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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례] 나의 기도 이스라엘, 요르단 순례기
첨부 작성일 2019-06-15 조회 446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나의 기도 이스라엘, 요르단 순례기


박준형 프란치스코 / 서울 구의동 본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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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 순간을 걷고 있자니 산다는 게 걷는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생명들, 그것들이 각자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느끼기란 쉬운 듯하면서도 쉽지 않다. 고결한 삶이 생명의 의미를 추구하는 걸음이라고 가정한다면, 신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그 여정의 최후에서 그분께서 물으시려나. 당신의 위치가 아니라 당신의 자취에 대해서.


이스라엘로 출발하기 직전 나는 지인의 부고를 들었다. 심장마비라고 했다. 비행기에서 눈을 감고 그에 대해 떠오르던 기억들을 헤집었다. 모두가 내일에 대해선 잘 몰랐다. 과거를 걸어오고 오늘을 사는 게 사람이었다. 내일을 알 수 없어서 그토록 기도했을까? 항상 구원을 바랐다. 가장 성스러운 체험조차도 생이 어떤 순간 어떠한 결론을 맺을지 답을 알려주진 않을 것이다. 구원은 기복의 대답이 아니라 아마도 가장 슬픈 질문의 모 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순례 내내 이제는 없는 수 많은 생명들을 기억하고 또 상상했다.

 


2.


도착한 그날 익숙하지 않은 중동의 음악이 도시의 밤과 낯설게 어울리고 있었다. 거대한 수녀원 뒤로 작은 불빛들이 선명한 선을 그려냈다. 새벽을 지나 곳곳으로 해가 쏟아지자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 있는 주님탄생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도시는 그 옛 모습을 저 밑에 숨겨두고 있다. 성모의 집터였던 1층 아래로 석조의 싸한 기운이 올라왔다. 기억 속의 성경 구절을 떠올리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이곳의 날씨는 기묘하리만큼 종잡을 수 없었다. 때때로 하늘은 비를 쏟아 붓고 거주민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처마 밑으로 들어가 잠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예수께서 30년을 나고 자란 곳은 그때의 광경을 거의 잃었다. 단지 그로부터 시작된 그의 유산들이 도시 곳곳에 산재했다. 좁은 시장골목에서 본 그리스정교회 성당의 아름답고도 음울한 광경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스라엘은 감정의 도시였다. 사랑과 증오, 차별과 멸시, 용서와 화해가 복잡하게 뒤섞인 곳이었다. 누군가는 신앙을 위해 이곳 어딘가로 숨고 누군가는 이 땅 자체가 거대한 사명이며 다른 누군가에겐 끝없는 생의 전쟁터이기도 했다. 그렇게 복잡한 인간의 삶과 번뇌가 흘러가는 어디에도 신의 숨결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이곳은 신께서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나는 거대한 사원처럼 평야 위로 혼자 솟아오른 타볼산 정상의 수도원에 앉아있었다. 그곳으로 비가 그치고 실크 같은 햇빛이 잠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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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롭게 휴식 중인 예루살렘의 노인



3.


갈릴래아로 향하여 드넓은 호수를 바라본 건 이튿날의 기억이다. 맑은 강 위로 순례자들을 태운 배가 떠올랐다. 고요하고 거대한 호수 가운데로 한참을 나아갔다. 예수께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치신 이곳에서는 빵의 기적을 비롯한 여러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화려하게 주조된 성물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한편에서는 베드로에게 질문 하는 예수의 형상이 주조되어 있었다. 세 번을 물으셨다고 했다. 일견 사랑의 서사를 그리는 신약 성경에서도 이 질문들은 의미심장하다. 이곳의 오래된 관습으로 세 번을 물어 대답이 같으면 그것은 정설이라고 했다. 그리고 예수께서 세 번 같은 질문을 하신 것이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순례자들은 번민 속에서 헤맨다. 어쩐지 오래전의 일들이 기억 속에 스쳐갔다. 의심 없이 품을 수 있던 사랑에 대한 원초적인 기억들. 그것은 누구에게나 오랜 기억이면서 먼 곳에 있는 바람이었고 근원적인 욕망이기도 했다. 내게도 그랬다. 그 질문이 모든 시간을 품고 있었다. 때로는 그런 사랑의 영속을 의심하게 하는 수많은 일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불신의 시대에서 질문들은 흩어진다. 하지만 그 파편들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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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넓은 갈릴래아 호수의 광경



4.


태양이 내리꽂고 모래 바람이 한없이 불어왔다. 내내 꼬이던 파리를 손으로 내저으며 젊은 남자가 커피를 타고 있었다. 1달러짜리 커피는 원두 가루에 뜨거운 물을 그대로 부은 터키식 커피였다. 특유의 향에 익숙하지 않아 설탕 없이는 도무지 먹기 힘들었다. 요르단의 커피는 대체로 다 이런 식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 내내 마셨다. 국경을 넘어온 지 몇시간이 되지 않아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래로 수십 미터가 내려다보이는 황무지 위 절벽에 모래바람이 일렁이는데 이곳도 구약의 성지라 하루에도 수천 명이 오간다. 여기서 장사 좀 한다는 사람은 중국인과 한국인의 외모 정도는 구별하고 “일 달라”나 “삼 달라” 정도는 말할 수 있다. 본디 유목하는 씨족인 베두인은 누가 찾아와도 차 한 잔을 대접하고 사흘을 보호해 준다고 했다. 커피를 내리던 그는 나에게 엄마가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던가? 믿거나 말거나. 흰색 벽에는 서툰 한국어가 쓰여 있었다. 그가 결이 보이는 메마른 손으로 커피를 내리는 게 보였다.


국경에선 곤란할 정도로 가난한 풍경이 이어졌다. 그런 이곳에도 성당이 있고 거기서 성모의 핏빛 눈물을 볼 수도 있다. 기적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모습을 초월한 현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 마음에 이는 작은 물결이 모여 거대한 흐름이 되면, 그것이 기적이다. 해가 질 무렵 거대한 절벽들 뒤로 푸른 초목이 보였다. 절벽에 걸터앉아 물 담배를 피우는 청년들 뒤로 뿌연 수증기가 올라왔다. 태양은 산의 허리에 앉아 빛의 길을 그렸다.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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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식 커피를 팔고 있는 요르단의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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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담배를 피고 있는 요르단의 청년들



5.


팔레스타인의 자치지구인 예리코에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누군가가 죽는다는 신호이다. 북쪽으로 이스라엘이 비행기를 띄우는 일은 거의 없어서 어딘가는 곧 폭격을 당할 것이라고 들었다. 모두의 믿음이 동등하게 존중받지는 못한다. 서로가 끝없이 믿음의 종착지를 향하여 행진한다. 갈등이 정점에 이르러 싸움이 되고 전쟁이 벌어진다. 전쟁은 사람에게 깃든 믿음의 정점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사랑은 소멸되어 있다. 오로지 생명이 꺼져가는 신호만 배회한다. 죽은 자의 영역 주변으로는 경계의 울타리가 들어섰다. 무슬림과 유대인들의 경계는 이곳 예리코에선 비교적 불분명하지만 어딘가에는 담으로 둘러싸인 확연한 경계들이 있다. 건물 위 물탱크의 색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숙소 창가 너머로 색이 바랜 천막들과 낡은 건물들, 좀처럼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 보였다. 순례자들은 늘 안전한 길로 다니게 되지만 순례지는 그렇지 못했다. 상처투성이였다. 그리고 도시는 보다 고독해지고 있다.


어딘가에서 수십, 수백의 사람들이 죽었다는 기사를 보게 되면 우리는 숫자를 통해 그 규모를 짐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 개개인에 대해서는 좀처럼 알 수 없다. 수십 명이 죽었다는 건 수십 개의 이야기가 사라진 것이라고 언젠가 누군가 내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수십 개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수만 개의 이야기가 탄생할 것이다. 비극 은 기억을 통해 되새겨지고 미움과 갈등이 거기서 또 자라난다. 이날은 재의 수요일이었다. 머리에 묻은 재가 가루가 되어 하늘로 떠다니는데 성당 옆 학교의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난만하게 주변을 뛰어다니고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6.


금요일이 되자 수많은 이슬람교인들이 사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금요일은 이슬람의 안식일이고 다음날인 토요일은 유대인들의 안식일이었다. 이스라엘의 군인들이 경계초소에 들어서고 세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에는 긴장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도를 한다. 도시곳곳에 새겨진 수천 년의 갈등이 유적에 수없이 흔적을 남겼다. 새벽에 숙소 앞길을 통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길을 따라갔다. 기도를 하면서 지나가는데 유대인 할아버지는 잔뜩 골이 나 있었다. 십자가의 길 끝에서 예수께서 부활한 곳으로, 마침 내 순례자들이 도달한다. 차가운 돌에 머리를 맞대고 기도했다. 세속적인 사람이기에 모든 기적의 순간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생각의 파도가 요동치고 삶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차가운 무덤의 돌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침묵을 지킨다. 그 순간 오롯이 남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대답을 바랐던가? 아무런 바람이 없진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생명에 대해 상상했다. 소중한 의미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이런 나약함조차 품어주시기를.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나오니 새벽을 지나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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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 예루살렘의 시가지 모습



7.


다시 텔아비브로 돌아왔다. 이곳 욥빠의 성당에서 막 나왔을 때 느껴지던 삶의 활기를, 생명의 강력한 의지를 잊을 수 없다. 나는 익숙한 공기들을 떠올렸다. 바다에는 바다의 향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걷기도 달리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했다. 지중해 연안의 도시 위로 오렌지빛 햇살이 스며들었고 얼굴의 근육 위로 얼룩이 그려졌다. 인간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끝없이 기억해 내고 그들의 관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생각이 다다라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지점까지 도달하면 더 이상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익숙한 공기 대신 공허한 마음이 그 자리에 남아있다. 신의 부활 가운데 우리 모두가 새로운 삶의 기쁨을 노래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인간에겐 제가 가진 고유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 나는 이 자리에 없는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비어진 어떤 것도 쉽게 채워지지 않는 법이다. 자꾸만 기도하게 되었다. 이 기나긴 여정의 끝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를. 보석 같았던 삶을 서로 함께 노래할 날이 오리라고. 나는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생의 의지가 한없이 신의 숨결 안에서 요동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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