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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주교 서울 순례길’ - 1코스 말씀의 길을 걷다
첨부 작성일 2019-08-16 조회 394

‘천주교 서울 순례길’

- 1코스 말씀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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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리디아 / 한국평협 순교자현양위원장





2018년 9월 14일 ‘천주교 서울 순례길’이 교황청 공식 순례길로 지정되고 선포식을 가졌다.


전체 길이 44.1km로 이어지는 ‘말씀의 길’, ‘생명의 길’, ‘일치의 길’ 3개 코스를 평협 가족들이 함께 걸어보기로 했다.


첫 시작으로 1코스 ‘말씀의 길’ 8.6km를 걷기 위해 6월 8일(토) 오후 명동성당에 모였다. 손병선 회장과 위원들, 총 27명이 한국 천주교의 첫 페이지를 돌아보는 ‘말씀의 길’에서 선교사도 없이 학문으로 전해진 진리의 말씀으로 시작된 신앙과 그 믿음으로 인해 순교의 길을 가야만 했던 순교자들과 만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자, 한국 교회의 상징인 ‘명동성당’의 시작 이야기를 들으며 출발했다.


1784년, 명례방에 있던 김범우의 집에서 시작된 공동체가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김범우가 유배되면서 해체되었고, 종현 언덕에 땅을 매입하면서 다시 교회와 인연을 맺고 한불수호조약으로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자 성당 건립을 시작하였다. 1898년 5월 29일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께 성당을 봉헌했고, 아홉 분의 순교자 유해를 모셨다. 수시로 드나들던 명동성당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범우의 집’ 터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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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회동성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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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포도청 앞에서


명례방을 알리는 표석은 없지만, 한국 최초의 천주교 희생자 김범우의 집은 국가 음악 주관 기관인 장악원 앞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표교 인근 이벽의 집에서 열렸던 신앙 집회가 김범우 토마스의 집으로 옮겨 기도와 교리 공부를 이어가게 되었으나 ‘을사추조적발사건’이 일어나고 압송된 이들 중 양반들은 모두 돌려보내고 김범우만 옥에 가두었으며, 많은 매를 맞고 유배를 가면서 공동체는 무너지게 되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수표교 인근의 ‘이벽의 집 터 (한국 천주교회 창립터)’로 평신도에 의해 자발적으로 최초의 신앙 공동체가 탄생한 의미 있는 장소다. 17세기 초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한문 서학서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학문적인 관심을 넘어서서 종교적인 진리에 대한 갈증과 인생의 해답을 얻기 위하여 천주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벽은, 부친을 따라 북경에 가는 친구 이승훈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배우고 필요한 서적들을 가져오도록 부탁했다.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하고 많은 천주교 서적과 성물들을 가져온 이승훈과 함께 교리를 연구하고 첫 세례식을 거행하면서 평신도에 의한 자발적인 최초의 신앙 공동체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신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명례방 김범우의 집으로 옮겨 신앙 집회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가 이루어질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다음은 박해의 순간을 함께했던 자리 ‘좌포도청 터’다. 조선시대 한양 및 인근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던 기관이었으나 천주교인들을 찾는 일이 좌·우포도청의 주요 임무가 되었다.


조선에 들어온 첫 사제 주문모 신부를 체포하려 하였으나, 피신시키고 대신 최인길 마티아 와 지황 사바, 윤유일 바오로가 포도청으로 끌려가 모진 매질로 순교한 ‘북산사건’을 시작으로 약 100여 년간 신자들이 온갖 고문과 형벌, 굶주림과 죽음에도 굳건한 신앙을 증거하며 피를 흘린 순교 터이며 증거 터인 포도청이 위치했던 지역을 관할하는 ‘종로성당’으로 향해 간다.


포도청 순례지(좌·우포도청과 의금부, 형조, 전 옥서)를 사목 관할 구역에 둔 종로성당을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지정하여, 한국 천주교회의 중요한 순교 터이자 최대의 신앙 증거 터가 신자들과 교회의 관심 속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은 조금 길을 걸어 성밖으로 시신이 버려 졌던 ‘광희문 성지’로 걸음을 옮긴다. 광희문은 서울의 4대문 사이에 위치한 4소문 중 하나이며, 서소문과 함께 한양 도성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는 문으로 사용되어 시구문으로도 불렸다.


기나긴 천주교 박해 시기 좌·우포도청과 형 조, 전옥서 등에서 처형당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시신이 광희문 밖으로 버려지고 또 묻힌 순교자들의 주검과 피를 통해 성화된 중요한 성지를 통과하여 동대문을 지나 성곽 길을 걸어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은 양 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성 김대건 신부와, 양 떼를 돌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많은 사제들의 못자리다. 성당에는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으며 참된 목자가 되려는 신학생들의 모든 삶에 함께하고 있다.


다시 도심의 길을 걸어 ‘석정보름우물’로 걸어 간다. 북촌 계동에 있는 석정보름우물은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1801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숨어 지내면서 선교활동을 할 당시 이 우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울에 상수도 시설이 도입되기 전 북촌 주민들의 중요한 음수원으로 15일은 맑고 15일은 흐려지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물맛이 좋기로 소문났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지난 이야기들을 들으며 오늘 순례길의 마지막 도착지인 ‘가회동성당’으로 간다.


북촌 한옥마을이 있는 가회동은 한국 천주교 회 최초의 선교사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첫 미사를 집전한 곳이자, 사제와 교우들이 서로를 위해 희생하며 신앙을 지켜낸 믿음의 터전이며, 조선 왕실의 후손이 세례를 받은 역사적인 장소다. 가회동성당은 한국의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역사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사랑채와 대청 마루를 가진 한옥과 열린 공간의 서양식 성당이 어우러진 구조로 지어졌으며 1층에 한국 천주교회와 가회동성당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전시실을 돌아보는 것으로 순례길 1코스를 끝냈다.


순례길 가운데 첫 구간으로 이 땅에 말씀의 씨를 뿌리고 키우다가 순교의 길을 향해 가셨던 순교자들이 이 길을 걷는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생각하고 그 말씀에 귀 기울여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와 평화의 기도를 바친 후 순교자들을 기억하기로 마음을 다지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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