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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 나의 아버지 송 주교
첨부 작성일 2019-01-08 조회 647

나의 신앙 선조 

나의 아버지 송 주교

송영오 신부 / 수원교구 상현동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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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정에 관한 강의를 할 때면, 사람은 각자가 자라난 가정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내가 성장한 고향 장호원에 대하여 종종 이야기한다. 쌀과 복숭아로 유 명한 장호원의 시장통에서 그릇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어 린 시절을 보내다 보니 5일마다 들어서는 시장 안에서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 나게 되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일찍 알게 된 것도 사제가 된 지금 돌아보면 감 사해야 할 일이다. 또한 가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먼저 인사를 건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도 내가 사제로서 살아가는 데 얼마나 소중한 밑천이 되 었는지 모른다.

나는 어려서부터 열성적인 아버지에게서 신앙교육을 받았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으니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간들 무슨 원망 을 할 수 있는가?” 하시며, 늘 구약시대의 ‘욥’ 성인을 당신 신앙의 기초로 생각하 셨다. 아버지는 양복보다는 가죽점퍼를,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즐겨 신으시는 털털 하신 분이시다. 아버지는 늘 오토바이 기름통에 나를 태우고 평일미사를 다니셨 고, 내가 첫영성체를 받는 날부터 제단에서 복사하는 법을 가르치셨으며, 입버릇 처럼 신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신부가 되는 것 그것이 곧 당신 신앙 의 완성이요, 소원이셨던 것이다. 40대 초반에 본당 총회장이 되신 아버지는 본당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셨고, 궂은일이 생기면 언제나 도맡아 처리하시 는 장호원 성당의 해결사이셨다. 초상이 나면 늘 우리 집으로 제일 먼저 연락이 왔 고, 구성진 아버지의 연도 소리는 인간문화재 그 자체였으며, 돌아가신 분을 위한 염습은 하느님께서 아버지께 내려주신 천직으로 생각하셨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에게 고약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장호원 성당은 늘 초임 본당신부가 대부분이고 젊은 신부들인데, 아버지는 신부들에게 술을 너무 많이 권해 서 곤경에 빠뜨리게 만들었다. 혹 술이 센 신부들을 만날 양이면 신부가 술을 많이 마셔서 어떻게 사목을 하느냐는 식으로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셨다. 다혈질적인 성 격과 물불 안 가리는 행동으로 본당신부님과 수녀님들을 힘들게 하시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송 주교’라는 별칭을 얻게 되셨고, 주교님도 인정하시는 수원교구의 유명인사가 되어 버리셨다.

젊은 시절, 본당을 신설하면서 손수 질통을 짊어지고 구슬땀을 흘려가며 지은 성당, 신자들이 함께 시멘트를 비벼서 만든 콘크리트 교육관, 그리고 업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어가면서 기초를 튼튼하게 했던 사제관과 수녀원 등 장호원 성당의 모 든 건물 하나 하나가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있는 것들이었다. 성당 구석구석 어디 에 무엇이 있는지 훤하게 꿰고 계시면서 장호원 성당의 산증인으로서 당신의 자리 를 굳건히 지키는 분, 나의 아버지 송 주교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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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릇가게를 운영하시는 아버지께서 갑자기 스테인리스 밥주발과 촛대 를 꺼내 놓고는 “교구 행사 때 많이 사용하는 성합을 스테인리스로 만들어 쓰는 것 이 어떨까?” 하셨다. 그러고는 촛대 위에 밥주발을 올려서 행사용 스테인리스 성 합을 만드셨다. 지금 많은 교구에서 행사용으로 쓰는 스테인리스 성합의 원조가 된 것이다. 그 이후 내가 신부가 될 무렵, 외국에서 값비싸게 들여오는 성작과 성 합을 좀 더 저렴하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셨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틀을 만들어 포도 문양도 새겨 넣고 도금을 하여 제법 품위가 있는 성작과 성합을 만드셨다. 저 렴하면서도 손색이 없는 국산품으로는 처음으로 거룩한 그릇을 만드신 것이다. 지 금도 우리 교구에서 서품을 받는 신부들이 주교님께로부터 받는 성작이 바로 아버님의 작품인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제단에서 미사를 봉헌할 아들을 사제로 봉헌하시고, 그 아들이 제단에서 미사를 드릴 때 사용할 그릇까지 만들어 봉헌하신 것이다. 50년간 그릇 가게를 이어 오시면서 당신의 신앙과 열정을 가장 고귀하고 가치 있는 그릇으로 승화시켜 성작과 성합을 만들어내신 것이다. 이것이 아들을 사제로 봉헌한 아버지 의 두 번째 봉헌물인 것이다. 막내아들이 사제로 봉헌되기를 소원하시며 한 평생 오직 그릇가게만 운영하신 아버지는 봉헌된 아들 사제의 손을 통해 당신이 만들어 제단에 봉헌한 성작과 성합으로 당신의 삶을 봉헌하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의 잔으로 미사를 봉헌하며 사랑과 정성으로 성작을 마련해 주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마도 이 다음에 아버지께서 하늘나라에 가셔서도 아들 의 미사 봉헌에 마음을 더해 주시기 위해, 영원히 잔 속에 남아 계시고 싶어 마련 해주신 선물일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 아무런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아 버지는 당신의 일생을 통해 가장 값지고 귀한 선물을 내게 주셨다. 어쩌면 아버지 는 미사성제에서 사용되는 당신의 성작을 통해 영원히 아들과 함께 하느님께 봉헌 되기를 원하고 계시는지 모른다. 아들의 손을 통해 받들어진 당신의 성작으로 은 총의 선물이 세상에 넘쳐흐르기를 바라고 계신 것이다. 이런 나의 아버지가 너무 나 자랑스럽다. 아버지는 성작을 만드시고, 나는 그 성작으로 미사를 봉헌한다. 이 미 50년 전부터 사제가 될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당신의 소명을 준비하셨고, 결국 하느님께 당신의 그릇을 봉헌하셨으니 아버지 역시 성소자요, 사제이신 것이다.

장호원 그곳에 가면, 당신의 가업을 이어줄 것으로 믿던 둘째 아들의 죽음을 가 슴에 묻으시고 애비 없는 손주들을 아들 대신 키워내고자 오늘도 여든 노구를 이 끌며 힘찬 빗자루 소리로 새벽을 여시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가 계신다. 아침이 면 묵주기도를 바치며 흔들어대는 수천 번의 털이개질에 당신의 한숨을 감추고 그 릇가게를 지켜왔던 아버지이시다. 그런데 요즘은 젊은 날 오토바이를 타며 본당 총회장으로 신부님과 함께 공소 구석구석을 누비던 당당하고 활기찬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는 밥 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병약하고, 점점 기억이 사라져 가는 불쌍한 노인만 남아 있을 뿐이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구 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생겨 난 우울증과 무기력은 아버지의 과거를 차츰차츰 지워가고 있다. 아버지와 병원을 다녀온 어젯밤은 아버지의 인생을 생각하며 밤새 어린 시절을 생각하였다. 오토바 이 기름통에 나를 태우고 매일 미사를 다니며 복사를 가르쳐 주어 제단에 서게 해 주신 나의 아버지 송 주교님은 장호원 성당의 역사요, 우리 가족들의 영웅이며, 송 신부의 영원한 자랑이시다. 아버지 힘을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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