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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평신도
  • 2018년 여름 / 계간 60호
    한반도 평화의 새 빛과 새로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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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하상 바오로
첨부 작성일 2018-07-22 조회 730

주보성인과 나
하상 바오로


한일문 하상 바오로 / 마산교구 평협 회장

 

 

박해시대 우리나라 평신도 지도자 정하상 바오로 성인,
성직자들의 충실한 협조자로 소임을 다하신 그분의 삶을 닮고 싶어

 

명절을 맞아 고향 집을 찾는 기분으로 오랜만에 40여 년 전을 추억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은 내가 살던 곳에서 세 번이나 갈아탄 버스가 뿌연 흙먼지를 내며 자갈 깔린 한길을 한참을 달려가야 하는 시골의 군청이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것은 선천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활동은 ‘재건학교’라는 야간학교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되돌아보면 시골의 생활은 참으로 의미 있고 보람된 날들이었다.


그렇게 6년이 지났을 무렵,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상급기관인 도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시골과는 다른 상황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도시생활은 시골에서 가질 수 있었던 여유와 따뜻한 사람의 냄새를 느끼기에는 힘든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사무실의 답답함과 함께 어느 윗사람의 이유 없는 노골적 괴롭힘은 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급기야 그 스트레스로 인하여 회의 도중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심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됐다. 진찰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증상은 툭 하면 나타났고, 가끔씩은 응급실 신세까지 져야만 했다. 물론 유명하다는 병원과 한의원 등 여러 곳을 찾았지만, 병명은 ‘스트레스성 자율신경 경직증’이라는 단순한 증상에 대한 이야기만을 들었다. 결국 나 스스로 진단컨대 이유 없이 나를 무시하고 괴롭힌 그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생긴 병,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나 스스로 풀지 못해서 생긴 병이었다. 쉽게 말하면 화병이라고 결정지었다.


그 당시 종교가 없던 나에게는 어떤 종교든지 신앙을 갖고 인간적으로 용서되지 않는 사람을 절대자의 힘을 빌려서라도 용서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길을 걷고 있는데, 이전에는 대수롭게 않게 보이던 신축 중인 건물이 강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건물은 바로 새로 짓고 있는 성당이었다. 사실 그때는 그 건물이 교회인지 성당인지 잘 몰랐다. 건물이 준공된 후 첫 교리반이 개설될 때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엄마 배 속에 있는 아들까지 5명이 한꺼번에 성당을 찾았다. 성당을 찾아가게 해준 그 상사가 밉지 않고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였다. 성당을 찾은 것이 이제 거의 30년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60여 년을 살면서 가장 후회하지 않는 일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결국은 “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겨라.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잠언 16,3)라는 말씀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교리를 마칠 때쯤 대부를 정하고 세례명도 정해야 하는데, 스스로 찾아간 성당이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선 세례명은 내가 정해 보기로 마음 먹고 《생활교리》라는 책을 구입하여 보면서 고민을 하다가 기왕이면 우리나라 성인으로 정하기로 결심하였다. 평신도의 대표적인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당시로서는 성인품에 오르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따끈따끈(?)한 정하상 바오로 성인으로 정하고, 아내는 그의 누이이신 정정혜 엘리사벳으로 하였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성인의 본명을 가진 신자들이 거의 없을 때라 세례명만 들어도 세례를 받은 기간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름이 ‘하상’이고 세례명이 ‘바오로’인 줄 아는 분도 많았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조선교구 설정의 직접적 계기를 이루신 진보적이고 세계적인 안목을 가진 분이셨다. 박해시대 우리나라 평신도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조선교구 설정 이후 성직자를 계속 영입하였다. 또한 성직자들의 충실한 협조자로서의 회장 소임을 헌신적으로 수행하시는 등 한국교회 발전에 지극히 큰 공을 쌓은 분이셨다.

 

흔히 우리 신자들끼리는 세례명으로 모시고 있는 수호성인을 닮아간다는 말들을 한다. 나 역시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다니는 본당이 그때만 해도 신설 본당이라 세례를 받고 2년도 채 되지 않아 교육부 차장이라는 직책과 함께 사목위원이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2년을 제외한 기간을 본당과 교구평협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두 번의 본당 사목회장과 교구 부회장, 수석부회장을 거쳐 지난 1월에는 마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여러 가지로 많이 부족하지만, 훌륭하신 교구장 주교님과 교구 신부님들의 사목을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데 충실하려고 한다.

 

지난 신앙생활을 추억해 보면, 하느님과 수호성인인 정하상 바오로 성인께서 주신 탈렌트의 은총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체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처음으로 본당 소식지인 주보를 만들고 매주 목요일이 되면 윗분들의 눈치를 보던 일, 교구 내에서 본당 단독으로는 처음으로 꼬미시움을 발기하여 창단했던 일, 하나의 본당을 네 개의 본당으로 나누어 사목하는 초유의 한 지붕 네 가족(?)의 ‘공동사목’의 기초를 마련했던 일 등 참으로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생각난다. 이런 일들은 여러 가지로 부족한 나 스스로가 감당하기에 너무 힘든 것임에도 할 수 있었다는 자체가 축복이고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혜 엘리사벳 세례명을 가진 사랑하는 나의 아내의 든든한 후원과 이해도 컸다. 마치 정하상 바오로 성인을 온갖 정성으로 도와주고 기도해 주신 정정혜 엘리사벳 누이처럼 말이다. 아울러 성당 일을 한답시고 한창 아빠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었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신앙으로 바르게 잘 자라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이제 마산교구 평협회장의 소임을 맡은 것이 두 달여라 아직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 우리 마산교구 평신도들의 종이라는 생각으로 수호성인인 정하상 바오로 성인을 닮아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 하면서도 보다 낮은 마음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아무런 죄 없이 단지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피를 쏟는 형벌에도 태연자약하셨고, 일생을 오로지 하느님만을 위한 고귀한 삶을 사시면서 사형선고를 받아 형장으로 가실 때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지니셨던 성인의 거룩하신 신앙을 닮아 살다가 언젠가는 그분의 곁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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