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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평신도
  • 2018년 겨울 / 계간 62호
    희년의 정신으로 새롭게 출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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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특집] 약 속
첨부 작성일 2019-01-08 조회 589

‘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 독후감 공모 최우수상 작품 

약 속 
- 『불꽃이 향기가 되어』를 읽고 -

김태홍 대건 안드레아 / 광주대교구 남동성당

주일미사가 끝나고 들른 골목은 여전히 한적 했다. 무겁게 발길을 옮겨 가까이 다가가 첫 번째 집 대문이 보이자 곁에 있던 딸애한테 묻는다.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알겠니?” “응, 그때 그 할머니 댁이잖아.” 별로 생각해보는 기색도 없이 답하는 걸 보니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곧바로 생각지도 못한 물음을 내게 던진다. “아빠, 오늘 할머니 보러 가?” 아이의 질문은 고요하지만 거센 소용돌이가 되어 날 몇 해 전 이 골목으로 빨아들였다.

로사 할머니와의 첫 만남은 4년 전 봄이었다. 당시 내가 소속된 단체에서는 본당 내 빈첸시오 회와 연계하여 근방의 독거 어르신들을 1대1로 방문하여 말벗도 돼드리고 이것저것 필요한 일을 도와드리는 봉사가 추진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전담하여 봉사하게 된 분이 로사 할머니셨다. 성 당과 꽤 떨어진 골목길에 위치한 댁으로 찾아가 뵈니 이미 여든다섯을 훌쩍 넘긴 고령이신데다 관절염으로 미사참례도 어려운 편이셨다. 

“내가 욱고녀(旭高女) 출신이여. 욱고녀!” 

두세 평 남짓한 방에 들어와 인사를 드리자마 자 카랑카랑한 첫마디로 당신이 살아온 날을 풀어내시기 시작하셨다. 반세기가 넘도록 안으로 삭이고 쟁여놓았던 세월들이 긴 호흡의 이야기로 되살아난다.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지방 군수의 딸로 태어 나 신식교육을 받으며 유복하게 자랐다고 한다. 평탄한 청춘의 끄트머리에 음악가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부족함 없이 지내신 것까지가 삶 의 달콤한 초입이라면 몇 해 전 할아버지를 떠나 보내신 뒤 홀로 지내시는 단칸방은 애달픈 뒤안 길이었다.

그날 할머니의 사연과 쓸쓸한 골목길의 풍경 이 못내 애처롭게 각인되었던 걸까. 한 달에 두 번씩 정해진 횟수대로 착실히 찾아가 파스며 로 션을 발라드렸고 간단한 안마도 해드렸다. 어느 주일에는 종일 적적해하실 할머니를 위 해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는데 그 무렵 유치원생 이던 딸애의 재롱에 아껴놓은 간식을 내주시며 즐거워하셨다. 처음 뵌 이래 가장 밝게 웃으시던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내 안 깊은 곳에서 치밀어올랐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그때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했 다. 빠지지 않고 봉사를 다니던 여름이 지나 산과 들이 서늘해지자 여행이며 각종 행사가 늘어난다. 고민 끝에 이번주에는 못 갈 것 같다는 전화 를 드리자 아무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란 할머니 의 말씀에 편하게 한 주를 건너뛴다. 대부분 이런 변명은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쉬운 법이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이랑 놀러가기로 했는 데 어쩌지? 할머니는 그냥 다음주에 찾아뵈어야 겠다.’

그러나 다음주에는 또 다른 약속들이 기다리 기 마련이었으니 처음에 조그맣던 핑계가 미세한 균열이 되어 마음의 둑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때 마침 할머니께서도 많이 바쁘면 그리 자주 안 와 도 된다고 하셨으니 제법 그럴듯한 변명거리도 생긴 셈이었다. 그렇게 방문하던 횟수가 적어지 는 만큼 가슴속의 열기도 점점 식어간다. 그러던 언젠가부터는 한 달에 두 번 방문해야 할 소임을 잘 지내시냐는 안부전화 한 통으로 갈음하고 그 얼마 뒤에는 주일마다 드리던 전화마저 뜸해지게 되었다. 그런 채로 연말이 지나고 이듬해 정월이 되었 다. 새해 인사도 드릴 겸 할머니 댁을 찾아야겠다 고 마음먹던 차에 빈첸시오 봉사자에게서 할머니 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게 되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미 아득 해져버린 마지막 만남 때 외국에 있다는 손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워하시던 모습만이 눈앞에 오 래도록 잔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며 할머니의 죽음에 단 단히 엉겨 붙었던 우울감은 점차 물긋해져 갔다. 연락이 닿은 유족에게 할머니의 생전 모습이 담 긴 사진과 영상을 보내드린 것으로 내 할 바는 다 했으며 여든을 훨씬 넘겨 돌아가셨으니 그래도 호상(好喪)이라는 생각으로 비어 있던 마음을 서 둘러 메워버렸다. 그럼에도 가슴속 어딘가에 딱 딱한 느낌이 남긴 했지만 그런대로 눅일 수 있었 던 것 같다.

그 뒤 두어 번 꽃이 피었다 지고 세월은 사붓이 흘렀다. 나른한 일상에 할머니의 본명도 서서 히 잊어 갈 무렵 애들 책을 빌리던 도서관에서 『불꽃이 향기가 되어』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평 신도 다섯 명의 일대기를 주석과 사진을 곁들여 기술한 서적으로 첫 장을 펴자마자 그 자리에서 한 번 읽고 다시 대출을 받아 읽어볼 정도로 흡입 력이 대단했다.

사실 처음 읽을 때는 그들의 영성보다는 인간 적인 행적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가령 김익 진 선생이 베이징 대학에 다니던 시절 모택동과 의 친교로 홍군(紅軍)에 입대한 일이며 빈농의 자 제로 태어난 김홍섭 판사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 난 지 1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일들이 그렇 다. 서상돈 선생의 경우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신 자의 자손이었지만 빼어난 인품과 상재(商材)로 조정의 조세시찰관으로 등용되었으니 웬만한 대 하드라마의 소재로도 손색이 없다. 제주도 초대 교육감을 지낸 최정숙 여사와 제2공화국의 총리 를 지낸 장면 역시 고난을 이겨내고 시대의 표상 으로 우뚝 섰으니 더 말할 게 없으리라. 하지만 두세 번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 들었던 생각은 빗나가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양 은 각각 달랐지만 그들 삶의 안쪽에는 똑같은 고 갱이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익진 프란치스코는 도쿄의 간다(神田)거리 고서점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처음 접 했을 때 결심했던 것처럼 훗날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바치는 데 한시도 주저하지 않았고, 김홍섭 바 오로 역시 병마의 고통 속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죄수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길 멈추지 않았다. 최정숙 베아트릭스는 어찌 하였던가. 일찍이 수녀가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항일 전력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평생 독신으로 써 온 삶을 민족의 개명(開明)에 바쳤으니 주님 보 시기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종이 또 있을까. 서상돈 아우구스티노와 장면 요한은 각각 나라를 움직이는 거상과 재상이 되는 영광을 누렸 지만 경술국치와 5·16 군사정변이란 장벽 앞에 자신이 세웠던 지고한 뜻이 꺾이는 고난을 맛봐 야 했다. 그럼에도 겸손히 순명하여 남은 생을 오 로지 주님을 섬기며 생을 마쳤다.

이처럼 다섯 명 중 어느 한 사람의 생애도 쉽 고 녹록한 면이 없다. 구한말부터 분단에 걸친 혼 란의 시대 속에서 가질 만큼 가졌고 배울 만큼 배 웠으니 한순간만 편히 맘먹으면 그렇게까지 어렵 게 지내지 않아도 될 이들 아니었던가. 그런 이들 을 한곳으로 이끈 힘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세속에서 채워질 수 없는 복락(福樂) 이었으니 모두 하느님께 기대어 자신의 작은 안 락을 버린 채 주위의 수많은 이들에게 아낌없이 손을 내밀었다. 지쳐 쓰러진 이웃을 안아 일으키 던 그들의 손길들이 믿음의 불꽃으로 타올랐을 때 세상은 주님의 맑고 깨끗한 향으로 가득 채워 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는 백년의 시간을 넘어 약속이 란 단어로써 날 기나긴 묵상의 길로 이끌었다. 여 러 가지 일들이 떠오르고 사라졌지만 길의 끝에는 주님, 그리고 로사 할머니가 계셨다. 그때 난 도대 체 뭘 했던 걸까. 해선 안 될 짓을 하다 들킨 아이 처럼 부끄럽던 지난날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난 분명히 가톨릭 신자다. 주일이면 미사를 참 례하고 누구 하나 해코지한 적 없이 나름 선량하 게 살아왔으니 타인의 눈에는 깨나 독실한 신자 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진 실은 그런 내 신앙이 군내를 겨우 면한 냇내로 채 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믿음이란 불꽃 을 태우더라도 그 안에는 나태와 위선이라는 불 순물이 섞여 있으니 어찌 곱고 청아한 향을 낼 수 있을까.

누가 뭐라 해도 이웃과의 약속 하나 끝까지 지 키지 못했으며 마치 옛 로마시대의 기억말살형이 라도 내리듯 잊으려고만 했다. 실제로 로사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한 번도 댁이 있던 골목을 찾지 않았고 심지어 갈 일이 있다면 멀리 돌아가 곤 했으니 이미 난 불씨 하나 없이 어둡고 차가워 진 내 양심과 대면하기 싫었던 게 아닐까. 헤아려보건대 신앙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약속일지니 일어나 올리는 아침기도는 그 에 대한 다짐이며 잠자리에서 드리는 기도는 오 늘 하루 자신에게 주어졌던 약속에 대한 성찰이 다. 그러니 평신도로 산다는 것은 곧 세상의 일원 으로서 그 약속들을 하나 둘 충실히 지켜간다는 의미일 게다. 그래서인지 딸아이의 물음이 마음 한구석에 쓰리게 파고든다. 이제는 지키고 싶어 도 지킬 수 없게 된 약속이 더없이 아프게 꿈틀거 리는 것이다.

실로 오랜 시간을 돌아 로사 할머니 댁을 찾아 왔다. 4년 전 처음 왔을 때처럼 내 안에 하느님의 불꽃을 오롯이 간직한 채 살 수 있을까. 대문 앞 에 서니 죄송한 마음과 함께 다시는 뜨거운 가슴 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할까 싶은 두려움에 한없 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가장 딱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복음 말씀 하나가 메마르 고 차가운 가슴 한가운데에서 떠오른다. 그리고 조금씩 따뜻하게 스며든다. 오래전 사랑을 알지 못하고 헤매던 날 주님께서 이끌어주신 것처럼 부디 내게 남은 시간 동안 주님의 품으로 이웃들 을 보듬어 줄 수 있기를. 할머니를 위해 떨리는 손으로 성호경을 긋는다. 발길을 옮기려던 찰나 중천에 뜬 태양이 구름을 걷 어내고 골목을 구석까지 환히 비춘다. 그 사이로 바람이 시원한 입김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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