첫마디가 강조하고 있는 그대로 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복음의 기쁨이 자신의 마 음과 삶을 가득 채워주는 체험을 함으로써, 죄와 우울증, 가슴속 깊이에 사무치던 허무감과 외로 움에서 해방된 사람으로서(복음의 기쁨, 1항 참조), 아직도 그런 어둠과 절망 속에 헤매고 있는 사람 들을 향해 확신을 가지고 떠나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 10장에 그런 장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뒤 주께서 달리 일흔 두 제자를 뽑아 앞 으로 찾아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미리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추수할 것 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 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떠나라.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떼 가 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이렇게 시작되는 제 자들의 이야기는 “일흔 두 제자가 기쁨에 넘쳐 돌아와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 까지도 복종시켰습니다’ ” 하는 활동보고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과 반응이 소개됩니다. “나는 사탄이 하늘에 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내가 너희 에게 뱀이나 전갈을 짓밟는 능력과 원수의 모든 힘을 꺾는 권세를 주었으니 이 세상에서 너희를 해칠 자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악령들이 복종한 다고 기뻐하기보다도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 된 것을 기뻐하여라.” 그리고 성서는 “바로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들” 과는 대조되고 인간적 눈으로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제자들을 통해서 이룩하신 놀라운 일들 에 관해 하느님을 찬양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 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 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 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 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 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림자의 시대가 아닌 실 체의 시대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며 축 복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너희가 지금 보는 것 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사실 많은 예언자들과 제 왕들도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보 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했으나 듣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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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날 참으로 새로운 시대에 살 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을 앞세운 현대 문 명은 불과 한 세대 전까지도 상상할 수 없었을 만 큼 빠르고 깊게 인간의 삶과 생각을 바꾸고 있습 니다. 과학이 최근 60년 동안 이룬 발전은 그 전 6천 년 동안 이룬 것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 그리 고 이런 자연과학의 발전에는 가속이 붙어, 우리 가 살고 있는 21세기에 이룰 발전은 인류가 지난 2만 년 동안 이루어낸 것보다 더 클 것이라고 합 니다.

현기증 나는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기술과 그 것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실제로 사람들의 정신 에 현기증을 일으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 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 전체의 분위기는 사람의 인격보다 돈을 높이 올 려놓고, 자연과 재화를 함께 나누기보다 혼자만 차지하려드는 새로운 우상숭배(복음의 기쁨, 55항)

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을 잃고, 그 모조품이며 돈으로 살 수 있는 ‘쾌락’에 속아 불나방처럼 멸망의 길로 치닫 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참다운 기쁨을 주는 삶 의 길, 복음을 들고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렇 게 해서 “내가 다시 너희와 만나게 될 때에는 너 희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이며 그 기쁨은 아무 도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요한 16,22) 하신 바로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 일은 몇몇 사람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 참 된 기쁨을 찾아낸 그리스도인 모두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 마을과 동네, 자기가 사는 지역에 근거지를 두어,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마리아 여인처럼,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무 부담 없이 들러서, 다시는 목마르 지 않게 하는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소 공동체는 동네 한가운데에, 아파트의 한 집에 마 련되어 “영원히 살게 하는 물”(요한 4,14 참조)을 주 는 우물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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