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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움] 저런 천하에 죽일 놈 !
첨부 작성일 2019-06-16 조회 447

작가를 감동시킨 작품

 

저런 천하에 죽일 놈 !


정성엽 바오로 /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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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인 놈이 사회에 다시 복귀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것이 자명하므로 차라리 죽이는 게 낫다! 사형을 시켜라.


위 글은 내가 지어낸 것이 아닌 얼마 전 있었던 한 살인 사건 기사에 대한 댓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것을 읽는 순간, 저는 갑자기 예수님을 향해 군중이 외쳤을 때를 상상해 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가장 낮은 모습의 사람으로 태어나 죄가 없음에도 사람들의 모함과 시기 질투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우리 예수님을 말이지요.


물론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엄한 벌로 다스리는 것이 맞지만 동시에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의 목숨을 상대로 단죄하는 것 또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하냐고요?


얼마 전에 우연하게 다시 본 영화 그리고 내 가슴속 저편에 아련하게 자리잡은 영화 한 편을 오늘 이 자리에 다시 한 번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해에 쏟아지는 영화만, 작은 독립영화를 제외하고도 2,000편이 넘습니다.


더군다나 인터넷을 통한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나 왓차등을 포함하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영화나 시청각 매개체들의 숫자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많습니다.


매일 그렇게 많은 매체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내 기억에 남은 아련한 영화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내 가슴속 저편에 아련하게 자리잡은 영화 한 편을 오늘 이 자리에 다시 한 번 끄집어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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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 1996)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두 사람이 중심입니다. 사형수인 매튜 폰슬렛과 그를 돕고자 하는 헬렌 수녀. 이야기는 매튜 폰슬렛이 10대 연인 두 명을 납치, 그중 여성을 강간하고 이후 둘 모두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으며 루이지애나 주립 교도소에 6년째 복역 중으로 시작합니다. 무죄를 주장하던 매튜는 도움 줄 사람을 찾던 중 헬렌 수녀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헬렌 수녀는 그를 돕기 위해 직접 찾아 나선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수잔 서랜든 역할의 실제 인물인 헬렌 프리젠 수녀는 영화와는 달리 지금도 진짜 범인은 그가 아닌 그의 동생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녀의 주장에 의하면 원래 실제 인물인 패트릭 소니어(매튜)는 살인 혐의만큼은 무고하나 그동안 비슷한 수법으로 수많은 10대 여성들을 강간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동생을 살리기 위한 마음으로 살인죄를 뒤집어쓴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영화에서도 매튜가 아닌 동생의 죄에 대한 누명이라고 주장하지만 피해자 가족의 반대로 결국 사형집행을 당합니다. 영화에서는 약물주사형으로 죽는 걸로 나오나 실제는 전기의자형으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영화와는 달리 패트릭 소니어는 죽기 전 피해자 남성의 아버지에겐 사과하나 피해자 여성의 아버지에겐 사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형집행 전 피해자 여성의 아버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패트릭 소니어는 죽어 마땅한 인간이라고 했고, 이를 본 패트릭 소니어는 불같이 화를 내며 막말을 퍼부었고, 죽기 전까지 앙금을 풀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 여성의 아버지에게 끝내 사과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동생인 에디 소니어도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복역하다가 2013년, 57세의 나이로 교도소에서 병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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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헬렌 수녀의 주장대로 이 사람이 살인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끝내 매튜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동생 대신 죽었다면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결정한다는 것이 과연 항상 옳은 일일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점점 힘들고 각박해져 갑니다. 우리는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여 주변을 돌아보고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 대한 적극적인 연민과 관심을 가져 보는 자세를 가져보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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