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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례] 도앙골에서 온 편지
첨부 작성일 2019-06-15 조회 461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도앙골에서 온 편지


김영숙 리디아 / 순교자현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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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4일부터 4월 6일까지 2박 3일간의 성지순례를 40여 명이 함께 다녀왔다. 다른 해와 달리 올해의 성지순례는 특별하게 우리 모두 오직 하나만을 바라보았다. 조선의 두 번째 방인 사제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을 만나러 가는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떠난 머나먼 유학길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부모님의 순교 소식에 아픔도 접어두고,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알 수가 없다. 함께 떠난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귀국한 후, 조국으로 돌아오는 귀국 방법을 모색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아려 온다.


드디어 고국을 떠난 지 13년 만에 조국 땅을 밟았지만, 앞에 놓여 있는 일들이 너무 많아 쉴 틈도, 어린 동생들을 만나 정을 나눌 시간도 없이 12년의 긴 세월을 신자들만을 만나기 위해 박해의 위험에 숨어 다니며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교우촌을 찾아다니셨다. 해마다 7,000리의 길에 흘린 땀으로 얼룩져 있을 신부님의 행적을 따라가 보며 최양업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하며 순례를 떠났다.


그러나 5개도 관할지역 그 모든 곳들을 가볼 수도 없고, 대부분은 흔적이 없는 곳들도 많아 지금까지 남아 유지되고 있는 사목지 가운데 귀국하여 첫 번째, 스승 신부님께 보낸 일곱 번째 편지 ‘도앙골에서 온 편 ’에 답장을 들고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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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남도 부여군 금지로 302 도앙골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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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평협 성지 순례 안내장


2박 3일의 순례는 명 동성당에 모여 시작기도로 출발하여 부모님이 순교 하시기 전에 동생들과 함께 사시다 체포되셨던 수리산 성지에서 미사 시작했다. 온 가족의 마지막 삶의 현장이며 아버지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어 훗날 가끔씩 들려 생각에 잠기시곤 했다고 전해지는 언덕에서 우리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드리며 배티 성지로 옮겨갔다.


신부님의 사목 거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배티 성지에서는 최양업신부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박물관에서는 인근 여러 교우촌들의 역사와 그림으로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나마 함께 그때의 그 시간에 머물렀다.


다시 출발한 순례자들의 발걸음은 신부님께서 머무시며 사목 보고서를 썼던 유서 깊은 부여의 홍산 도앙골 교우촌에 멈추었다. 천신만고 끝에 귀국하고 어떻게 몇 달의 시간을 보냈는지 스승 신부님께 보낸 편지를 함께 읽고 묵상하며 주모경을 바치는데, 이 골짜기에서 신앙의 터전을 일구며 숨죽이며 기도하셨을 신자들 모두가 우리를 반겨 주시는 듯 느껴졌다.


숙소로 이동하여 우리 모두는 도앙골로 들고 갔던 편지를 최양업 신부님께, 혹은 돌아가서 만날 나에게 써서 보내는 시간을 가지며 하루의 순례를 끝냈다.



둘째 날은 최양업 신부님이 부제품을 받고 처음 밟은 고국 땅인 군산의 신시도에서 시작했다. 귀국로 탐색과정에서 탑승한 프랑스 배가 거센 풍랑으로 표류되고 자유롭지 못한 처지로 한 달 동안 기착하며 몰래 조선 신자와도 만날 수 있었던 곳이다. 고국 땅을 떠나는 배를 다시 타고 싶지 않았을 마음이 느껴진다.


다음으로 먼 길을 움직여 충청북도 보은의 깊고 깊은 구병산 골짜기에 자리한 멍에목 성지로 향했다. 멍에목은 최양업 신부님이 성사를 주고 미사를 봉헌했다고 알려진 사목 순방지로 여덟 번째 편지에 나오는 교우촌이다. 초기부터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모여 살았고, 몇 차례의 박해로 잊혀져 가던 곳이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순교사적지로 다시 조성되어 너무나 반가웠다. 그곳에서 잡혀 순교하신 복자들과 하느님의 종 최양업 신부님을 기억하며 우리도 미사를 봉헌하고 문경으로 향했다.


문경새재는 최양업 신부님이 경상도와 충청도 지방의 사목방문을 하며 넘나들던 곳이다. 이 길의 2관문 조금 못 미친 곳, 산 중턱에 일명 ‘기도 굴’이라 불리는 자연동굴이 있다. 박해를 피해 교우들과 함께 숨어 지내며 신자들이 십자가를 모셔 놓고 기도하던 곳이라 전해져 안동교구가 순례지로 지정하고 주변을 단장해 놓았다. 머리를 숙이고 앉은걸음으로 들어가야 하는 굴 속에 우리 모두 모여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소리 내어 기도했다. 이 기도굴과 이 길을 수없이 넘나 들던 신부님은 가까운 진안리의 길 위에서 과로로 쓰러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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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의 배론 성지(2019년 4월 6일)


날이 밝고 순례의 마지막 날을 진안리 성지에서 시작하였다. 최양업 신부님은 사목보고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시다 과로에 병까지 얻어 진안리의 주막에서 쓰러지셨고, 소식을 듣고 오신 푸르티에 신부님의 성사를 보고 선종하셨다.


“푸르티에 신부가 그에게 마지막 성사를 줄 수 있을 만큼 일찍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부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어가는 그의 입술에서 아직 새어 나오는 말이 단지 두 마디 있었으니 그것은 ‘예수 마리아’였습니다.” 이 젊은 조선인 신부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아직은 보내 싶지 않은 애통한 마음을 담은 베르뇌 주교님 의 편지글을 읽으며 여기에 다다라서는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최양업 신부님을 마음 가득히 담으며 길을 떠나 시신이 운구되어 안장된 배론 성지로 길을 재촉하였다.


배론 성지는 순례자들이 많이 갔던 곳이기에 너무 익숙했으나 우리는 도착하며 무엇보다 먼저 신부님의 묘로 달려가 참배하고 우리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순례를 마무리 하는 미사를 봉헌하였다.


어린 나이에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가족과 헤어져 머나먼 타국에서 부모님의 순교 소식에 흘린 눈물과 사제가 되어 돌아오셔서 이 땅의 신자들을 위해 노력하신 힘들었던 그 수많은 날들의 순간순간들을 조금이라도 가슴에 새기고 싶었다. 무엇보다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가 끊이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우리의 순례길을 마무리 지으며 서울을 향해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풍수원 성지와 가까운 산 너머 느루개 마을에 있는 최양업 신부님의 가족묘를 참배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신부님을 사제로 봉헌했던 가족들이 천주학쟁이로 살아내야 했던 시간은 얼마나 혹독했을지 모두 알 수 없지만, 부모님의 순교 후에 동생들과 그 후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잠시 이야기 들으며 신부님을 우리에게 보내준 가족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죄송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 떠났던 순례의 길을 마치며 신부님이 “저 박해자들이 우리 주 하느님을 기쁜 마음으로 자유롭게 섬기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라고 도앙골에서 보낸 그 편지의 답을 당신이 이루어 주셨다고 크게 외치며 집으로 향했다.



“지극한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저희가 소망하는 대로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복자와 성인들 반열에 들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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