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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봄 / 계간 63호
    김수환 추기경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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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야기] 토마스 아퀴나스
첨부 작성일 2019-03-31 조회 565

주보성인과 나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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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요 토마스 아퀴나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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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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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토마스’라는 이름에 친숙감이 든다. 아마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란 장편소설 때문일 것이다. 70년대 대학을 다닐 때 나는 한 선배 때문에 이 소설에 푹 빠졌었다. 그 선배는 1,000페 이지가 넘는 두툼한 이 책을 항상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언젠가는 이 책을 뛰어넘는 소설을 쓰고 말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다녔다. 그 선배는 지금 한국문단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 선배 영향으로 나도 이 소설을 읽겠다고 덤벼들었는데, 다 읽는 데 5년이 걸렸다. 제1차 세계대전 탓도 있지만 토마스 만은 이 소설을 완성하는 데 12년, 나는 읽기만 하는데 그 반의 세월 이 걸렸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인류가 고민했던 온갖 사상을 나열하면서 촘촘히 짜간 서사구조를 대학 신출내기가 독해하기는 쉽지 않았 다. 문장도 엄청 난해하다. 독문과생들에게 듣기로, 토마스 만은 만연체 문장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이로 평가받는단다. 게다가 불어까지 무지막지하게 튀어나와 그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 넣는다는 것이다. 번역물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나는 어려운 내용에다 엉터리 번역이 겹쳐 중간에 책을 집어던졌다. 대학원 졸업 때 다시 집어들어 겨우 끝낼 수 있었다.

 

이렇게 공들여(?) 읽은 결과, 그 내용의 상당 부분은 알게 모르게 나의 정신적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토마스 만은 게르만 특유의 이원적 대립에 지배당하지 말고, 거꾸로 대립을 지배하고 전진하라고 말한다. 이원적 대립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사상과 사상의 대립으로 나타나지만, 결국 개인에게는 죽음과 삶의 대립 으로 귀결된다. 그는 명실 공히 20세기 독일 최고 사상가이자 소설가로 꼽히는 노벨상 수상자다.

 

대학을 다니면서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 세 가지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그것이다. 당시 신학대전 번역본이 없다는 것을 안 나는 곧 목표를 단테의 『신곡』으로 교체했다. 지금도 신학대전은 못 읽었지만, 나머지 세 가지는 다 읽었다. 몇 년 전 ‘가톨릭매스컴상’ 심사를 하면서 ‘출판 부문’에 출품된 신학대전 번역본을 본 적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나는 ‘신학대전은 못 읽고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 본으로는 ‘이해불가’일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대학 졸업 후 늦게 세례를 받기로 한 것은, 지금 돌이켜보면 ‘토마스 아퀴나스’를 세례명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 그 이름을 내 영명으로 쓸 수 있다니….’ 나는 조금 감격하기까지 했다. 읽어야겠다고 작정했으나 아직도 읽지 못했고, 읽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책을 쓴 사람이 아니던가. 언젠가 한 친구가 “그 영명 좀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물었 던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가톨릭교회는 가톨릭의 의미를 토마스 아퀴나스가 정리한 바에 기대고 있다. 방대한 저술로 큰 산맥을 이룬 성인의 이름을 내 이름과 함께 쓴다는 게 사실 부담스럽다. 남들이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왠지 모르겠지만 기쁘기도 하다.

 

 

 

멘토로 지도하는 학생 P가 연구실로 찾아왔다. 취업이 힘들어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단다. 부모님 권유로 정신병원에도 갔다 왔단다. 학생 부모는 두 분이 다 의사다. 정신병원 진료를 의사 부모가 권했다면, P에게 그런 조짐이 있는 건 사실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P는 그동안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축 늘어져 있을 때가 많았고, 과제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학교 특성상 전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기숙사 룸메이트 얘기로는 한밤중에 성경을 펼쳐놓고 아령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한단다. 그가 무섭다고도 했다.

 

『마의 산』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는 사촌 요하임 침센을 문병하기 위해 알프스 산속 다보스에 있는 베르그호프 결핵요양소를 방문한다. 베르그호프에서 카스트로프는 자신도 결핵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요양원에 눌러앉는다. 이후 카스트로프는 7년 동안 진보주의자, 반자본주의자, 신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예수회원, 이상주의자, 쾌락주의자 등 요양원의 다른 환자들과 교류하고 논쟁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넓혀 나간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대의 전환점에서 세계는 욕망이 질주하는 장이었다. 그런 장에서 벗어난 알프스 산허리에 자리잡은 요양소에서 카스트로프는 치열하게 내면을 탐색했다. 이런 베르그호프를 토마스 만은 ‘마의 산 (魔의 山)’이라는 의미로 형상화했다.

 

90년대 대학생들이 통과의례처럼 읽었던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였다. 처음에는 출판사가 ‘노르웨이의 숲’으로 제목을 직역했다가 폭망(?)했다가, ‘상실의 시대’로 바꿔 재출간해 우리나라에서 대박을 쳤던 작품이다. 이 소설 엔딩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장(章)이다. 세상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스토리는 끝난다. 그런데 소설 속에는 주인공 와타나베가 캠퍼스에서 『마의 산』을 탐독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베르그호프 결핵요양소, 상실의 시대 속 캠퍼스, 오늘 우리 대학가 모두 ‘마의 산’인 듯하다.

 

P도 삶과 죽음이 대립하는 마의 산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는 걸까. 시대는 젊은이들을 ‘n포세대’ 로 몰아가고 있다. 그들은 우리 세대에 비해 대학 진학률도 높고, 외국어 실력도 좋으며, 외국인에게도 당당하다. 뉴미디어 기기에도 능숙해 그들을 ‘테크놀로주아지’라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능숙한 그들이 경제적 주도권만은 아직 쥐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 내가 권했다. ‘성당에 나가보는 게 어때?’ 그가 눈을 가느다랗게 좁히면서 나를 쳐다보더니 이것저것 물었다. 나는 대답해주는 대신, 블루투스가 연결된 컴퓨터 유튜브에서 즐겨찾기 해놓은 성가 몇 곡을 들려주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리고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했다.

 

며칠 후, 그가 찾아와 한 학기 휴학하고 자신을 정리하면서 성당에도 나가겠다고 알려왔다. 부모님 집 근처에 성당이 있어서 거기로 가겠단다. 가지고 있던 성경을 선물로 주었다. 자기도 가지고 있지만, 선물로 받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례명을 어떻게 짓는지 물었다. “교수님은 왜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했어요?”라고도 했다. 학교에 서 세례명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편이라 내 세례명을 알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 얘기를 듣고 난 그가 자기도 세례를 받게 되면 나랑 같은 세례명으로 하겠단다.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세례명으로 “교수님이 기뻤던 것처럼 자기도 기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대부를 서 줄 것도 부탁했다. 교리공부부터 하고 천천히 결정하라고 했다. 새 학기가 다가오지만, 올봄에는 그를 볼 수 없다. 작년 말 겨울방학을 맞자 그는 서둘러서 짐을 싸고 따뜻한 남쪽 부모님 집으로 내려갔다.

 

하느님은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사래에게는 ‘사라’를, 야곱에게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이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고 새롭게 태어났다. 민족과 나라의 시조가 된 것이다. 내려간 후 P는 한 번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도 연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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