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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그리운 교장 선생님, 몬시뇰 첸치
첨부 작성일 2018-04-25 조회 786

우르바노(Urbano) 신학교 생활 체험기 3

그리운 교장 선생님, 몬시뇰 첸치

 

박정일 미카엘 원로사목자, 전 마산교구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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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정일 주교


지난 ‘우르바노(Urbano) 신학교 생활 체험기’(2)에서 우리 일행 3명 (허인 바오로, 김영환 베네딕토 그리고 나)은 로마에 도착하여 베드로 대성전을 구경하고, 여름방학 기간이었기 때문에, 신학교 별장이 있는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우르바노 신학교 별장에 도착하였다는 데까지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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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바노 호수와 교황 별장

 

 

카스텔 간돌포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는 로마에서 약 23킬로미터가량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다. 알바노 호수(Lago Albano)와 교황님 하계별장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풍스러운 도시고 지대가 높으며 호숫가이고 숲이 울창하고 시원하여 하계 별장으로 적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교황님이 교황청의 격무와 로마 시내의 뜨거운 열기(로마의 여름은 매우 덥다.)를 피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시는 곳이나 이 별장에서도 일상적 업무와 순례자들의 접견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시기도 한다.

 

이 별장은 1628년 우르바노 6세 교황께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약 400년 동안 역대 교황들께서 사용하였다.

 

검소하시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3년 즉위 이래 지금까지 여름휴가를 위해 이 별장을 사용하시지 않고 여름에도 항상 로마에 머물러 계시며 일반 업무는 물론 신자들의 접견과 일반 알현 등을 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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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별장 정원 일부


우르바노 신학교 별장은 교황 별장의 정원과 담 하나 사이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가끔 신학생들 사이에 교황님께서 산책하시는 모습을 담 너머로 보았다고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신학생들의 별장 생활 일과는 학업이 없을 뿐, 아침 묵상과 미사성제, 성체조배, 공동으로 성무일도 바치기 등 학기 도중과 별 차이가 없다. 물론 방학 중에도 외출이나 여행은 특별한 경우에만 허 락되었다. 전통있는 우르바노 신학교의 규율이 매우 엄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당시에도 독일이나 프랑스 신학교들에서는 방학 동안 외국 여행이 허락되었었다.

 

방학 동안에는, 영성강화 외에는, 학업이 없기 때문에 운동과 휴식을 위한 많은 시간이 있었다. 정원이 넓어서 축구장, 농구 및 테니스 코트 그리고 수영장도 있어서 운동하는데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농구나 축구 등을 친구들과 어울려서 가끔 하였지만 수영은 거의 매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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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하는 필자 사진     ▲ 다이빙하는 필자 사진


우리 일행 3명이 별장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된 9월 4일, 당시 포교성성 장관 푸마소니 비온디(Fumasoni Biondi, 1872-1960) 추기경의 80세 생신잔치가 벌어졌다. 여름 동안 추기경께서는 신학교 별 장에 와계셨다.(우르바노 신학교가 교황청 포교성성 직속 신학교이기 때문에 포교성성과는 부자 관계 같다고나 할까!) 방학 중이어서 학생들이 연극도 하고 노래자랑도 하여 추기경님을 기쁘게 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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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마소니 비온디 추기경

 

마침 한국 학생 3명이 새로 도착하여 5명이 된 우리에게(그때까지 한국 학생은 유영도 디오니시오 신부와 신학과 3학년생인 백남익 디오니시오 두 사람 뿐이었다.) 한국적인 것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아리랑 노래와 한국 춤을 보여 드리려 둘(백남익 디오니시오와 김영환 베네딕토)이 춤을 추고 남은 셋 이 노래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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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체보 모신 함

 

오르비에토 성체 기적 대성당 순례

 

방학 기간 중 학생들은 별장에 있는 동안 전 교생의 1일 단체 여행 또는 순례의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가 도착한 그 해에는 로마 북쪽 약 50킬로 미터 떨어져 있는 오르비 에토(Orvieto)시에 있는 성 체 기적의 성작보가 보존되어 있는 대성당을 방문하였다.

 

로마에 도착하여 얼마 안 되어 하는 전교생의 외부 여행, 그것도 유명한 순례지를 방문하게 되니 기쁘기도 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격스러운 마음이었다. 간단하게나마 오르비에토의 성체 기적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 듯하여 첨언한다.

 

기록에 의하면 1263년 어떤 보헤미아(현 체코의 일부)인 베드로 프라가라는 신부가 성 체성사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약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로마에 순례를 가서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기쁜 마음으로 귀국하는 도중 로마 북쪽 볼세냐 지방(Bolsena = 로마 북부 지역)을 지날 때쯤 되어 다시 성체성사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다. 하루는 그곳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데 성체를 축성하는 순간 흰 제병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나와 깔아놓은 성체포를 흥건하게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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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별장 앞 일반 알현 광경


그 사실은 즉시 교황 우르바노 4세에게 알려졌다.(그때 마침 교황께서 오르비에토에 계셨다.) 교황님은 오르비에토의 주교를 통하여 그 사실을 세밀히 조사한 후 초자연적 기적이라고 판정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교황께서는 당시까지 일부 지역에서만 지내고 있던 성체축일을, 전 세계적으로 대축일로 지내도록 명하셨다.

 

오늘날 성체강복 때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성체 찬가’의 가사는 우르바노 4세 교황의 명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께서 작사하신 것이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가히 성체성사의 교황이라고 불려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오르비에토 대성당은 이 거룩한 기적의 성체포를 보존하기 위하여 건축된 성당이다.

 

 

나라별 소풍에서 향수를 달래며

 

학생들은 방학 동안 전교생이 함께하는 한 번의 단체 여행 외에 매주 또는 격주로 ‘소그룹’ 소풍(피크닉)을 할 수 있었다. 한 번은 나라별 소풍(Gita nazionale=National picnique)과 까메라따별 소풍(Camerata=반) 소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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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생 순례 시 오르비에토 대성당 앞에서


나라별 소풍은 글자 그대로 자기 나라 학생들끼리 하는 소풍이다. 그때에는 마음껏 자기 나라 말을 할 수 있고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아들 했다. 우리 한국 학생들 은 ‘나라별 소풍’날이 되면 으레 알바노 호숫가에서 한국식으로 밥을 하고 김치도 만들어 먹으며 한국 소식과 고향 이야기를 꽃피우며 향수를 달랠 수 있어서 좋아들 했다. 밥을 잘 짓고 김치도 담글 줄 아는 학 은 매우 인기가 매우 좋았다! 나는 음식 만드는 솜씨도 없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잘 하지 않는 편이어서 별로 인기가 없었던 것 같다.

 

까메라따별 소풍은, 같은 조의 여러 나라 학생들이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준비해 주는 음식을 지참하고 가까운 곳을 산책하거나 명소를 방문하는 것이 상례였다. 각각 다른 여러 나라 학생들이 함께 다니면서 이색적인 이탈리아의 풍경과 명소에 대하여 나름대로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등을 나누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반별(Camerata=10여 명의 각각 다른 나라 학생들 의 모임) 소풍은 같은 반(조) 학생들이 함께 하는 소풍이다. 이때는 여러 나라 학생들이 함께 가기 때문에 자기 나라 고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없고 학교에서 준비해 주는 음식을 가지고 가까운곳을 산책하거나 명소를 방문하는 것이 상례였다. 여러 나라 학생들이 함께 다니면서 이색적인 이탈리아의 풍경과 명소에 대하여 나름대로 느끼 는 것, 생각하는 것 등을 나누는 기회가 되어 좋 았다.

 

 

수단을 입고 축구를 하며

 

1950대 당시에는 로마뿐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에서 사제와 신학생들의 일상복은 수단이었다. 자는 시간 외에는 수단을 벗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운동을 할 때나 소풍을 할 때나 여행을 할 때도 항상 수단을 입어야 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우리가 소그룹으로 소풍을 할 때는 바지(Pantalone=Pantaloon)를 입을 수 있게 교장이셨던 몬시뇰 첸치(Mons. Cenci)께서 특별히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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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단 차림의 축구 선수들


그러나 별장에 와계시는 포교성성 장관 추기경의 눈에 뜨이지 않게 하라는 조건으로!(혹시라도 연로하신 장관께서 학생들의 바지 차림을 보시고 걱정하실까봐…….) 그래서 우리는 소풍을 떠날 때 와 마치고 별장으로 돌아올 때는 별장 뒷문을 사용하였다. 이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 었다. 첸치 몬시뇰은 대학에서는 철학 교수였는데 상당이 진취적이었고 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남달랐던 분으로서 모든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 1950년대 우르바노 신학교 출신 사제들은 모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몬시뇰을 추모하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곤 한다. 몬시뇰께서는 졸업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떠날 때 반드시 개인적으로, 사제생활에 대한 아버지다운 당부의 말씀을 담은, 간단한 편지를 써주셨다. 나도 그 편지를 받아 고이 간직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 편지 를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 없어, 소개하지 못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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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복 수단 차림의 학생시절 필자 사진


3개월의 여름 방학을 끝내고

 

10월 초가 되어 로마 신학교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왔다. 로마의 여름방학은 매우 길다. 7월부터 9월 말까지 3개월이나 된다. 우리 3인이 로마에 도착한 것이 8월 17일이었으니까 2개월 동안을 별장에서 푹 쉬며 여러 나라 학생들을 만나 사귀고 이탈리아어도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탈리아어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었다. 별장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쟈니꼴로(Gianicolo) 언덕 성 베드로 대성전이 가깝게 보이는 ‘우르바노 8세로 16번지’에 위치한 우르바노 신학교에 도착하였다. 앞으로 사제가 될 때까지 7년 동안 살게 될 보금자리에……. 당시는 신학생 기숙사는 2동으로 구교사(Vecchio Collegio)와 신교사(Nuovo Collegio)가 있었는데 나는 구교사에 있는 ‘제8 까메라따’에 배정되어 짐을 풀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나의 로마 생활, 우르바노 신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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