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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 종교와 신앙의 차이는?
첨부 작성일 2019-08-16 조회 467

나의 신앙 선조

 

종교와 신앙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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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훈 / 중앙대학교 사회과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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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


오래전 “하나의 종교만을 알면 아무 종교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는 어느 종교학자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서양의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반목은 대개 종교를 둘러싼 것들이었습니다.

17세기 천주교와 개신교 간의 갈등으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연루되어 800만 명의 사망자를 초래한 ‘30년 전쟁’(1618~1648년)도 그러하였고, 20세기에 들어와서도 1990년대의 보스니아헤르 체고비나 사태나 1990년대 말의 코소보 전쟁도 모두 종교와 인종을 둘러싼 갈등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오늘날 유럽연합의 출발점이 된 파리조약(1952년) 서명 당시에도 사실은 천주교를 믿는 6개 국가(베네룩스 3국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만 참여하였고, 그렇지 않은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애초에 자신들만의 별도 기구를 만들어 대립하다가 1970년대에 와서야 영국이 참여하였고, 그 밖의 나라들은 1990년대 초에야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된 것을 보아도 얼마나 종교가 서양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구조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진정되기는 하였지만, 북아일랜드에서는 아직도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화해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아일랜드 출신 한 교수님께서 방문하셔서 들려준 우스갯소리가 생각납니다. 북아일랜드의 주택가를 거니노라면 100m 갈 때마다 복면을 쓴 괴한이 권총을 들이대고 “너는 천주교인가, 아니면 개신교인가?”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 괴한의 종교를 알 수 없는 터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확률은 50 대 50인 셈입니다. 잠시 꾀를 내어, “나는 불교신자”라고 답한다면, 그 괴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그러면, 개신교쪽 불교인가, 아니면 천주교쪽 불교인가?”라고 되묻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보행자는 쉽게 위기를 벗어나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야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서양인들에게는 종교가 ‘살고 죽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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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아들

 

 

우리의 경우를 보면, 조금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 속에도 종교에 대한 탄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종교보다는 신앙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체로 다른 종교에 대해서 적대심을 가지기보다는 상호 존중하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어느 산모퉁이를 돌아가다 보더라도 어김없이 누군가 쌓아놓은 작은 돌탑들이 보이는 것도 넓게는 자연에 대한 신앙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종교 다원주의’라고나 할까요? 저희 집안의 예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터인데요. 아버님께서는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영향으로 개신교 교회에 가십니다. 반면 어머님께서는 천주교를 좋아하셨지만,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절실한 불교 신자였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 지금도 절에 가십니다. 그렇지만, 저희 4남매를 천주교 운영 초등학교에 입학시키셔서 모두 1학년 때 세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저희 4남매는 신앙심의 깊이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 성당에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결혼식도 성당에서 하였습니다. 저도 가끔은 아버님을 모시고 교회에 가기도 하고, 또 어머님께서 절에 가실 때에는 제가 모시고 가곤 합니다. 어느 경우에도 저의 마음은 늘 평화로워짐을 느끼곤 합니다.

 

저의 아내 집안을 보면 한때 수녀원에 계셨다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수녀원을 나오셨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으신 장모님의 영향을 받아 아내와 그 형제들 모두가 천주교 신자이고, 아내의 외가에서는 신부님도 몇 분 나오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집안에는 언제나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세 아들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모두 세례를 받고, 각각 크리스토퍼, 토마스 그리고 요한이라는 세례명으로 하느님의 사랑 속에 성장해서 이미 큰애와 둘째는 자신들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게 되자, 내심 천주교 신자 며느리를 바랐지만, 사람의 일은 욕심대로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첫째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가 모두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서 지금도 저희 큰 아이와 둘째는 아내를 존중하여 교회에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와 저의 아내는 개의치 않습니다. 언젠가 저희 며느리들이 성당에도 나가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직은 장가를 가지 않은 막내가 회사에서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는데, 그 여자 친구 가족이 정말로 천주교 신앙심이 깊은 가정이었습니다. 어쩌면 저의 비밀스러운 바람대로 천주교 신자 며느리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인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천주교의 온유함을 닮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마음이 온유하다는 것은 다른 이들을 포용할 수 있고, 또 서로 다름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온화함을 닮아 갈 수 있는 저희 가족 모두가 되기를 늘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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