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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봄 / 계간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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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사도직 평신도의 꿈과 희망
첨부 작성일 2018-04-26 조회 756

사도직 평신도의 꿈과 희망
사도직 평신도의 꿈과 희망
김정일 티모테오 / 대구대교구 평단협 부회장

 

▲ MBW 기를 들고 있는 김정일 티모테오

 

 

본당에서 교리교사로 봉사하던 젊은 시절 저는 이렇게 반문하곤 하였습니다. 평협의 간부들 중에는 주일학교 출신이나 대학생회, 청년회, 교리교사 출신이 왜 많지 않은가? 반대로 학창시절 성당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청년들은 어른이 되면 왜 교회에서 봉사하기를 꺼려하는가? 저는 유아세례를 받고 학창시절을 성당에서 살다시피 한 후, 재경대학생회와 군생활을 마치고 본당에서 교리교사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꾸르실료 수강을 통하여 교회를 위한 봉사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인식을 더욱 강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1984년 한국천주교 200주년을 맞이하여 방한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5월 5일 ‘청소년대회’를 통한 서품식을 집전하시기 위하여 대구에 내려 오셨습니다. 당시 교리교사연합회장이던 저는 우리 교구의 평신도대표단의 일원으로 교황님을 알현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심지어 친구(親口)를 마친 저에게 학생인지를 물어 보시며손을 잡아주시고 격려해주셨던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후 저는 봉사활동이나 교회활동을 제안 받으면그때를 떠올리며 가능한 한 더욱더 순명하곤 하였던 것 같습니다.


“티모테오 너는 신부가 아니더라도 평신도로서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거야.”


교육국 직원이던 어느 날 신학교 입학을 고민하던 저에게 당시 교육국장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후 신부님의 말씀이 예언이었는지 제가 그렇게 노력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정말 다양한 평신도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구에서 교황 방한을 계기로 시작한 ‘청소년을 위한 가톨릭 스카우트 운동’에는 대지도자를 시작으로 단위대 육성단체대표, 지구연합회 훈육위원장 및 부회장으로 봉사하는 한편, 지도자 훈련교수 자격으로 새로운 지도자들을 훈련 육성하며 현재까지 35년 동안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역시 봉사직인 스카우트 가톨릭연맹 이사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무선통신을 통한 복음화 운동을 취지로 1994년에 재창립한 ‘가톨릭아마추어무선사회’(마르코니회) 활동으로는그간 순교자현양대회 등 각종 대회의 무선통신지원, 이동 무선국 운용, 아이볼미팅 및 지난주 965차 교신이 이루어진 매주 월요일 저녁의 정기라운드교신 등을 통하여 복음 및 생활 나누기 등에 25년 동안 쉼 없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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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코니회                                                                          ▲ MBW 40주년


70년대 중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앞둔 어느 해 겨울, 본당의 추천을 받아 며칠간의 일정으로 왜관 피정의집에서 개최된 생소한 피정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과 사목헌장,평신도교령 등에 대하여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이후 까마득히 잊고 살던 1990년 어느날, 청소년복음화운동에 도움이 된다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1976년 그때의 왜관 피정의집 수련회가 우리 교구에 처음으로 도입된,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M.B.W. 운동’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에 교구장 승인을 받아 가입된 단체들 대부분이 액션 단체에 속하였는데, M.B.W. 운동은 신심단체에 속하였습니다. 저에게 소명처럼 다가온 이 운동에의 참여는 사실상 저의 삶을 가장 많이 변화시키며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었고, 평신도 사도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었습니다. 도입 초기에는 3박 4일 과정이었지만, 좀 더 많은 수련회 참여를 위하여 숙박과정이 아닌 희망 본당으로 찾아가는 목, 금, 토, 일 주말과정 위주가 되었는데, 많은 경우 연간 52주중 30여 차례의 수련회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제가 속한 본당에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점점 힘들어졌으며, 이는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부분입니다.

‘M.B.W. 공동체 추진 봉사회’를 통한 사도직 참여는 어느덧 29년차가 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근간을 이루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과 공동체 정신은 제가 교구청 교육국 직원으로 시작하여 재단 내 고등학교 행정실장으로정년퇴임하기까지 교회 내에 머물게 하였으며, 매사에 자긍심을 가지고 근무하게 하였습니다.

평신도의 사도직 소명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문헌 중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제1장에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효과적으로 참여하여 하느님 백성 전체의 사명에서 맡은 자기 역할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수행한다. 평신도들은 복음화와 인간 성화에 힘쓰며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그 질서를 완성하도록 노력하여 실제로 사도직을 수행한다. 이렇게 평신도들은 그 활동으로 현세 질서 안에서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증언하며 인간 구원에 봉사한다. 세상 한가운데에서 세속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신도의 신분이므로 바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인 정신으로 불타올라 마치 누룩처럼 세상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하느님께 부름 받았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1962년에 개막하여 1965년에 폐막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교회는 소수의 성직자가 절대 다수의 사목 대상자들을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피라미드 형태라 믿었습니다. 그러니 사제 중심으로 교회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이렇게 이해하면 교회는 신부님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이 되며, 우리는 아무 책임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본당 사목은 계획부터 운영과 평가까지 모든 것들을 신부님들이 다 책임지고, 평신도인 우리는 소극적으로 신부님들을 위해 기도나 하면 신자들의 의무를 다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공의회 이후의 교회는 ‘교인들의 회중’ 즉 하느님 백성으로 정의되며, 모든 교회의 구성원들이 하느님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는 교회상을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평신도’라는 용어와 평신도교령을 통하여 교회 구성원으로서의교회 사명에 대한 평신도의 참여를 공식화하게 된 것입니다.

“아니 신부님이 아니었어요?”
“아직도 이 일을 하십니까? 정말 오래 하시네요.”

이 말들은 제가 평신도 사도직에 참여해오면서 자주 들어오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주님 곁으로 가는 날까지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평신도로서의 꿈과 희망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교회 안, 즉 교구나본당 평협, 소속 제 단체, 구역 및 반모임 등에서 적극적으로 평신도 사도직에 참여하여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교회의 사명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도직 평신도의 꿈과 희망,
우리가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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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알현

 

▲ 가톨릭스카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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