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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평신도
  • 2018년 봄 / 계간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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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알렉산데르
첨부 작성일 2018-04-26 조회 696

주보성인과 나
알렉산데르
문덕영 알렉산데르 / 전 제주교구 평협회장

 

 

 

나는 1967년 12월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알렉산더’라는 세례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당시 세례 자격시험(?)인 찰고를 받던 날, 교리실에는 수십 명의 예비자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요리문답 책을 뒤적이며 잊을세라 외우고 또 외우며 있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자 뻣뻣해진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신부님과 마주 앉았다. 출석부를 쭉 보시더니 “개근이네.” 하시며 나를 보시고는 입교하게 된 동기를 물으신 것이 전부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교리를 열심히 수강한,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를 기특하게 여기신 신부님께서 “열심히 했으니 물어보지 않겠다.” 하시며 합격 도장을 찍어주셨다. 너무나 빨리 나온 나를 본 예비자분들이 “뭘 물어보셨냐?”, “통과했느냐?” 등을 물었다. 난 “떨어졌어요.” 하고 씩 웃자 알아차리고는 다들 축하해주셨다. 그렇게 나의 신앙생활은 시작되었다.


영세 받는 12월 18일은 겨울 같지 않게 따뜻한 날이었다. 새날을 축하하러 사대부고 쎌 회원들과 친척 여동생 소피아가 왔다. 날 에워싼 아이들이 “대왕님! 대왕님!” 하면서 밝게 축하해주었다. 그랬다. 나는 그 착한 애들에게‘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이었다.


영세받기 전의 일이었다. 대학 4학년이던 1966년 4월 어느 날, 당시 을지로5가에 있던 사대부고 2학년인 친척 누이동생이 나를 찾아왔다. 여름방학에 학교 쎌 모임에서 여름 농촌봉사활동을 가는데, 인솔 선생님이 못 가시게 되어 회원들이 실망이 너무 크니 나보고 인솔자로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당시 난 장충동 경동교회에 다니던 때라 난처했다.


회원들에게는 내가 자기의 오빠이며, 교우이고 세례명은 알렉산더라고 이미 설명을 했단다. 본명은 내 생일이 5월 30일이라 5월에서 찾다보니 5월 3일 성인 가운데 알렉산더 성인이 멋있어서 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나는 위장 천주교 신자가 되어 서해 끝에 있는 아주 자그마한 볼음도(인천 강화군 서도면)라는 섬으로 가게 되었다. 총인원 15명. 남학생 8명, 여학생 6명 그리고 나.


출발하면서부터 난 내 이름보다 ‘알렉산더 대왕님’으로 불리며 어색한 공동체생활을 시작하였다. 식사 전 기도,주의 기도, 성모송, 성가 등등 너무나 달라서 신자 아닌 게 탄로 날까봐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매일 매일 아이들과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리며 땅콩 수확도 하고, 밭에 김도 메고, 농로도 손질하였다. 비라도 많이 내리는 날이면옷이 흠뻑 젖은 채 물길 트는 작업도 하느라 어린 아이들에게는 힘든 나날이었다.


저녁밥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고 나면 바닷가 언덕에 앉아 멀리 황해도 해주 쪽 북녘 땅, 띄엄띄엄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처음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끔 그쪽에서 비치는 아주강한 서치라이트가 휘익 밤하늘을 휘젓다 바로 우리를 향해 비추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섬 어른들이 우리를 겁주려고 일부러 “불빛이 비추면 숨도 쉬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저기서 다 보고 있다.”고 하는 통에 풀밭에 납작 엎드려 숨죽여 떨던 생각이 난다. 어색한 천주교 신자로 시간이 흐르다보니 자연스레 탄로가 나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동생이 출발 전에 사실대로 다 얘기를 했고, 호칭도 신자가 아니니 알렉산더 대왕님이라 부르기로 했단다.


그 당시는 내가 천주교 신자가 될 것이라고는 나는 물론 정이 듬뿍 들어버린 그 아이들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내가 세례 받는 날 그렇게 좋아하며 진심으로 축하해준 것이리라. 그때 그 아이들은 이제 아빠 엄마가 되어 있겠지? 아니야.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겠구나. 아무리 떠올리려 하여도 떠오르지 않는 모습들이지만,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50여 년을 거슬러 과거 여행을 하다 다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생각해 보니 그때 아이들과의 농촌봉사활동은 내가 중학교 3학년부터 우리나라 농촌 발전을 위해 일을 하리라던 나의 꿈이 흔들리지 않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농업 관련 연구생활 33년을 하는데 커다란 촉매제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찡하고눈이 촉촉해진다.


나의 수호성인 성 알렉산데르 1세(Alexander I)는 제6대 교황(105-115년)이셨다. 성인에 대하여 전해지는 자료가많지 않아 몹시 아쉽지만,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인께서는 족쇄를 차고 감옥에 갇혔으며, 살을 불로 태우는 고문을 받으시다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셨다. 또한 <교황 연대표>에 따르면 성인께서는 미사경본의 성찬기도 제1양식 축성직전 기도인 “Qui pridie”(예수께서는 수난 전날 거룩하신 손에 빵을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전능하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며 축복하시고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를 삽입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구마나 정화의 목적으로 성수를 뿌리는 전통과 성찬례 때 물과 포도주를 섞는 전통을 도입하셨다고 한다. 이처럼 성인께서는 교회의 전례 및 행정의 초기 발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셨으며, 아기 예수의 환시를 체험하신 것으로도 기록되고 있다. 나의 수호성인 성 알렉산데르의 축일은 5월 3일이다.


맨 살이 태워지는 지극한 아픔에도 굴하지 않고 사랑의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고 죽음으로 증거하신, 나를 지켜주시는 성인 알렉산데르, 나의 수호성인이시여! 죽음으로 예수 사랑을 증거하신 당신을 제가 닮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주님과 당신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나의 삶속뿐만 아니라, 주위의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된 아주 작은이들을 위해서도 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게으르고 용기 없음을 당신은 알고 계시니 살아가는 동안 적극적이고 강한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저를 끌어주십시오. 그리하여 언젠가 하느님과 당신의 도우심으로 만나 뵙게 되는 날,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청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서해의 작은 섬 볼음도에서 함께 지내며 오늘의 내가 있도록 인도하고 도와주고 함께 해주었던, 보고 싶은 그때 그 친구들이 몸과마음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만, 그들에게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 간구하여 주십시오. 언제나 그렇듯이 청하기만 합니다.


찬미와 감사,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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