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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남] “바쁘고 힘든 지금의 순간이다 은총이고 기쁨이지요”
첨부 작성일 2019-08-15 조회 336

평신도가 만난 평신도

 

“바쁘고 힘든 지금의 순간이 다 은총이고 기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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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삼 베네딕토 / 제주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대담·정리 나권일 편집위원




고용삼 베네딕토 회장께 전화를 드렸더니 새로 문을 연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방문하려고 제주 신자들과 함께 상경했다고 했다. 제주 평신도들은 늘 일이 많고 바쁘다. 행사나 모임이 있으면 바다 건너 달려와야 하고, 집에 있더라도 제주는 이름난 관광지라서 사시사철 손님도 많다. 하지만 제주 평신도들은 기쁜 마음으로 그 십자가를 받아들인다. 제주는 28개 본당에 레지오 마리애, 꾸르실료, 매리지 엔 카운터(ME), 성령묵상회 등 평신도 활동이 활발하다. 제주평협도 이들 본당과 단체들에 활력을 불어넣고 평신도 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위해 봉사자들이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촌음을 쪼개어 성실하게 말씀하고 답해주신 고용삼 회장께 감사드린다.



제주평협이 40년을 맞았습니다. 평신도 활동이 뿌리내리기 쉽지 않았던 어려운 여건에서 40년 을 이어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주의 천주교 역사는 1899년 4월 22일에 사제가 파견되면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신축교안(辛丑敎案, 이재수의 난)으로 신자들이 많은 희생을 보게 됐습니다. 그 뒤로도 한국 현대사에서 얼마나 고비가 많았습니까. 일제 강점기에 독립과 해방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신 분들, 4.3의 참극에 억울하게 희생된 도민들, 6.25 전쟁에 쓰러져간 분들이 한 둘이 아니지요. 이런 수많은 분들의 희생과 고통이 거름이 돼서 제주와 서귀포, 한림지역에서 신앙 공동체가 조금씩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1955년 골롬반회 신부님의 지도로 레지오 마리애가 조직 되어 활동을 시작합니다. 제주 평신도 활동의 효시입니다. 차츰차츰 열매를 맺게 돼서 1977년 3월 21일 제주지목구가 제주교구로 승격되는 경사를 맞게 됩니다. 그런 바탕 위에서 제주평협도 1979년 4월 29일 창립하게 됩니다. 이후에 많은 봉사자들의 노력이 쌓여 40주년을 맞게 됐습니다.



만세동산에서 제주평협 40주년 축하행사 진행


◈40주년 행사를 제주 3.1 만세운동이 처음 일어난 조천만세동산에서 개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40주년 행사를 제주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 전개된 만세동산에서 개최한 것은 올해 3.1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재인식하는 계기로 만들자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미사 도중 말씀의 전례를 끝내고 나서 3.1운동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는데요, 100년 전 울려 퍼졌던 “대한독립 만세”를, 바로 같은 장소에서 오늘도 함께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태극기를 들고 우렁차게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그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미사가 끝난 뒤에는 함께한 300여 명의 평신도들이 ‘김기량 길’을 걸었습니다. 제주 복음화를 위해 노력해오다 순교하신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복자의 생가 터를 돌아보고 순교성지로 개발될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현양비가 건립되어 있는 종점까지 도보순례를 했습니다.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어떤 분인지 알고 싶습니다.


제주에 처음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린 사도이자 제주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원래 배를 타고 다니며 무역을 하던 분인데 풍랑을 만나 영국 배에 구조되어 홍콩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다 1857년 교리를 받고 다음해에 제주로 귀환해 가족과 사공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게 됩니다. 육지를 오가면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해오다 1866년 통영에서 잡혀 혹독한 형벌을 당했습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증거하다 1867년 1월 51세에 순교 하셨습니다. 2014년 8월 16일 한국천주교 순교자 124위를 복자품에 올리게 되는데 김기량 펠릭스도 그중 한 분이 됩니다.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를 기리기 위해 제주교 구 순례위원회가 도내에서 네 번째로 2014년에 ‘김기량 길’을 개설했는데 조천만세동산에서 함덕 해수욕장, 김기량 순교 현양비까지 총 8.7km입니다. 특히 지난 4월 행사 때는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보니 발길 닿는 곳마다 초록빛 바다를 관망할 수 있었고 야생화들이 지천에 피었습니다. 강우일 교구장 주교님, 문창우 부교구장 주교님도 함께하셔서 참가자들이 다들 주교님들과 사진 찍기에도 바빴지요. 지칠 줄도 모르고 모두가 힐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재해구호 봉사단 연합회 구성해 태풍에 대비


◈참 뜻깊은 행사를 치르셨군요. 하반기에는 또 어떤 사업들을 준비하고 계시는지요?


우리 평협에서 하반기에 해야 할 일들로는 교구 단위 단체장과의 연석회의, 본당 총회장들과의 간담회가 있습니다. 평협 자문위원인 전직 회장들을 모시는 일, 제주교구 발전에 헌신해 오신 골롬반회 신부님들과의 간담회, 그리고 신학생들을 만나 격려해 드려야 하는 일도 있고요. 중요한 게 또 있습니다. 제주에는 타교구와는 다른 역할의 조직이 하나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제주는 태풍의 길목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태풍이 닥칠 때마다 성당 건물 피해가 빈발합니다. 모든 걸 외부에 맡기기보다 자체적으로 대응해 나가자는 취지에서 2008년부터 교구에 ‘재해구호 봉사단 연합회’를, 본당에는 9명 내지 11명 정도씩 재해구호 봉사단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조직을 재정비하고 전 요원들에게 태풍대비 요령에 대한 교육을 실시합니다. 지난 6월 23일에는 재해 관련 전문가를 초빙해 교육을 했습니다. 이 조직도 제주평협 회장이 당연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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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제주평협 40년을 기념하며 ‘김기량 길’을 도보순례하는 제주 평신도들. 발길 닿는 곳마다 초록빛 바다를 관망하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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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평협 40주년 기념 김기량길 도보순례에는 강우일 교구장 주교 (가운데)도 함께했다.



◈재난에 대비해 미리 교육도 받고 하신다니 그 수고하시는 노력에 숙연해집니다. 제주평협 조직을 활성화하기 위한 활동은 어떻게 해나가고 계시는지요?


제주평협이 다른 교구에 비해 역사적으로는 일천하다고 볼 수 있지만, 저희 나름대로 평협의 위상을 높여 나가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제주는 교구 내 총 28개 본당이 있는데요, 이 28개 본당 총회장단과 32개 단위 단체장이 정례적인 간담회를 통해 친교활동과 교류증진의 기회를 자주 갖고 있습니다. 특히 제주평협 에서 교구 내 4개 지구별 회장단 한 분 한 분을 평협 상임위원으로 위촉해서 평협과 본당 공동체 사이에 유기적인 협력 채널을 상시 가동해 나가고 있습니다. 제주평협 임원 구성은 여성연합회 회장과 단원들을 많이 두고 있는 레지아 단장을 당연직 부회장으로 하고, 분과별로도 본당별로 적정하게 안배했습니다. 본당 사목활동에 경험이 많은 분들이 평협 임원을 맡고 있어서 협력이 잘 되고 있습니다.



◈제주평협이 올해부터 ‘평신도 영성 활성화를 위한 봉사자 모임’을 갖고 바티칸 공의회 문헌도 연구하며 평신도 영성 활성화에 힘쓰시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릇 평협의 임원이라면 영성적인 모임을 통해 자질도 함양할 뿐 아니라 봉사자로서의 역할도 키워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취지에서 시도하게 된 것입니다. 막상 지난 3월부터 시작 하고 보니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시작하기를 잘했다는 안도감이 듭니다. 지난 3월 이후 4차에 걸쳐 모임을 가졌는데 갈수록 진지함이 더해간다고 할까요. 처음엔 소극적인 자세로 참석하신 분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첫 모임에서는 누구보다 이 모임에 관심을 갖고 계시던 문창우 주교께서 특강을 자청하셨습니다. 소통과 열림, 친교의 영성을 강조하시면서 “하느님이 세우신 교회는 항상 쇄신되어야 한다.”며 평협 임원들 이 주축이 되어 교구 발전에 기여해 달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중심으로 우선 4대 헌장에 대해 주어진 과제마다 조별로 연찬 후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순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가끔 주교님이나 전문 분야에 식견있는 신부님들을 모셔서 깊이 있는 모임이 되도록 발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반응이 좋아서 내년에는 모임 횟수를 더 늘릴까 합니다.(웃음)



평신도들에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매뉴얼 갖춰야


그렇군요. 지난해 평신도 희년을 보내면서 제주 평협도 부쩍 성장한 게 느껴집니다. 워크숍도 성공적으로 개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해 8월에 평신도 희년을 맞아 교구장 사목방침에 따른 사도직 직분을 원활히 수행하고 평신도의 역할을 강화시켜 나가기 위해 ‘내가 너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라는 주제로 ‘제주교구 평신도사도직을 위한 워크숍’을 제주 성이 시돌 피정센터에서 실시했습니다. 제주평협에서 워크숍을 개최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죠. 제주평협 상임위원, 각 본당 회장단과 사목회 임원, 교구 단위 단체장 등 120여 명이 1박2일간 진지한 모임 을 가질 수 있었는데요. ‘제주 역사 속에서의 평신 도 역할’을 주제로 문창우 주교님의 특강도 있었고, 제주교구 선교사목위원장이신 황태종 신부님 께서 주재하는 분임 토의도 가지면서 충실한 워크숍으로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우리 신자들에게 보편사제직으로서의 역량을 키워 나가게 하는 역할이 우리 평협의 중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신도로서의 자기 사명을 알고 사회 교리를 배우고 실천하는 삶들을 살아갈 수 있도록 꾸준하고 체계적인 교육과 그에 따른 매뉴얼을 갖추는 게 필요합니다.



평협의 활성화를 위해 마음을 다해 애써 오신 것으로 압니다. 3월에 회장에 연임되셨는데, 그동안 제주평협에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요?


역량이 부족한 제가 회장직을 맡고 나서 크게 내세울 만한 변화가 있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주평협을 평신도 사도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모든 임원들이 적극성을 갖고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로 변화시켜 놓았다는 것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도와주신 봉사자들께 감사드립니다.(웃음) 제주평협의 중요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단체 카톡방을 개설하고 소통함으로써 서로가 격의 없는 대화들을 나눌 수 있게 된 것도 변화라고 할 수 있겠고요. 무엇보다 제주평협이 앞장서서 본당 총회장들과 교구 단위 단체장들과 정보교류는 물론 상호 협력에 관한 활동을 자주 협의하고 실행할 수 있게 돼서 기쁩니다. 요즘에는 봉사자들이 평신도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들을 자주 보게 돼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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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평협은 지난해 평신도 희년을 맞아 워크숍을 개최 했다. 제주평협의 첫 워크숍이었다.

 

 

회장님께서는 평협 활동을 언제부터 하셨는지요?


뭐 평협 활동이랄 것도 없습니다. 본당(제주 화북본당)에서 사목회 총무와 총회장을 맡아 일했고, 2009년부터 2년간 평협 분과위원장을 맡았던 게 전부니까요. 그리고 교구 사목평의회 위원을 2013년부터 지금껏 연임해 오고 있는 정도입 니다. 2017년 2월부터 평협 회장을 맡아 이제 3년 째가 되는데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해왔습니다만 아직도 부족한 것 투성이죠. 어떤 때는 사업만 하기로 했지 막상 일을 수행할 실행조직이 없어서 혼자서 모든 걸 기획부터 추진하고 집행까지 하면서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게 일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기쁨이고 보람으로 여겨집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임에 그저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현직에 계셨다는 말씀을 들으니 사회생활을 하시면서 신앙을 갖게 되신 듯합니다. 그 사연이 궁금합니다.

 

제가 공직생활을 해 오면서 신앙이란 것을 모르고 분별없이 살아왔어요. 그러다 아내와 수녀가 된 제 딸이 1995년에 세례를 받더군요. 그러면서 제게도 신앙을 권유하게 되고, 3년이 지나 저도 큰딸이랑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비신자 때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성당에서 상을 치르게 되었는데 직장 동료들이 “그 친구가 성당 다니는 게 맞느냐?”고 문의가 많았던 걸 보면 제가 살면서 문제아였던 모양입니다.(웃음)

 

 

수녀가 된 딸의 기도 덕분에 ‘발바닥 신자’ 면해

 

신앙이 그저 순탄하게만 다가오지 않잖아요. 고비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딸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수녀원에 입회한다고 하더군요. 그 소릴 듣고는 성당 다니는 것을 후회한다며 극력 반대했던 일이 떠올라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때가 딸이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이라 저는 딸이 좋은 직장 갖기를 바랐는데 청천벽력과도 같았죠. 수녀가 되겠다는 것은 현실도피라고 운운하며 강하게 반대를 했었는데, 살레시오 수녀회에 입회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광주 나자렛 집에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하며 어느 누구보다 잘 살고 있어서 감사드릴 뿐 입니다.


제 신앙 또한 변변찮습니다. 직장 다닐 때는 기껏 주일미사만 참례하다가 퇴직할 즈음이 되어서 뒤늦게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수녀가 된 딸의 기도가 없었으면 그저 ‘발바닥 신자’에 그쳤겠지요. 그래도 그 덕분에 퇴직하기 전부터 본당 사목회 총무도 맡고 교육이란 교육은 다 다니고, 본당 총회장 맡아 봉사하고 지금 평협 회장 일까지 하고 있으니 그래도 외형적으로는 모범적이고 열심한 신자라 불릴 만하지 않습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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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협 임원들의 다락방 공부 모임(좌). 영성적인 모임을 통해 자질 함양뿐 아니라 봉사자로서의 역할도 키워 나간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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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우일 교구장 주교(가운데)가 평협상임위원회 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평협 임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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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협 대표로 선서하는 고용삼 회장. 고 회장은 지역사회와 직장과 가정에서 각자가 자리한 위치에서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평신도 사도직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뒤늦게 뛰어든 평협 활동이 회장님께 기쁨과 보람이 되었군요.


우리 제주교구 자랑 좀 할까요. 제주교구가 신자수는 7만 8000명으로 다른 교구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인구 대비 11%를 웃돌고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개신교 신자수보다 많습니다. 그런 만큼 더욱더 자부심을 느끼고 선교활동에 앞장서는 평협이 되도록 노력해 나가야 하는 책무가 저희 봉사자들에게 주어져 있다고 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교회 안에 머물러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교회 안의 활동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와 직장과 가정에서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평신도 사도직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평협 임원들은 ‘뽑힌 사람들’로서 어느 누구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주어진 역할과 활동을 모범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저도 만 40년 직장생활 마치고 기업체 사장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퇴직하고 무료하게 지내고 있을 이 나이에 중책을 맡아 봉사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순간순간 바쁜 일들을 처리할 때는 사소한 불평도 합니다만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감사하더라고요.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임을 느끼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역할을 다해 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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