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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필] 그분의 뜻
첨부 작성일 2017-11-08 조회 891

그분의 뜻

류은경 보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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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이 닥쳤을 때 주문처럼 외는 말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럼에도 견디기 힘들면 이 경구를 떠올린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그 ‘이유’와 ‘때’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결정됨 을 믿고 있다. 그분의 뜻은 우리가 결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심오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 만 이런 믿음이 처음부터 하느님께로 향했던 것 은 아니다

천주교에 입교하기 전까지 나는 무교였다. 특 별히 믿는 신앙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관심 이 없었던 건 아니다. 돌발적인 사고가 발생하거 나 심적 혼란을 느끼면 부처님을 찾거나 점집을 방문했다. 뵌 적도 없는 조상님과 돌아가신 아버 지에게 나를 좀 도와달라고 매달리기도 했었다. 그랬던 내가 『불멸』을 집필하게 되면서 천주교에 매료되었고, 하느님을 믿게 됐다. 『불멸』은 나의 첫 창작소설로, 조선 초대 천 주교회의 박해 역사를 다루고 있다. 시놉시스 구 상을 거쳐 3년 넘게 작업하여 초반부에 해당하 는 1, 2권 원고를 탈고했다. 내가 세례를 받던 해, 2014년 봄이었다.

그런데 출간 즈음하여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윤지충 바오로와 그의 동료 123분이 복자로 시성 된다는 소식이었다.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하여 20여 분의 순교자들이 소설 『불멸』에 등장한다.
천주교회의 기틀을 마련하신 그분들이 공로를 정 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는데 드디 어 시복이 된다니 뛸 듯이 기뻤다. 하느님께서 나 를 도와주고 계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 홍보에 좋겠구나.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빨리 후속편 원고를 써서 판매 호재를 놓치지 말 아야지.’

내심 이런 계산도 했다. 작가도 생활인이고, 먹고살아야 하다 보니 셈속이 발동했던 것이다. 뭔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책이 출간되고 나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 이 발생했다. 문제는 수술 후 부작용이었다. 1년 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아팠다. 교 황님께서 방한하셨을 때도 시복미사 현장에 참석 하기는커녕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보며 기도로 동 참했다. 이렇게 아플 바에야 그냥 죽었으면 좋겠 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너무나 끔찍했던 시 간들이었다. 독한 약과 통증에 몸부림치며 ‘주님!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원망을 많이 했 었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주님이 더 잘 아시면서, 주님 일을 하는 나를 왜 멈춰 서게 하셨는지 그분의 뜻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이들이 그랬듯, 나 역시 꽃다운 아이들과 소 중한 생명들이 무참하게 스러지는 모습을 생중계 로 지켜보면서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 주님이 계신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끈을 놓을 수 없어 아픈 와중에도 매일 묵주기도를 올리며 생존자를 구해달라고 하 느님께 빌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절망적인 것들뿐이었 다. 희생자들을 하느님께서 품에 안아달라고 기 도했지만, 이미 그분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내 안 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인재로 인해 벌어진 참사임 을 알면서도 궁극적인 책임을 그분께로 돌렸다.

믿음이 크게 훼손된 상태로 순교자들의 이야 기를 쓰자니 도무지 몰입이 되지 않았다. 자연히 작업 속도가 느려졌다. 어떡하든 글을 써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자면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달 아 터졌다. 가족에게 크나큰 시련이 닥쳤고, 겨우 수습하고 나면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왜 자꾸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하느님을 붙잡고 이유를 따져 묻고 싶었다. ‘하느님이 내가 이 소설을 완성 하길 원치 않으시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작품을 포기할 순 없었다. 이러저러 한 일들을 겪으며 중단되었던 작업을 다시 시작 할 때마다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읽고 이어쓰기 를 반복했다. 필력에 한계를 느끼거나 또다시 절 망에 빠지면 하느님께 이겨낼 힘을 달라고 부탁 을 드렸다. 그러나 이전처럼 기도에 간절함이 배 어들지 않았다. 하느님이 계신 건 알겠는데 정작 나서주셔야 할 때 나서주지 않는 분을 붙잡고 기 도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 다. 믿음이 강한 분들은 사랑의 하느님, 정의의 하느님이라는 말씀들을 자주 하시는데 도무지 피 부로 와 닿질 않았다.

그렇게 그분에게서 마음이 멀어져갈 때, 국정 농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분노한 많은 국민들 이 촛불을 들었고, 나 역시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날의 광장에서 수백의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밝혔다. 그 역사의 현장에 동참하면서 깨 달았다. ‘그동안 하느님께서 때를 기다리셨구나. 그분의 정의를 실현하기에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여기시고 응답을 미루셨구나.’ 그 큰 뜻 을 헤아리지 못한 나는 왜 당장 불의를 바로잡지 않으시냐고 따져 물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분을 의심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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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음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스스로를 반성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중이라고 자부하면 서 세속적인 계산에 연연했던 점도 후회했다. 그 런 나를 질책하고 단련시키고자 하느님께서 그간 의 시련을 겪게 하신 건지도 몰랐다. ‘하느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 고, 때가 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모든 일 에 겸손하고 인내하며 맡은 소임에 충실해야지. 하느님께 맡겨놓은 것도 없으면서 빚쟁이처럼 채 근하는 못된 버릇도 기필코 고쳐야겠다.’ 다짐 또 다짐하며 오늘도 나는 원고 앞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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