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보기서울평협 바로가기
> 계간 평신도 > 웹진
계간 평신도
  • 2017년 겨울 / 계간 58호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들의 마음으로 느끼며
    PDF 다운로드
제목 [만남]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들의 마음으로 느끼며
첨부 작성일 2018-04-25 조회 953

평신도가 만난 평신도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들의 마음으로 느끼며

 

한귀석 바오로 천주교 전주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장

대담·정리 나권일 편집위원

 

제목 없음.png

 

전주교구 평신도들에게 2017년은 여러모로 특별한 해였다. 1937년 4월 13일 자치교구로 설정된 전주교구가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였기에 행사도 많았고, 27년 만에 새 교구장을 모시면서 일치를 이뤄가 는 숨가쁜 여정이었다. 크고 작은 행사들을 물 흐르듯이 매끄럽고 알차게 치러낸 데는 평생을 하느님께 순종하며 살아온 한귀석 바오로(67) 회장의 노고와 경륜이 있었다. 전주교구 평단협의 활동에 대해 말씀 해주시고, 자료협조를 해주신 한귀석 회장과 유광용 사무국장께 감사드린다.

 

 

지난 11월 27일 저물녘,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듣기 좋은 초겨울이었다. 남녀노소가 한복을 입은 관광객으로 떠들썩한 전주 한옥마을과 달리 건너편 언덕에 소담하게 자리 잡은 전주교구청은 고즈넉해서 조용히 산책하고 묵상하기에 좋았다. 교구청 2층 전주 평단협 사무실에서 한귀석 바오로 회장을 만났다. 해외 성지순례를 막 다녀오신 뒤라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 텐데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

 

 

얼마 전에 성지순례를 다녀오셨지요?

“터키와 그리스 등 바오로 사도께서 전도여행한 길을 따라 순례했습니다. 전주교구에서 참여한 27명을 비롯해 서울대교구와 수원교구에서 오신 분 등 모두 33명의 형제자매들이 코린토와 테살로니카 등 성서 속의 공동체가 있었던 곳을 순례하며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어 요. 10박 11일의 짧지 않은 일정을 성서학자이신 정태현 갈리스토 신부님께서 이끌어주셨습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성서를 봉독하고 구약과 신약을 연결해 가며 성서학적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시니 더 충실하고 깊이 있는 순례길이 되었지요. 정 갈리스토 신부님은 우리나라에 ‘거룩한 독서’를 보급하신 분인데, 광주가톨릭대 교수신부를 하시다가 제 본당인 전주 효자동으로 오시면서 성서에 더욱 맛을 들이게 됐습니다. 정 신부님은 지금은 ‘한님성서연구소’에 계시는데, 평신도 성서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적극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사실, 정 갈리스토 신부님과 저는 인연이 깊어요. 1960년대에 전주에서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성당에서 복사를 같이 섰거든요.(웃음) 그때는 전주에 전주 중앙 성당과 전동 성당 등 2개 성당만 있을 때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기 전이라서 신부님께서 라틴어로 미사를 했어요. 그러고 보니 벌써 50여 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네요.”

 

1.png

▲ ‌ 한귀석 바오로 회장. 모자를 벗고 사진 촬영에 응한 한 회장의 얼굴은 평화롭고 인자한 큰바위 얼굴의 모습이었다. 열성적으로 전주평단협의 활동에 대해 말하는 한귀석 회장. 벽면에 붙어 있는 일정표가 빼곡하다.

 

여행지에 가면 성당부터 먼저 찾는 신앙인

한귀석 회장은 모태 신앙이다. 전주교구가 운영하 는 4개 중고등학교(해성중고와 성심여중고)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해성고등학교에서는 교감과 교장으로 헌신했고, 성심여고 교장을 끝으로 3년 전에 정년퇴직했다. 학교에서는 물리를 가르쳤다. 재직하는 동안 바쁜 틈에도 방학 때 잠깐씩 짬을 내어 아내(오윤숙 헬레나)와 함께 배낭여행을 했다. 호주·뉴질랜드·동유럽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여행 중에도 날마다 성당을 찾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한 회장은 외국의 호텔이나 숙소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 지도 앱으로 성당부터 찾았다. 그래서 11박 12일 중 9일을 매일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기도 했단다. 여행을 다닐 때도 성지를 중심으로 다니다 보니 신앙이 더 깊어졌다 고 했다. 

 

신앙은 어떻게 갖게 되신 건가요?

“제가 어릴 적 어머니께 말씀 듣기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때부터 믿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제가 3대, 제 아들이 4대, 손자들까지 하면 5대째 믿는 집안이 됐지요. 제가 1남 2녀를 두었는데, 모두 유아세례를 받게 했어요. 감사한 것은 아들과 두 딸이 모두 출가했는데, 사돈 되시는 분들도 모두 교우 집안이라는 것입니다. 우연하게 그렇게 됐다기보다는 아이들도 교우와 만나기 위해 노력을 했으니 그렇게 된 것이죠. 자녀들이 어린 손주들 을 데리고 주일마다 꼬박꼬박 성당에 가는 게 기쁘고 감사합니다.

 

제가 아이들 키울 때 생각하면 잊지 못하는 게 있어요.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복사를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를 이어서 복사를 하게 됐으니 참 기쁘다. 잘해라. 새벽에 네 스스로 일어나서 성당에 가거라.’고 했어요. 그때는 저도 본당 청소년분과장으로 일할 때라 바빴거든요.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먼저 일어 나서 아들이 자는 방의 방문을 한 번 두드려주고 일어나라고 말하고는 성당에 갔는데, 미사 끝날 때까지 아들이 안 보이는 겁니다.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나를 깨워서 안 데리고 갔다.’며 울고불고 눈이 퉁퉁 부었어요.(웃음) 그런 일을 겪은 뒤에는 제가 일어나라고 안 해도 아들이 알아서 성당을 가더라고요. 한 번 뼈아프게 겪은 뒤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겁니다. 아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복사 당번이 돌아오는데, 그때부터는 방문 노크만 해주면 알아서 잘 일어나곤 했어요. 그 뒤부터는 주일학교 갔다 왔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아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그렇게 컸어요. 주님께서 알아서 잘 키워주신 것 같아 감사하지요.”

 

1.png

▲ ‌‌ 제8대 전주교구장이 된 김선태 주교의 서품미사와 착좌식. 전임교구장 이병호 주교의 뒤를 이었다.

 

효자동 본당과 학교, 집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한귀석 회장의 신앙과 봉사활동의 뿌리는 깊었다. 중고등부 학생회장, 전주교구 대학생연합회장, 한국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사회에 눈을 떴단다. 대학생 신분으로 1972년 10월유신을 전후해서는 시대가 시대인지라 여러 가지 말 못 할 어려움도 겪었다고 했다. 결혼한 후에는 집안의 안정을 위해 전주 효자동에 땅을 마련해 직접 집을 지었다. 이후 30년째 효자동 성당과 학교와 집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살아왔다고 했다.

 

효자동 본당에서 청소년분과장, 전례분과장, 선교분과장을 맡았고, 정년퇴직을 앞두고 본당 총회장을 맡아 봉사하다 전주교구 평단협회장으로 일한지 만 2년이 됐다고 했다. 전주평단협 회장을 맡기 전에도 수십 년 전부터 전주평협 분과장, 부장, 사무국장으로 봉사하며 크고 작은 행사를 많이 치러봤다고 했다. 1,300여 명이 참석한 전주교구 여름 신앙학교, 5,000명이 모인 청소년성체대회도 잘 치러냈다. 30년 전, 5만 명이 참석했던 전주교구 설정 50주년 행사의 식전행사를 맡아서 무탈하게 행사를 마쳤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고 했다. 

 

올해 전주교구는 김선태 교구장 착좌식 등 큰 행사가 많았습니다. 회장님의 경륜과 경험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님이 5월 13일 주교 서품과 함께 전주교구 제8대 교구장으로 착좌하며 임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날 행사장인 군산 월명체육관은 사제단과 수도자, 신자 4,000여 명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지요. 더구나 저희 전주교구가 자치교구 설정 8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자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일이어서 기쁨이 더 컸습니다. 우리 교구민들은 전임 교구장 이병호 빈첸시오 주교님에 이어 새롭게 교구를 이끌어갈 김선태 교구장님이 직무를 충실히 수행 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한마음으로 은총을 청했지요. 그날 과분하게도 제가 축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말씀드렸지요.

 

이병호 주교님께서는 27년 동안 하느님 나라 의 완성을 위해서, 저희 안에 깊은 영성을 심어주시고 온 힘을 다해주시어 우리 교구가 큰 발전을 이루게 해주셨기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김선태 새 주교님께서는 순교자의 고장인 전주교구가 자치교구 설정 8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순교자의 터에서 태어나셔서 순교자의 삶을 닮아 사시려는 분이시니 저희가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전주교구민 모두가 희망과 기대 속에서 ‘예, 주님 여기 있습니다.’ 답하신 새 교구장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돼 이 고장에 하느님 나라를 널리 선포하고 놀라운 변화를 이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는 내용으로 축사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행히 그날 행사는 하느님의 깊은 은혜 속에서 물 흐르듯이 잘 진행되었어요. 제가 다른 교구의 주교님 착좌식에도 많이 가봤지만 그날 우리 전주교구의 착좌식이 가장 멋있게 잘된 것 같아요.”(웃음)

 

제목 없음.png

 ▲ ‌ 전주교구 평단협이 평신도 희년을 맞아 제작한 상본. 최초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 복자와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복자 두 분의 초상을 담았다.

 

평신도 희년 맞아 전주교구 평신도 상본 제작 


새 전주교구장께서 신년 사목교서와 함께 평신도 희년을 선포하신 것으로 압니다.

“네. 그렇습니다. 지난 11월 22일에 교구 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를 강조하시면서‘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로마 12,2)라는 사목교서를 발표하시고, 평신도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전주교구는 평신도들이 평신도 희년을 맞아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해성사와 전대사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교구장님이 지정한 8곳의 순례지(전동 성당, 전주숲정이, 천호성지, 여산성지, 고창개갑장터, 초남리, 치명자산, 나바위 성당)를 찾아 한 해 동안 순교자 정신을 함양하는 데 힘쓰기로 했습니다. 평신도 희년에 맞는 전주교구의 상본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 복자와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복자 두 분의 초상을 담고, 뒷면에는 ‘평신도 사도직을 위한 기도문’을 담았지요. 총 3만 5천 장을 인쇄해 본당 신자들에게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

 

2.png

▲ ‌ 전주 평단협이 마련한 자치교구 설정 80주년 기념 세미나. 10월 28일에 ‘평신도의 역할과 방향’을 주제로 열렸다.

 

올해 전주교구 설정 80주년을 맞아 전주평단협 에서 의미 있는 행사도 치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전주교구 평신도가 주체가 되어서 교회 안에 서, 또 세상 안에서 평신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0월 28일에 ‘평신도의 역할과 방향’을 주제로 대형 세미나를 개최했어요. 이영춘 호남교회사연구소장 신부님이 발제를, 오용석 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장께서 토론의 좌장을 맡아 이끌어주셨지요. 자유토론 때는 주어진 시간이 부족할 만큼 열띤 토론이 진행됐습니다. 저희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사제와 평신도, 수도자, 본당회장, 교구단위 남녀 단체장 등이 잘 안배되도록,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했습니다. 부족하더라도 명망가를 모시는 것보다는 전주교구의 평신도들이 생활 속에서 체험했던, 생생한 것을 나누는 시간으로 준비했습니다. 저 역시 지난 2006~2016년 10여 년간 교구의 다양한 사목적 과제들을 교세통계와 설문조사 등을 활용해 진단한 자료를 통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세 직분이 서로를 격려하고 도와주며 각자의 고유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드렸지요.

 

세미나가 끝난 뒤에는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선포식을 했습니다. 권길중 한국평협 회장님을 모셔서 운동의 의미에 대해 귀한 말씀도 듣고, 평단협 임원진과 회원, 36개 본당 회장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교구장님 앞에서 실천을 다짐했습니다. 참석한 전주교구 교구민들이 참 평신도의 모습으로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전주교구를 만들어가는 데 힘을 모으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올해 한국평협 춘계 상임위 준비 때도 전주 평단협 분들이 수고가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올해 4월 7~8일에 천호피정의집에서 전주 교구 평단협 주관으로 한국평협 춘계 상임위 행사를 개최했지요. 이병호 주교님 집전의 개막미사를 시작으로 주교님께서 ‘평신도의 사명’이란 주제로 영성 깊은 특강을 해주셨고, 아가페를 통해 전주의 음식과 국악연주도 들려드렸습니다. 준비하는 저희도 기뻤지만, 전주가 맛과 멋의 본 향임을 전국에서 모인 평신도 대표들에게 깊이 심어주는 기회가 되어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2.png

▲ ‌전주교구 평단협 회원들의 워크숍 장면.


47년 역사의 전주교구 평단협에 35개 단체 참여

전주교구 평협의 역사는 1970년 ‘전주교구 사목협의회’로부터 시작된다. 김규승 베드로 초대회장을 시작으로 2010년 21대 평협(회장 강상근 미카엘)까지는 전주평협으로 활동했다가 2014년 평신도사도직단체 협의회(전주 평단협)으로 개편돼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여성연합회와 꾸르실료, 레지아, 가톨릭교수 협의회, 농민회 등 35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한귀석 회장은 현재 전주 평단협 2대 회장으로 요안루갈다회 대표로서 2016년 1월부터 평단협 회장의 소임을 맡았다고 한다.

 

2018년부터는 평단협 참여의 폭을 넓히기 위해 박성팔 안드레아 지도신부의 가르침 아래 평협 소속단체와 본당이 함께하는 평신도단체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전주교구 96개 본당 회장들도 전주교구 평단협에 참여함으로써 평단협이 더 활성화 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2018년 1월 6일 임시총회를 열고 신임 임원진을 선출할 예정이다. 2년 간의 평협 회장직 소임을 다한 한귀석 회장의 감회는 어떠할까? 

 

평협 회장의 직분이 힘들고 고통으로 다가오지 는 않으셨는지요?

제가 이런 정도의 일을 하면서 고통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고요.(웃음) 제 인생을 돌아보면 순간순간이 기쁨이고, 주님께서 많은 은총을 주 셨다고 생각해요. 사실 송구한 것은, 젊을 때 제게 본당 회장 맡으라는 직분을 주셨는데, 그때는 받지 못하고 고사했어요. 그때 제 생각에는, 인문계학교 교감은 학생들을 위해 대학입시에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다 큰 고등학생 144명을 데리고 입시교육을 하느라 기숙사 사감을 5년씩이나 했어요. 그때는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갔어요. 그러고 나서 교장으로 재임하며 정년을 2년 남겨놓고 본당 회장을 맡았고, 전주교구 평단협 회장을 맡아 2년간 봉사할 기회를 얻었으니 주님께서는 제가 봉사할 시간까지 알아서 잘 맞춰주신 셈이잖아요. 마치 톱니바퀴가 딱딱 맞아가듯이 말이죠.(웃음)

 

감사한 것은, 제 아이들 셋이 다 대학에 갔는데, 부모로서 학원 한번 보내지 못한 아픔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다 대학을 가게 됐고, 형편이 안 돼 대출받아서 학비를 대는데, 혼자 벌어 살림하니 제법 빚을 졌어요. 다행히도 정년 되기 1년 전에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었어요. 감사한 일이죠. 또 고마운 것이, 아내가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며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것을 고생이라고 생각 안 하고 잘 따라준 것이 참 고마워요. 돌이 켜보면, 주님께서 넘치게 주신 것은 아니지만 제게 절대 부족하게 주시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왜 그렇게 저를 이뻐하셨는지 몰라요.(웃음) 제 아이들이 다 성당 다니고, 손주들도 다니고, 저도 지금 건강하고…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제목 없음.png

▲ ‌ 전주 평단협은 2018년 한 해 본당 회장들을 위한 교육과 연수에 주력할 예정이다. 사진은 2017년 9월 천호피정의집에서 개최한 평단협 회장단과 본당 사목회장 합동연수.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해야 자녀들이 따라해 

 

평생 신앙생활을 해오셨는데, 평신도의 신앙, 평신도의 영성이 뭘까요?

“제가 초등학교 때 눈이 와서 발이 무릎까지 푹푹 빠졌어도 기어코 성당에 갔어요. 철들기 전인데, 그때는 하느님만 내 머릿속에 들어왔어요. 어렸을 때부터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부모님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니 나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 걸 보면, 저는 ‘신앙은 대물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해야 자녀들이 나를 보고 따라하는 것이라는 얘기죠. 부모가 말끝마다 주일 학교 가라, 성당 가라고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알게 해주신, 제 어머니의 신앙에 감사해요. 어머니가 신앙에 있어서는 제게 엄하셨어요. ‘어머니 제가 신앙 생활 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도 눈물날 때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감사하지요. 지금도 하느님께서 불러주셔서 이 일(평단협 회장)을 하지 않으면 지금 이 나이에 내가 놀러 다닐 것밖에 더 있겠어요.(웃음)” 

 

새해에 가장 중요한 전주 평단협의 사업은 무엇인가요?

“신앙선조들의 삶을 본받아 우리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이것은 평신도 희년 살기와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운동과 연관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 몇 년간 교구와 본당이 가까워지는 통로가 많지 않았어요. 교구의 일과 본당의 일이 연계성 있게 잘 이어지게 하기 위해 본당 회장단 연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어요. 그래서 새해는 본당 회장님들을 위한 교육과 연수에 주력할 예정입니다.”

 

만남이 끝나고 귀경하는 길. 한 바오로 회장께서 전주의 깔끔한 한정식 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함께해 주시더니 당신의 차를 직접 운전해 서울 가는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배웅해 주셨다. 차 안에서 한 바오로 회장께서 주신 자료 중에 전주교구장님의 사목교서 맨 첫 장을 차지하고 있는 ‘전주교구 기도문’이 눈에 띄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들의 마음으로 느끼며, 성령의 힘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그러고 보니 전주를 방문하고 머무른 짧은 시간 이었지만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들의 마음으로 느낀 소중한 ‘나눔’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전글 한국가톨릭노동장년회 전국협의회
다음글 희년의 축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삶
      


TOP 위로가기
Copyright ©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All Rights Reserved.

04537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80 (명동2가 1) 가톨릭회관 510호
전화 : 02) 777-2013 / 팩스 : 02) 778-7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