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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여름 / 계간 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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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 나의 잊지 못할 영적 스승, 주 꼬스딴조 신부님
첨부 작성일 2018-07-17 조회 824

나의 신앙 선조
나의 잊지 못할 영적 스승,

주 꼬스딴조 신부님
유수일 F. 하비에르 / 군종교구장 주교

 

 

 

어떤 분은 세상을 떠날 때 쉽게 그리고 때로는 거의 영원히 잊히고 만다. 하지만 어떤 분은 오래 그리고 심지어 영원히 잊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속하여 감동과 영감과 가르침을 준다. 나에겐 후자에 속하는 분으로, 늘 내 마음 안에 현존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계속하여 영감과 자극을 주시는 분이 있다. 그 분은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으로 내가 속한 프란치스코수도회(작은형제회)의 한국 선교사 주 꼬스딴조 신부님이다.

 

 

주 꼬스딴조(이탈리아 이름은 꼬스딴조 주뽀니) 신부님은 원래 중국에 선교사로 계셨다.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1950년대에 추방되자 일본으로 가서 몇 년 선교생활을 하셨다. 그러다가 1960년 중반에 한국에 선교사로 오셨고, 1980년 위암으로 한국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주 꼬스딴조 신부님을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유기서원 시절이었다. 성무일도서 번역과 편집을 맡은 우리 수도회 스페인 출신 선교사 신부님의 일을 돕기 위해 서울 정동 수도원에 자주 가던 1976년경부터이다. 번역자가 외국인이기에 내가 비서 역할을 하게 됐다. 유기서원소가 있던 성북동 수도원에 살면서도 정동 수도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방학과 주말에는 정동 수도원에서 살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우리 수도회 한국관구 부관장 겸 경리직을 맡고 있던 주 신부님을 가까이서 뵙게 되었다.


나는 정동 수도원에 살면서 주 신부님이 참으로 ‘기도의 사람’임을 발견했다. 새벽 5시경이면 어김없이 성당에 가서 성체 앞에서 묵상하셨고, 6시 15분 아침기도와 미사가 시작되면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고 미사에 참여하셨다. 그리고 아침기도만이 아니고 낮기도, 저녁기도도 충실히 바치셨다. 음악도 좋아하시고 영화도 좋아하셨는데, 그런 취미가 자칫하면 삶의 리듬을 깨드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주 신부님은 늘 변함없이 기도와 일을 충실히 하면서 경건한 삶을 사셨다. 당시에 주한 교황대사가 대부분 이탈리아 출신이었는데, 교황대사님이 가끔씩 정동 수도원에 오시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러 오신 것이었다. 그만큼 경건한 삶을 사셨다는 한 예가 된다.


나는 주 신부님의 기도 정신이 눈물겹도록 감동을 준 한 순간을 기억한다. 주 신부님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쯤이었다. 병세가 위중해져 생의 마지막을 당신이 지극히 사랑하던 산청 성심원 나환자 마을에서 맞이하시고자 하셨다. 그곳에 내려가시기 직전의 어느 날이었다. 오후 4시경 병문안을 위해 신부님이 요양하던 정동 수도원 방에 갔다. 그런데 신부님이 뼈만 남은 채 기력이 거의 쇠진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침대에 누워 떨리는 손으로 꽤 무거운 성무일도서를 펴들고 기도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신부님, 일생 동안 정말 기도 많이 해 오셨는데, 이제 좀 쉬셔도 됩니다.”


그러자 신부님 역시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셨다.


“하비에르, 잠시 후 간호사 베네딕타 자매가 오셔서 링거 주사를 놓아주실 건데, 몇 시간 걸릴 겁니다. 성무일도 저녁기도를 못할 것 같아 미리 바치고 있습니다.”


나는 순간 ‘아! 일생동안 해 오신 기도생활이 거의 본능처럼 돼서 이 고통의 순간에도 빠짐없이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병이나 바쁜 일정 때문에 성무일도 기도를 부득이 못 바칠 경우도 있지만, 일종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유혹 때문에 안 바치고 싶을 때마다 주 신부님의 기도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아니다, 그래도 기도해야 한다.’고 혼잣말을 하면서 성무일도서를 손에 잡는다. 나는 주 신부님의 기도생활을 되새길 때마다, 피곤하신 중에도 새벽 일찍 일어나시어 한적한 곳에 가시어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되새기게 된다.(마르 1,35 참조)


주 신부님처럼 나도 음악을 좋아한다. 어느 날 세계적 테너인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처음으로 한국 공연을 갖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기서원자인 나는 돈이 없어 주 신부님께 부탁드렸다. 그러자 웃으시면서 돈을 주시는 것이었다.


“하비에르, 나도 이 테너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 고마운 돈으로 표를 사서 이화여대 강당에서 개최된 테너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 후였다. 1979년으로 기억되는데, 신부님께서 본국으로 휴가를 가신다고 해서 말씀드렸다.


“신부님, 휴가 때 시간되시면 루치아노 파바로티 노래 테이프를 한 개 사오시겠습니까?”


그분은 내 요청에 웃으면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휴가 후 약속대로 사온 테이프를 주면서 미소 지으셨다.


“하비에르, 제노바에서 이 테이프 파는 가게가 거의 없어 찾느라고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신부님이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위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알고 보니 휴가 중 이탈리아에서 이미 암 판정을 받고 귀국하신 것이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주 신부님께 너무도 죄송한 마음을 가졌다. 내게 테이프를 사다 주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이 가게 저 가게 다니시느라 얼마나 고통 받으셨을까 생각하면서 신부님의 형제적 사랑에 감사드리고 감사드렸다.


간호사 조 베네딕타 자매(현재는 대학 교수)의 회고에 의하면, 주 신부님이 위암으로 인한 육체의 고통을 너무 참으시는 것 같아 의사의 처방으로 진통제 주사를 놓아드릴 뜻을 비쳤다고 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한다.


“베네딕타 자매님, 예수님은 저보다 몇 배나 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저는 맞지 않겠습니다. 산청 성심원의 고통 받는 나환자들에게 놓아주십시오.”


그리곤 끝내 거부하시더라는 것이었다. 나의 가장 위대한 영적 스승이자 내가 속한 수도회의 창립자이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두드러지는 두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관상적이고 은수자적 삶의 자세’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기꺼이 고통을 참아 받는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걱정을 한다.


‘만약 내가 육신의 고통을 많이 받으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과연 예수님처럼 참을 수 있을까? 살려달라고 외치는 부끄러운 행동은 하지 않을까?’


주 신부님은 참으로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모범적으로 실천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주 신부님의 임종을 곁에서 바라본 형제의 말에 의하면, 주 신부님은 임종 한 시간 전 거친 숨을 내쉬면서 “성체, 성체!”라고 하며 영성체를 원하신 후, 성체를 받아 모시자 한 시간 후 평온히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나는 그분의 그런 자세가 참으로 하느님께 대한 깊은 믿음을 잘 드러내어주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 예수님의 몸을 모시고 세상을 떠나고자 하신 것이다.


나는 주 신부님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더 많이 있지만, 한 가지만 더 적으려고 한다. 관구 경리를 맡으시면서 당신을 위해서는 십원 한 장이라도 아끼셨고, 충실히 경리직을 수행하셨다. 어느 해 관구 총회 때 있었던 일이다. 관구회의 때 반드시 있는 것이 관구의 살림살이 보고인 경리 보고이다. 지난 몇 년간의 재정을 종합하여 보고하게 되는데, 지난해 관구 결산에서 잔액이 180,000원이라고 보고하자 한 형제가 걱정이 돼서인지 일어나 질책 같은 질문을 했다.


“아니, 관구 재정 잔액이 그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금년에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그러자 주 신부님은 잠시 시간을 가진 후 대답하셨다.


“사실 재작년도에는 100,000원 정도의 잔액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살아왔습니다.”


나는 주 신부님의 이 대답이 예사로 여겨지지 않았다. 주 신부님이 지닌 하느님 사랑의 섭리에 대한 신앙을 말해주는 것이기에 나에겐 감동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주 신부님이 하신 말씀을 되새기면서 하느님의 오묘한 사랑의 섭리에 대한 신앙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깊이 생각해 볼 때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그분의 전능하심과 거룩하심과 자비로우심에 대해 찬미드리며, 그분의 오묘한 사랑의 섭리를 깨닫는 것이 우리 신앙의 정점이 아닌가 한다.


이제 천국에서 편히 쉬실 주 꼬스딴조 신부님께 하느님께서 무한한 축복을 내려주시길 기도하며, 주 신부님의 전구를 청한다.

 

 

▲ 주 꼬스딴조(꼬스딴조 주뽀니) 신부님


“주 신부님! 이 약점 많고 죄 많은 저를 위해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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