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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평신도
  • 2018년 겨울 / 계간 62호
    희년의 정신으로 새롭게 출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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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특집] 더불어 함께, 하느님 나라로
첨부 작성일 2019-01-08 조회 609

희년을 산 사람들 

더불어 함께, 하느님 나라로 

이강추 토마스 모어 / 한국가톨릭약사회장

2000년에 대희년을 지낸 한국교회는 올해에 평신도를 위한 특별한 희년을 또 한 번 지내는 은 총을 받았고, 폐막미사로 마무리를 했다. 50년에 한 번 돌아온다는 희년을 20년도 지나지 않아서 한 번 더 지낸 것이다. 희년을 마치며 그동안 어 떻게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 하게 된다

주일마다 오후 3시가 되면 나는 성당에서 솔봉 이(발달장애우, 자폐증과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맞이하고, 이들과 함께 미사를 드린다. 서울 대 방동 성당에는 4년 전 주임신부로 부임하신 주수 욱 베드로 신부가 솔봉이들을 위한 특별한 미사 를 마련했다. 나는 솔봉이들과 함께하는 이 미사 에 참석해 봉사하고 있다. 솔봉이들의 돌출 행동 이 다른 신자들의 미사참례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솔봉이 부모님들은 아예 미사참례를 포기 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봉이와 그 가족들의 주일미사 시간을 따로 정했다. 솔봉이들에게는 봉사자들이 배치되어 있고, 부모님들은 뒷자리에 따로 앉아서 미사에 참례한다. 미사 중에 손뼉을 치며 돌아다니는 친구, 소리를 지르는 친구, 껑충 껑충 뛰는 친구 등 솔봉이들의 돌출 행동은 다양 하다. 비장애인들에게야 돌출 행동이지만, 솔봉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며 하느님 보시기에도 오히려 더 사랑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봉사자들도 솔봉이들의 행동을 제지한다기보 다 함께 어울리고 다독이며 혹여 발생할 수 있는 과도한 소란이나 사고를 막고자 마음을 쓴다. 함 께하다 보니 봉사자들과 솔봉이들이 친구처럼 가 까워지고, 서로 신뢰하게 되었으며, 솔봉이들도 성당 가는 것과 미사참례를 좋아하게 되었다. 주 일만 되면 솔봉이들이 먼저 어서 성당에 가자고 서두른단다. 미사 후에는 솔봉이들의 특별활동 (교육, 율동, 미술 등)과 간식 먹는 것을 도와주며, 혼자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이들의 미사참례 모습이 처음보다 많이 달라 진 것을 보노라면 가슴 가득 뿌듯함을 안겨준다. 미사 중 스스로 기도하거나 나가서 독서나 기도 하는 모습도 많이 진지해졌을 뿐 아니라 멀리서 나를 보고 달려와서 악수를 청하는 친구까지 있 어, 나 역시 감동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솔봉이 부모님들의 모임에도 종종 함께한 다. 여차하면 자식에게 부모의 욕심을 쏟아붓는 비장애아 부모들의 사랑보다, 어쩌면 솔봉이들의 부모 사랑이 더 깊고 성숙함을 본다. 대방동 성당 의 ‘솔봉이 미사’는 이제 소문이 나서, 양평 수원 등지에서 오는 솔봉이들도 있다.

1977년 4월부터 1979년 10월까지 2년 7개월 동 안 나는 한센인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면서 치료받는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국립소록도병원은 보건복지부(당시 보건사회부) 소속기관으로 여의도의 2배 크기 면적이며, 섬 전 체가 병원으로서 직원과 그 가족, 한센인들 외에 외부 민간인은 거주하지 않는 곳이었다. 많은 환 우들이 눈뜬 소경에,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 손에, 다리가 절단된 분들이었다.

 소록도에 부임해서 한 달 정도까지는 꺼림칙 한 느낌 때문에 환우들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웠 다. 아침에 치료본관에 출근하면, 현관에서 의료 부장실까지의 복도에 놓인 긴 의자에는 치료를 받으러 온 환우들이 늘어 앉아 있었다. 처음 한동 안은 그 복도를 지나 내 방까지 가는 것도 부담스 러웠다. 그 복도 중간에 오스트리아에서 온 마리 안느와 마가렛트 간호사들의 치료실이 있었다. 어느 날 복도를 지나다 그들과 인사하고 이야기 를 나누게 되었다. 파란 눈에 노란 머리를 지닌 이들은 오스트리아 ‘그리스도왕 수도회’ 소속 평 신도 재속회원들인데, 그곳에서는 수녀님으로 불 렸다. “어디서 왔어요?” 영어가 나올 듯한데, 유 창한 우리말이었다. 갓난아기 우유 먹이듯 사랑 이 가득한 표정으로, 할머니 환자 한 분을 안고 우유를 먹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의 밝은 표정으로 웃는 얼굴도…. 그 순간 나는 뒤통 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아찔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외국인이 우리 환자를 저 렇게 돌보고 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안면이 있는 환우와 인사를 하고, 악수와 안부도 나누게 되었다. 복도에서 나는 냄새에도 차차 익 숙해졌다. 마리안느와 마가렛트의 헌신은 놀라웠 다. 나도 환우들의 가정방문도 하고, 어려워하는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들은 나를 은인이라 생 각하여 성당에 모여 드리는 ‘은인을 위한 기도’에 나를 넣어 기도를 바쳐주기도 했다.

약육강식과 이기주의 원리가 지배해온 세계 질서를 인류 공영의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가치 있는 노력 속에서 희년을 지내고, 또 지내가야 할 우리 평신도들의 의식은 어떠했고, 또 어떻게 새 로워져야 할 것인가? 내 이웃을 어떻게 받아들이 고, 어떤 관계로 서로 어울리며, 이웃의 범위를 어떻게 넓혀갈 것인가? 나는 ‘나’만이 아니라 또 하나의 ‘너’일진대, 희년을 지내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우리는 내 이웃의 범위를 우리와 다른 모든 이들로 넓혀야 ‘더불어 함께, 하느님나라로’ 지향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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