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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가을 / 계간 61호
    하느님을 향한 시선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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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 참된 수도자, 어머니
첨부 작성일 2018-12-19 조회 684

나의 신앙 선조 

참된 수도자, 어머니
김경희 젬마 /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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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에 들어와서야 알게 된, 내 가장 소중하고 유일한 재산은 신앙입니다. 수녀가 된 후에야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심어 주셨던 신앙이 얼마나 큰 유산인지 부모님께 감사드리게 됩니 다. 태어나면서부터 병원 신세를 졌기에 어머니는 늘 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으로 여기셨습니 다. 그런 아이가 결혼할 생각은 않고 혼기가 꽉 찬 나이에 수도회에 가겠다고 말씀드렸던 어느 날, 아 버지는 화를 내셨고 어머니는 섭섭해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선 종종 주위 분들께 ‘엄마 마음 알아주는 똑똑하고 착한 둘째 딸’이라고 말씀하곤 하셨으니까요.

외가는 순교자들이 박해를 피해 그릇을 구우 며 모여 살던 그런 터전에서 오랫동안 신앙을 지 키며 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 뒤 늦게 신앙을 가지셨지만 새벽마다 매일미사를 참 례하셨고, 삼종기도와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빠 뜨린 적 없었습니다. 두 분 모두 열심한 분들이셨 습니다. 주일 미사를 빼 먹는 건 생각조차 못할 일이었고, 성탄 자정미사를 한 번도 빠진 적 없 는 철저한 신앙생활에 식구 중 어느 누구도 예외 는 없었습니다. 외가엔 이미 사제와 수도자가 여 럿 있던 터였고, 어머니께서도 늘 입버릇처럼 자 식 네 명 중에 하나라도 주님께 봉헌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씀하셨기에 내가 수녀원에 가는 건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녀 원 입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반대하셨습니다. 물론 그 반대는 오래가지 못 했습니다. 모태 신앙이라 교리나 성경에 대해 아는 게 없 었던 나에 비해 함께 수녀원에 입회한 자매들 가 운데는 자신이 신앙을 선택하고 받아들인 이들이 있었습니다. 간혹 그들이 들려주는 세례의 체험 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모태 신앙인이라며 뭔가 주인 행세를 하고 싶었지만, 사실 내게는 별다른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것도 수도원 입회 후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는 교회 지식도 주님과의 짜릿한 만남의 추억도 없 지만, 가장 크고 중요한 게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 니다. 내 몸과 마음 깊숙이 들어와 나의 살이 되 고 피가 되고 정신이 된 ‘신앙’입니다. 사실 이 신 앙은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도 위기의 순간이나 고통과 어려움의 순간에 그 가치를 드러냅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놀지 않는 날 이면 집에서 보자기를 이마에 둘러 묶어 기다란 베일을 만들고 마치 수녀님이라도 된 듯 두 손을 가지 런히 모으고 얌전히 무릎 꿇고 기 도를 하곤 했습니다. 사실 기도라 기보다는 대화였는데, 그러고 보니 그것이야말로 진짜 기도였다는 생 각이 들곤 합니다. 그냥 예수님께 이 말, 저 말, 속상한 일, 혼난 일, 기뻤던 일들을 쏟아내고는 마치 예 수님 대답이라도 들은 양 주고받았 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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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큰일을 앞두고 있거나 무슨 일이 생기 면, 어머니는 십자고상과 성모님 앞에 초를 켜고 9일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중풍으 로 쓰러지셨을 때, 우리들이 대입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군대에 간 오빠를 위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언니를 위해, 그리고 막내 글라라가 결 혼을 앞두고 있을 때면 어머니는 언제나 벽에 걸 린 커다란 묵주를 꺼내 묵주기도를 하시며 성모 님과 예수님께 의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해결해 주십사, 그리고 주님의 뜻을 그대로 따를 수 있도 록 해주십사 기도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9일 기 도를 하실 때면 늘 옆에 있는 우리 네 남매에게 같 이 하자곤 하셨는데, 가만히 앉아 끝도 없이 반복 되는 성모송을 바치는 게 지루했던 우리는 저마다 슬쩍 방을 빠져나가곤 했습니다. 나 역시 빠져나 갈 궁리를 했지만, 결국 어머니와 함께 9일 기도 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처음엔 9일 기도 라고 하니까 9일만 하는 줄 알고 9일만 지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9일 기도가 실상은 54일 기도라 는 것을 안 후엔 이미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 되었 습니다. 어머닌 하루라도 빼먹으면 처음부터 다시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매번 기도를 잊어버린 척 “오늘 내가 9일 기도를 했나? 안 했나?”하시며 나 를 하는 수없이 기도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나 는 어느새 달력에 9일 기도를 표시하며 어머니와 함께 54일의 여정을 걷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기도하게 하는 어머니만의 방법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가장 기쁘게 했던 기도가 있었 는데 바로 ‘연도’입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연 도 소리에 목소리를 맞춰 기도했던 시간들은 나 를 자연스레 죽은 이들의 통공으로 연결해 주었 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일이면 으레 연미 사와 연도가 시작됩니다. 9일 기도와 다르게 연도 를 할 때면 어머니는 하얀 종이를 깔고 십자고상 과 성모상을 모시고 초에 불을 키셨습니다. 그런 날은 연도를 하는 날입니다. 연도의 슬픔과 기쁨 이 뒤섞인 구성진 노랫가락이 좋았고, 연도 특유 의 꺾는 소리가 신기했던 기도였습니다. 어쩐지 슬프면서도 힘찬 외침 같았습니다. ‘나를 위해 기 도해 달라’는 영혼들의 외침! 어머니께 받은 선물 중 또 한 가지는 바로 신 앙과 짝을 이루는 ‘인내’입니다. 아프고 힘들 때 모든 걸 주님을 위해, 그리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바치는 어머니의 삶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대 로 전해졌습니다. 동생 글라라가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가족들과 결혼 준비와 제부가 될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한창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결혼 자금 때문에 정신 없으신 어머니께 위로도 해드 리고 응석도 부려볼 참에 어머니 가슴을 만졌는 데, 달걀만한 크기의 몽우리가 단단하게 어머니 가슴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놀라 어머 니께 병원에 가보셨느냐고 여쭈었더니 어머닌 아 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하셨습니다. “응, 글라라 결혼식 끝나면 가려고.” 

어머니 고집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병원 얘기 는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은 밤새도 록 엄마 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어머닌 그렇게 유방암의 고통을 겪 으며 사셨고, 후에 항암치료로 쇠약해진 엄마의 육신은 온전히 하느님께 바쳐진 봉헌이었습니다. 엄마를 닮아 그런지 아픔을 참는 거 하나는 자 신 있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 는 그 어떤 것도 인간이 자랑할 게 없습니다. 입 회 후 두 달이 되기도 전에 기침을 하기 시작하 더니 세 달이 넘도록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 다. 처음으로 입원을 하고 병명도 모른 채 이 병 원 저 병원을 다녔습니다. 지원기 때부터 청원기 까지 그렇게 이름 모를 병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째가 되어서야 수술을 통해 병명이 드 러났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 몸은 약과 함 께 지내고 있지만, 제게 이 병은 수도 삶에 없어 서는 안 될 도반입니다. 수술 네 번, 교통사고를 두 번 견딘 제 육신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신앙과 인내, 그리고 기도로 더 단단해졌습니다. 처음엔 병을 허락하신 주님을 원망했고 매일매일 그분 께 화를 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삶을 허락하 신 그분께서 병든 육신도 함께 허락하셨다는 것 을 알았습니다. 아니, 이런 육신이기에 수도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내게 육신의 고 통이 없었다면 아마도 수도 삶을 지속하기 어려 웠을 것입니다. 나의 끝도 없는 교만과 자만은 다 행히 병으로 인해 조금씩 닦여지고, 육신의 고통 으로 하느님과 더 깊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큰 선물이 또 어디 있습니까! 처음 입원을 위해 병원에 가려고 수도원 문을 나서려는데, 낯익은 얼굴이 수도원을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동생이었습니다. 연락도 없이 갑자 기 온 터라 놀라서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엄마 가 수녀원에 좀 가보라고 하셨답니다. 간밤 어머 니 꿈에 제가 병원 옷을 입고 나타났답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도 제가 아무 말 없이 그냥 서 있기 만 하더랍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어디가 아픈 게 틀림없다 생각하시고 동생을 보내 알아보게 하신 겁니다. 짐짓 놀라며 동생에게 지금 밖에 나가 일 해야 한다며 무슨 소리냐고 다그치고는 서둘러 동생을 보냈습니다. 

하느님 다음으로 나를 아시는 분, 나의 어머 니! 유방암과 치매, 그리고 온갖 병과 함께 살아 가시는 어머니의 딸이기에 저 또한 그 선물을 살 아갑니다. 고통이라고만 생각한 그것이 나를 주 님께로 이끄는 기쁨의 사다리, 십자가임을 알았 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교의학 박사보다 더 완전하게 어머니는 제 게 주님과 교회를 알려주셨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 없이도 주님의 말씀과 삶을 따르시는 어머 니, 오늘도 묵주를 쥐고 수녀 딸보다 더 깊이 세 상 안에서 참된 수도자로 살아가시는 어머니께 감사하며 어머니의 남은 생을 주님께 맡겨드립니 다.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참 행복합니다.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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